[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멀티플렉스 3사는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수익 악화를 이유로 세 차례에 걸쳐 티켓 가격을 인상했다. 2020년 10월 CGV가 티켓값을 기존 1만1000원에서 1000원 인상한 1만2000원(평일 기준)으로 변경하면서 신호탄을 쏘고 2021년, 2022년에 걸쳐 1년 간격으로 1000원씩 인상했다. 티켓값은 현재 주중 1만4000원, 주말 1만5000원이다.
배우 최민식(62)은 지난 17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해 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한 방청객이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최민식은 극장 티켓값을 언급하며 "좀 내려라. 갑자기 확 올리면 나라도 안 간다"는 공감의 태도를 취했다.
이어 "(같은 금액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여러 개 보지, 발품을 팔아 여자친구랑 데이트하면 (영화관 티켓값 등을 포함해) 10만원이 훌쩍 날아간다"고 지적했다. 물론 팬데믹 상황에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던 영화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최민식의 말대로 커플 2인이 약 2만원 돈을 주고 관람하던 영화는 이제 3~4만원을 지불할 결심을 해야 한다. 외식 물가도 상승했으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비용까지 더하면 10만원이 우습다. 관객의 설움을 다독이는 최민식의 굵직한 한마디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최민식은 한국영화 황금기 전반을 아우르는 배우이자 스승으로 존경받아 왔다. 1981년 연극 무대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데뷔 43년차를 맞았고 그중 영화 경력만 무려 36년이다. 1988년 영화 '수증기'로 스크린 첫발을 내디딘 후 '구로아리랑'(1989)으로 이름 있는 배역을 맡고 첫 스크린 주연작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2)을 비롯해 '넘버3'(1997), '해피 엔드'(1999), '쉬리'(1999),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주먹이 운다'(2005) 등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거쳐 '악마를 보았다'(2010),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신세계'(2013), '명량'(2014) 등으로 영화관 불을 밝혔다. 올해는 지난 2월 개봉한 '파묘'로 2024년 개봉작 첫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앞선 최민식의 발언을 십분 이해하려면 먼저 팬데믹 당시 영화업계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배우, 감독, 제작자 등은 '관객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모두가 입을 모아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있다"는 말을 외쳤다. 최민식 역시 그랬다. 자신의 영화가 100만명도 모으지 못한 채 사라지고 5년 넘게 창고를 전전하는 상황과 마주하면 제아무리 잘난 배우도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다. '파묘' 무대인사 당시 MZ세대의 독특한 요청을 일체 거절하지 않고 모두 소화한 배경에는 관객을 향한 감사함이 담겼다.
그런데 21일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최민식을 향해 "아무거나 소신 발언이란다. 그냥 무지한 소리"라는 강한 비판을 던졌다.
그는 "영화관 사업이 민간 기업으로 권력 집단도 아닌데 가격 인하하라는 이야기가 무슨 '소신' 발언인가?", "영화 관람료가 너무 올랐으니 최저임금 인하하라고 했으면 내가 소신 발언이라고 인정하겠다", "영화관 사업은 땅 파서 하나 아니면 자선사업으로 알고 있나?", "시장 가격을 소비자 원대로 할 수 있다면 세상에 사업은 없고 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15000원 이하로 사업할 수 있으면 주주가 있는 다른 기업의 극장에게 요구하지 말고 당신이 극장 하나 세워서 싸게 사업해라" 등의 말을 쏟아냈다.
이어 영화 시장에 통달한 듯 "참고로 알려준다"고 으스대며 "영화관은 티켓으로 돈 버는 사업이 아니다. 싼 티켓으로 관객을 유인해서 팝콘과 음료수 팔아서 돈 버는 사업이다. 영화 티켓은 미끼 상품"이라고 일갈했다. 이병태 교수의 발언은 언론 보도로 날개를 달고 삽시간에 퍼졌다. 관객의 마음을 다독인 최민식의 '소신'은 "무지한 소리"라는 자극적인 타이틀과 함께 폄하됐다.
이병태 교수의 발언이 논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에는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두고 젊은 세대는 노력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쏟는다고 말해 빈축을 사는가 하면, 2019년에는 한국이 동해 명칭에 집착한다먀 '반일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서울의 봄' 단체 관람 이슈와 관련해서는 마법을 다루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기독교 사상과 맞지 않아 교내 상영을 반대하는 미국의 한 가정을 예로 들며 한국에는 '교육 자치'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그 룰렛이 최민식에게 돌아간 모양이다.
