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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먼지 풀풀 날리는 '퓨처스리그' 그라운드 "그래도 내일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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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먼지 풀풀 날리는 '퓨처스리그' 그라운드 "그래도 내일이 있잖아요"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02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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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2군 현황과 과제](4)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개막 현장...라커룸도 없고 만원관중도 없지만, 1군서 뛸 그날을 위해

[300자 Tip!] 미국에 마이너리그가 있다면 한국에는 퓨처스리그가 있다. 우리가 흔히 '2군'이라고 불렀던 팀들의 경기다. 마이너리그에서 눈물젖은 햄버거를 씹으며 메이저리거의 꿈을 키우듯 우리나라의 2군 선수들 역시 만원 관중들 앞에서 뛰는 그날을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땀을 쏟고 있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개막과 함께 올해도 퓨처스리그가 1일 시작됐다. 정규 576경기와 일본 소프트뱅크 3군과 고양 원더스와 갖는 번외 90경기까지 치르는 퓨처스 팀들의 올시즌 구리 개막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화성 히어로즈와 LG의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개막전이 펼쳐진 구리 챔피언스파크 경기장 전경. 아직까지 잔디가 자라지 않아 맨땅이 드문드문 보인다.

[구리=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노민규 기자] 1일 화성 히어로즈와 LG 트윈스의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개막전이 치러진 구리 챔피언스파크는 서울 강변역에서 워커힐호텔 앞길을 통해 경기도 구리 방향으로 들어오다보면 오른쪽에 보인다.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함께 사용하는 훈련장이다. 시내외버스가 많이 다니는 곳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그리 잦은 곳은 아니다.

오전 10시부터 선수들을 태운 버스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오전 11시에는 몇몇 팬들이 관중석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민망한 언덕에 앉아 음료수와 간식을 먹으며 경기를 기다린다.

일부 팬들은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다. 1군 리그와 달리 선수들과 팬들이 직접 한자리에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모습은 퓨처스리그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 오늘은 밖에서 도시락을 먹지만

경기 시작 1시간 30분 전부터 선수들은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다. 마이너리그에서 햄버거를 먹는다면 퓨처스리그에서는 도시락이다. 1군 리그 선수들은 경기 시작 전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해 뷔페식을 먹는 것과 대조적이다.

▲ 화성 히어로즈 선수들이 1일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LG와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좁은 덕아웃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일부 선수들은 잔디턱에 걸터앉아 있다.

조금이라도 시설이 갖춰진 경기장이라면 좁은 실내에서라도 먹을 수 있겠지만 퓨처스리그가 열리는 대부분 구장은 훈련장소와 겸한 곳이기 때문에 좋은 시설을 기대할 수 없다. 결국 따가운 봄볕을 맞으며, 그리고 바로 옆 강변북로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 소리를 들으며 도시락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핀다. 경기를 잘해서 더욱 발전한다면 1군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이렇게 도시락 먹는 거 힘들지 않아요? 명색이 그래도 프로선수인데."

이구동성으로 답이 돌아온다.

"괜찮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자주 해본 일인데요. 눈물젖은 도시락도 먹어봐야죠."

◆ 라커룸도 없는 열악함, 1군의 화려함을 상상하지 말라

한국의 일부 야구장이 시설이 열악하다고 하지만 퓨처스리그 구장만 할까. 일단 챔피언스파크에는 라커룸이 없다. 유니폼은 챔피언스파크 탈의실에 들어가 갈아입는다고는 하지만 가방을 둘 공간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락을 먹었던 벤치에는 선수들의 옷과 일부 장비가 담긴 가방이 놓여 있다. 라커룸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LG 우익수 채은성이 1일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열린 화성 히어로즈전에서 슬라이딩으로 타구를 잡아내고 있다. 잔디가 많지 않다보니 슬라이딩하면 한순간 모래먼지가 인다.

또 1군이 사용하는 구장은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지 않도록 대부분 구장에 비단결 같은 천연잔디 또는 인조잔디가 깔리고 그라운드의 흙도 제대로 다지지만 퓨처스리그의 그라운드는 거의 흙바닥이다. 내야와 외야에 잔디가 깔려있긴 하지만 아직 봄이라 그런지 드문드문 맨땅이 드러나 보인다. 벤치에 앉으니 건조한 흙 냄새가 확 풍길 정도다.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그리 센 바람도 아니다. 살짝 모래먼지가 일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에 열중한다.

