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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신구 리틀야구왕' 노하우 전수기, 또 세계를 호령해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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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신구 리틀야구왕' 노하우 전수기, 또 세계를 호령해보려면?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6.02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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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MVP 황재영-주장 안제현 인터뷰, "긴장 줄이면 2연패 가능"

[300자 Tip!] 기적 같았던 야구소년들의 영광 스토리는 재현될 수 있을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LLWS)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12세 이하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은 오는 7월 중국 구이린에서 열리는 아시아-퍼시픽 예선에 출전한다. 지난해 8월 29년 만에 세계대회에 출전해 전승으로 우승했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도전에 나선다. 후배들의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출전하는 올해는 대만이 ‘타도 한국’을 외치며 칼을 갈고 있다. 지난해 대표팀 캡틴 황재영(13·휘문중)과 올해 대표팀 주장 안제현(12·용인 수지구)이 만났다. 황재영은 “너희들도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웠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포스가 남달랐어요. 저 형은 대체 어떻게 훈련하기에 저렇게 하는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요.”

▲ 안제현(오른쪽)이 지난해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황재영이 착용했던 유니폼을 바라보며 신기해 하고 있다.

안제현의 입이 귀에 걸렸다. 황재영의 한마디를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한 자리가 마련된 것이 쑥스러운 듯 수줍은 미소만 지어보였지만 그 속에서는 ‘우리도 반드시 세계를 호령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지난해 8월 12세 이하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 라마데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LLWS)에서 29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대만, 체코, 일본,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등을 줄줄이 물리치고 일궈낸 쾌거였다.

황재영은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마운드에서는 5경기에 등판해 10.1이닝 19탈삼진 1실점하며 에이스 역할을 했다. 일본과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는 큼지막한 대포를 쏘아올려 단숨에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안제현은 황재영의 명성을 이을 0순위 차세대 스타다. 동서울대표팀 주장인 그는 지난 4월 20일 막을 내린 LLWS 아시아-퍼시픽 예선 참가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맹활약하며 고대하던 태극마크를 달았다. 용인 수지구의 핵심 선수로 3루수와 투수를 겸하고 있다.

▲ 황재영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그는 "미국에 가보니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더라"고 말했다.

◆ 동기 부여만 한 보따리, "우리도 일본과 같은 비행기 타고싶다"

“야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이야. 시설 좋은 건 기본이고 용품도 지급되고 놀이시설도 많고... 박종욱 감독님이 워낙 편하게 해주셔서 학생으로서는 하기 힘들었던 선글라스도 끼어봤어. 야구를 하고 온 느낌이 아니라 미국 가서 놀고 온 느낌이었어.”

황재영이 미국에서의 추억을 더듬었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6학년으로 이뤄진 대표팀에는 다른 어떤 말보다도 이 말 한 마디가 가장 큰 동기부여일지 모른다. ‘리틀야구 성지’로 알려진 윌리엄스포트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아시아-퍼시픽 지역 예선부터 통과해야 한다.

세계를 제패했으니 1차 관문인 예선 통과쯤이야 당연한 것 아니냐고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한국은 대만의 벽을 넘지 못해 지난해 29년 만에야 본선 무대를 밟았다. 12세 대회는 리틀야구 저변이 탄탄한 일본이 자동으로 본선 진출권을 얻기 때문에 티켓 한 장을 두고 한국과 대만이 혈전을 벌인다.

황재영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국할 때 일본을 거쳐 갔는데 마침 일본 대표팀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며 “공항에서 은근하게 신경전이 있었다. 반드시 너희를 꺾고 우승해야 한다는 분위기와 부담감이 생겼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 지난해 리틀야구대표팀 주장 황재영(왼쪽)과 이번해 주장 안제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안제현이 “저희도 일본하고 꼭 같은 비행기 타봐야겠다”고 눈을 반짝였다. 그는 이어 “작년에 형들이 정말 큰 업적을 일궈놓은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우리도 또 한번 그런 큰일을 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했다 

“국내 선발전에서 고생한 것이 약이 될 거라고 봐. 우리도 졌는걸 뭐.” (황재영)

“그런 것 같아요. 누구도 저희(동서울대표팀)가 나갈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어요.” (안제현)

지난해 대표팀과 이번 대표팀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국내 선발전에서 객관적 열세를 뒤집은 것. 한국리틀야구연맹은 전국 각지의 우수한 선수들을 모아 국가대표팀을 구성하는 방식이 아니라 4개 권역 대표팀들간의 리그를 개최해 가장 성적이 좋은 팀에 국가대표팀 자격을 부여한다. 지난해는 서울, 경기, 남부 등 3개 팀이, 올해부터는 동서울, 서서울, 남부, 중부 등 4개 팀이 자웅을 겨뤘다.