이병태 교수의 말대로 최민식의 소신이 '무지'인지 가늠하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서민의 말을 대신한 최민식이 무지라면 당사자들에겐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그의 긴 글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단연 "영화관 사업이 민간 기업으로 권력 집단도 아닌데 가격 인하하라는 이야기를 왜 하냐"는 주장이다. 기업은 여러 관계에 얽힌다. 한 기업이 판매 대행을 맡는다면 거기에는 물자를 조달하는 이가 있고 제품 제작을 관리하는 이, 제작에 참여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유통을 맡은 기업은 계산기를 두드려 소매 가격을 책정하고 소비자에게 최종적인 금액을 제시한다. 가격은 수요와 원재료, 인건비 상승 등으로 인상될 수 있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높아질 경우 정부의 제재를 받거나 '소비자 기만'이라는 비판을 산다. 소비자를 기만한 기업은 외면받고 몰락한다. 영화관 또한 일종의 유통 전시장이다. 제작사들이 제작한 영화를 배급사를 통해 전달받고 관객에게 상영하며 수익을 취한다. 소비자 즉, 관객은 티켓값 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부당하다"고 외칠 수 있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TT) 시장까지 열렸으니 대체제는 충분하다. 고집스러운 영화관은 외면하면 그만이다.
최민식은 영화 관계자이기 이전에 소비자다. 하지만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외면하지는 못한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를 업으로 삼는 배우이기 때문. 그러니 호소하는 것이다. 관객이 더이상 등 돌리지 않게 함께 힘 써보자고. 이병태 교수가 진정 시장 논리로 최민식의 발언을 지적하고자 했다면 이러한 기본적인 부분을 간과했을 리 없다. 무엇보다 기업이 소비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가격을 입맛대로 정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취지의 발언은 다소 위험하게 비친다.
이어지는 말들도 물음표의 연속이다. 이병태 교수는 티켓값이 오른 이유로 '청소 인력 인건비'를 꼽았다. 최저임금이 올라 영화관 청소 인력의 인건비가 상승했다는 주장이다. 왜 하필 청소 노동자를 특정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앞서 "티켓값을 낮추고 싶으면 최저임금을 낮춰달라고 하라"고 말한 것과 겹치는 주장이기는 하다.
자, 이제 그의 주장이 적절한지 들여다보자. 티켓값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이전인 2019년의 최저임금은 8350원. 티켓값 1만5000원 선을 뚫은 2022년은 9610원으로 2019년과 비교해 1260원이 올랐다. 1만원에는 진입도 못 했고 최저시급으로 영화 한 편 볼 수 없지만 고작 10원 오르는 것에도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으니 많이 올랐다고 치자. 단, 인건비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 티켓 가격이 오르려면 비슷한 수준의 인력이 있어야 한다.
멀티플렉스 3사는 팬데믹과 함께 적자를 이유로 극장 인력을 대거 감축했다. 당시 20~50명이 일하던 대형 사이트는 단 3명으로 줄어 12시간 고역을 겪었다. CGV의 경우 2019년과 2021년의 직원 수가 절반 이상 차이나기도 했다. 티켓값 1만5000원으로 돌입하기 시작한 2021년은 근 5년간 가장 적은 직원 수를 나타냈다. 티켓값 인상의 주요인이 최저임금이라는 비판은 수치상 맞지 않다. 코로나의 위험이 가신 현재도 대부분의 영화관은 평일 기준 직원 1~2명이 상영관 전체 상영, 종영을 관리한다. 청소 인력 역시 전보다 줄었다. '셀프 체크인'을 내세우며 들인 자동 입장 기계에 상영관 상주 직원이 부재한 곳도 허다하다. 영화관 직원은 화재, 지진 등 긴급 상황이 닥칠 경우 이를 안내해 줄 의무가 있지만 영화관의 수익과 직결되는 매점에만 배치될 뿐 관객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서비스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 이전과 이후 영화관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관객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실이다.
시장주의를 내세우던 이병태 교수는 최민식에게 대뜸 화를 내며 "기부는 했냐"고 묻는다. 하지만 기부는 시장 가격과 별개다. 선의에 의해 이뤄지는 기부금은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만약 최민식이 티켓을 기부해 보다 더 많은 관객이 비교적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극장을 찾는다 하더라도 그 돈은 결국 영화관의 주머니로 향한다. 이미 많은 배급사, 제작사들이 높은 가격에 대한 책임을 대신하고 심각한 손해를 보고 있다. 신작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뿌리는 할인 쿠폰은 멀티플렉스가 제공하는 공짜 서비스가 아니다. 배급사, 제작사가 전적으로 남은 금액을 부담한다. 1만5000원 시대가 열리고 할인이 없으면 영화관을 찾지 않는 관객이 늘면서 배급사, 제작사의 부담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병태 교수는 이러한 시장 관행을 알았을까? 참고로 알려준다. 이런 관행 속에서 티켓값을 비판하는 이에게 "네가 기부해라"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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