그러나 잘 골라지지 않은 그라운드는 선수의 부상을 불러왔다. 6회초 화성 공격 때 우익수 옆으로 빠지는 2루타를 친 안태영이 2루에 슬라이딩하다가 발이 땅에 걸리며 삐끗했고 그대로 스파이크가 자신의 무릎을 찍었다. 고통 속에 누워있는 선수를 향해 트레이너가 달려갔고 스파이크에 찍힌 무릎이 약간 찢어져 교체했다. 안태영은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고 김성갑 화성 감독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 "우리 아들 잘해라" 어머니의 외침

이날 경기에는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도시락과 음료수를 싸들고 온 젊은 여성은 물론이고 중년의 관중도 있었다.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유망주 선수들이 너무 좋아 구리까지 찾아온 열성팬도 많았지만 대부분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이었다.

"회사에 아프다고 하고 결근해서 이름을 밝힐 수는 없어요. LG 백창수 선수를 응원하러 왔어요. 제 친구예요."

▲ 화성 히어로즈 선발투수 하영민이 1일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 가진 퓨처스리그 LG전에서 역투하고 있다. 고졸 신인 하영민은 광주에서 올라온 어머니의 응원 속에 선발승을 거뒀다.

한 미모의 여성은 음료수를 마시며 백창수를 열렬히 응원했다. 여자친구냐고 물으니 "아니요. 그냥 친구요"하고 까르르 웃는다.

그러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 중년 여성이 "남자친구지 뭐"하고 거든다.

"화성 선발투수로 나오는 하영민의 엄마예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세의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날 광주에서 올라와 한걸음에 구리까지 왔다. 비록 퓨처스리그지만 아들이 처음으로, 그것도 개막전에서 선발투수로 나온다는데 오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그냥 하영민 선수의 엄마라고만 해달라"는 이 중년 여성은 "아들이 아직 체격이 크지 않아서 걱정이긴 해요. 180cm에 68kg밖에 나가지 않아 더 체격을 키워야 해요. 그래도 프로팀에 들어와서 5kg 정도 키웠다고 하더라구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서 78kg까지만 키우면 딱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기자에게 캔커피 하나를 권했다.

경기 내내 투구 하나하나에 환호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탄식을 뱉어낸 하영민의 어머니는 아들이 1회말부터 볼넷 2개를 연달아 내주자 불안해했다. 하지만 무사 1,3루 위기에서 채은성을 땅볼 병살타로 잡아내고 1실점으로 막아내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이날 하영민은 어머니의 열성적인 응원에 힘입어 6.2이닝 동안 2실점 호투, 승리투수가 됐다.

▲ 관중들이 1일 화성 히어로즈와 LG의 프로야구 퓨처스리그 개막전을 보기 위해 구리 챔피언스파크 내 좌석 없는 '언덕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이기는 것은 둘째, 기량 향상이 목적

화성의 1번 타자로는 시범경기에서 홈런포를 3개를 터뜨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한국의 야시엘 푸이그' 강지광이 출전했다. 강지광은 첫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4회초와 6회초에 연타석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경기가 끝난 뒤 강지광은 "퓨처스리그에 온 것은 이기려고 하는 것보다는 기량을 향상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변화구 때 자주 균형이 무너지는 모습이 여전히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공이 들어오면 자신있게 휘두르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내가 약한 구질에도 자신있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갑 감독 역시 "아직 약점을 보이는 변화구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이것만 해결하면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며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모두 하나같이 약점이 있어 1군에서 뛰기에 조금씩 모자라다. 1군 경기를 보며 경험을 쌓을 수도 있겠지만 퓨처스리그에서 자주 경기를 뛰다보면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점수판은 완전 수동' 1군 경기장에는 최첨단 장비로 갖춰진 전광판이 있지만 구리 챔피언스파크를 비롯한 대부분 2군 구장은 아직도 수동으로 점수를 게시한다.

[취재후기] 경기가 끝나도 모두 끝난 것이 아니었다. 남아서 타격 훈련을 하고 일부 선수들은 수비 코치의 지시를 받으며 수비 훈련에 열중한다. 3시간이 넘는 경기에 지쳤을 법 하지만 이런 훈련을 한 시간여 더 하고 난 뒤에야 그라운드에서 나올 수 있다. 매미가 되기 위해 굼벵이가 땅 속에서 8년 정도를 살다가 나오듯 퓨처스리그 선수들도 1군으로 올라갈 날만을 기다리며 고단한 일상 생활을 보내고 있다. 경기장 벽에 걸린 '나는 오늘 자신과 팀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구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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