지난해 일본전 2승 포함 11전 전승의 ‘퍼펙트 우승’을 일군 팀은 서울대표팀이다. 이 팀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팀은 다름 아닌 경기대표팀이었다. 서울대표팀은 경기대표팀에 1-2로 패했지만 남부대표팀이 경기대표팀을 8-6으로 잡아준 덕에 가까스로 선발전에서 우승했다.

▲ 안제현은 황재영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 대표로 나서는 동서울대표팀은 서서울대표팀이 무난히 우승할 것이란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지난 2월 한미 친선교류전에 출전한 국가대표가 3명에 불과해 10명에 달하는 동서울을 누르기에는 무리라는 평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철저한 팀 배팅, 탄탄한 수비로 무장해 대이변을 연출했다.

황재영은 “돌이켜보면 경기대표팀이 일본과 스타일이 참 비슷했던 것 같다. 특히 1번타자 김태호(당시 광명시)는 짧게 정말 잘 치는 선수”라며 “그런 선수들을 상대하며 고생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크게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안제현은 “우리도 서서울을 상대로 그렇게 잘할 줄 몰랐다. 모두가 얼굴이 굳어있었다”면서 “감독님께서 짧게 치자고 주문하셨고 파이팅을 불어넣어주셨다. 그대로 했더니 결과가 잘 나와서 큰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 안제현은 리틀야구 강호 용인 수지구의 핵심 선수다. 3루수와 투수를 겸한다. [사진=스포츠Q DB]

◆ 장난치듯, 긴장하지 말고 즐겨라

“장충하고는 좀 다르더라고. 팬들의 환호성, 마운드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한국에서 전해오는 관심들이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했어. 처음에는 밥도 잘 못 먹었거든. 경기를 거듭할수록 괜찮아지긴 하더라. 긴장만 안하면 돼. 경기를 즐기면 너희도 해낼 수 있어.”

그토록 대범해보이는 황재영도 “크게 긴장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가대표’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을 떨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야 아무런 관심 없이 도전자 입장에서 시작한 대회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대만을 꺾게 된다면 본선 1차전부터 리틀야구를 향한 미디어의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황재영은 “29년 만에 미국에 나타났으니 다른 팀들이 약팀 취급을 많이 해서 자존심도 상한 것이 사실이었다”며 “누구도 우리를 몰랐다. 첫 경기 체코전에서 안타를 쳤는데 야유까지 나와서 당황했다. 우리끼리 야간훈련하고 캐치볼을 하게 됐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도전자에서 챔피언으로 입장이 바뀌었지만 한국 야구소년들의 승부욕은 그대로다. 안제현은 “지난주 청주에서 모여 합숙훈련을 했는데 정말 야구에만 집중했다”며 “우리도 형들처럼 해낼 수 있다고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를 다독였다”고 말했다.

▲ 황재영은 "무조건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즐기다 오라"고 당부했다. 안제현은 선배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 선배로서의 조언, “무조건 이겨야한다고 생각마라”

“월드시리즈에서 그렇게 잘하고 나니 약간 자만했던 것 같아. 한국 와서 쏟아지는 기사를 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던 게 사실이야. 리틀은 리틀로 잊으라고 강조하시는 아버지 가르침에 따라 지난해 기억은 다 잊어버렸어.”

승부에 대한 이야기를 접고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꿈나무로서 한발 먼저 엘리트 야구를 접한 황재영의 애정어린 조언이 이어졌다. 딱 1년 선배, 이제 리틀 딱지를 뗀 중학생이지만 황재영의 이야기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 박종욱 감독님은 장난치듯이 하라고 주문하셨어. 우리가 야구하는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가 다가 아니잖아. 나를 봐. 결승전에서 팔꿈치 다쳐서 왔잖아. 그러면 안 된다. 하하.”

안제현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동구 리틀야구단을 졸업한 후 휘문중학교로 진학했다. 월드시리즈 결승전에서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2이닝만 던진 뒤 마운드에서 내려와 우려를 자아냈지만 공을 놓고 재활에 전념해 현재는 정상적인 피칭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국가대표팀에서 황재영을 지도했던 황상훈(서대문구) 감독은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데다 승부욕, 리더십까지 갖춰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라고 평가한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현역 최고 투수 클레이튼 커쇼처럼 되는 것이 황재영의 꿈이다. 커쇼를 좋아하는 이유는 실력뿐 아니라 팬들을 매료시키는 인품을 갖췄기 때문이다.

[취재 후기] ‘월드시리즈 2연패’에만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는 황재영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고 순간 머쓱해졌다. 무조건 상대를 눌러야 되는 나이가 아닌 이들을 향해 ‘너희들은 또 이겨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해야 해’라고 밀어붙였던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안제현을 필두로 한 대표팀이 부담감을 떨치고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하고 왔으면 한다. 그래도 아시아-퍼시픽 예선만큼은 통과했으면 좋겠다. 찌는 더위로 불쾌지수가 극에 달할 8월,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를 지켜보는 것만큼 유쾌한 일이 없을테니 말이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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