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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0) 덕성여대 '퍼스트 플레임', 축구로 타오르는 청춘의 아름다운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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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0) 덕성여대 '퍼스트 플레임', 축구로 타오르는 청춘의 아름다운 불꽃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1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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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체육생 축구 동아리…창단 10년 만의 우승, 건강과 동료애로 '웃음꽃'

[300자 Tip!] 사실 축구만큼 좋은 생활스포츠도 없다. 공 하나와 넓지는 않아도 여유있는 공간만 있어도 언제 어디서라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취미나 운동 목적으로 축구를 한다고 하면 아직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여자가 무슨 축구를"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대학에서는 동아리 차원에서 축구를 즐기는 여학생들이 적지 않고 축구동아리도 활성화돼 있다. 이 가운데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 학생들이 모여 만든 '퍼스트 플레임(First Flame)'은 최근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노민규 기자] 북한산 자락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덕성여대에는 축구장이 하나 있다. 그냥 일반 운동장이 아니라 엄연한 전문축구장이다. 지난해 7월 생긴 국내 12번째 '히딩크 드림필드 풋살구장'이다.

▲ 여자대학에도 축구팀이 있다. 이 가운데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 학생들이 만든 퍼스트 플레임은 올해 창단 10년을 맞이하고 있다. 덕성여대에는 지난해 히딩크 드림필드 풋살구장 12호가 생겨 더욱 훈련에 열중할 수 있게 됐다.

학생들만이 아닌 지역 주민과 시각장애인들까지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지만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 축구부 '퍼스트 플레임'은 훌륭한 훈련 시설 하나를 얻었다. 바람만 불면 모래가 흩날리고, 넘어지면 무릎이 까지는 맨땅 운동장에서 벗어나 인조잔디구장에서 마음껏 공을 찰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축구장 하나가 생긴 덕일까. 2005년 생활체육학과가 신설되면서 동시에 출범한 퍼스트 플레임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입상이라고는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이들이 국민대배 여자대학축구클럽대회에서 지난해, 올해 4위에 연속 입상했고 지난 4월 열린 여성가족부장관기 국민생활체육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선 대학부 우승까지 차지했다. 창단 10년 만에 처음으로 따낸 우승 트로피였다.

이들은 우승 트로피를 보고 하는 축구는 아니라고 한다. 그저 축구가 재미있고 함께 공을 차는 것이 즐거울 뿐이란다. 어떤 매력이 이들을 축구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 퍼스트 플레임은 지난 4월 국민생활체육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한국체대 등을 꺾고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전승에 무실점 우승이어서 대파란을 일으켰다.

◆ 별다른 성적 못내던 덕성여대, 우승후보 한체대 제압 '이변'

퍼스트 플레임은 전국여성축구대회 대학부에서 그냥 우승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전승에 무실점 기록까지 세우며 정상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우승후보 한국체대를 1-0으로 꺾은 것은 대이변이었다.

덕성여대 생활체육학과는 체육특기생 제도가 없어 흔히 말하는 '입시체육생'들이 진학한다. 이 때문에 퍼스트 플레임의 선수들은 대학에 들어와 처음 공을 차본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원들 얘기로는 중고교 체육 수업에서도 여학생들을 위한 축구 수업이 따로 없었단다.

한체대 역시 덕성여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훈련량이 엄청나기로 유명하다. 1주일에 두 차례 훈련하는 덕성여대와 달리 한체대는 주 5일 훈련을 실시하며 하루에 두 번 할 때도 있다. 이런 한체대를 덕성여대가 꺾은 것이다.

주장을 맡고 있는 조은영(21)씨는 "그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데다 한동안은 외부 대회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아마 한체대는 덕성여대에 축구팀이 있었는지도 잘 몰랐을 것"이라며 "한체대도 우리 학교에 그다지 많은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 생긴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 번 이겨보긴 했지만 아마 다음에 다시 붙으면 한체대가 큰 점수차로 이길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대반란임에는 틀림없다. 창단 이후 학과로부터 유니폼과 축구화, 전지훈련비는 물론 지도해주는 코치까지 지원받았지만 2010년부터 그 지원이 줄어들면서 한동안 방황 아닌 방황을 해야 했다. 축구를 해본 적이 없는 학생들이 모여 있어 전문 코치로부터 기초 기술 지도를 받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아예 예산지원까지 끊겨 지도교수가 입상 성적에 따라 나오는 장학금을 활용하는 고육지책까지 쓰고 있을 정도다.

조은영 씨는 "그래도 전국 대회에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나름 덕성여대를 알리는 일에 앞장선다고 자부한다"며 "학교에서 축구를 포함해 생활체육학과 4대 동아리(농구, G.X, 테니스)에 지원을 해주신다면 비록 생활체육 축구라도 덕성여대를 알리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덕성여대는 체육 특기생 제도가 없고 생활체육학과 학생들 역시 모두 입시체육으로 입학했다. 이 때문에 퍼스트 플레임에서 뛰는 학생 선수들은 모두 대학 입학후 축구를 접했다.

◆ 대화가 필요해? 살을 빼고 싶어? 축구를 즐겨봐

대부분 학생들이 축구를 해본 경험이 없기 떄문에 1학년생들은 처음 공을 만지고 트래핑을 하는 기본기 교육을 따로 받는다. 일주일에 4시간 훈련으로는 상당히 빠듯하다. 학생들 개인적으로 따로 훈련해야 하지만 여학생들이 공터 같은 곳에서 축구를 하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단다.

그래도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축구가 즐겁다. 서로 의사소통하고 대화를 하는데 축구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조은영 씨는 "팀워크가 중요한 종목이기 때문에 경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며 "의사소통 때문인지 서로 친밀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훈련을 하면서도 대화를 하기 때문에 축구 외에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퍼스트 플레임의 훈련은 왁자지껄했다. 깔깔깔 웃는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정난인(21)씨도 "축구를 해보니까 왜 남자들이 축구에 미치고 주말마다 동네축구라도 나가게 되는지 이해하게 됐다"며 "친목 도모 측면에서 축구만한 종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퍼스트 플레임에서 뛰었던 선배님들이 자주 찾아와 후배들을 격려해주고 YB-OB 대항전도 함께 여는 등 끈끈한 우애를 발휘한다"고 귀띔했다.

두 번째는 다이어트를 하는데 축구만한 운동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은 돈을 지불하고 피트니스 클럽에 등록해 땀을 흘리는데 축구를 하게 되면 조금만 공을 차도 온 몸에서 땀을 쭉 흘리게 된다고 한다. 그 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으로 다가온다.

이미정(20)씨는 "같은 여자가 보더라도 정말 운동을 잘 안 한다. 여성일수록 더욱 운동이 필요하다"며 "축구만큼 적은 시간을 하고도 땀을 흠뻑 낼 수 있는 종목이 많지 않다. 물론 학과 내에 농구부도 있긴 하지만 움직이는 거리가 축구만큼은 아니다. 축구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그만큼 체력소모가 크다"고 예찬론을 폈다.

▲ 축구는 최고의 다이어트 수단이자 경기를 하면서 대화를 통해 친목을 돈독하게 만든다. 퍼스트 플레임의 선수들도 일주일에 두 차례 훈련을 통해 땀을 흘리며 건강도 지키고 친밀감도 더하고 있다.

◆ K리그컵 출전 준비, 대회 참가도 하나의 기쁨이죠

이와 함께 여성들이 축구를 싫어한다는 편견을 버려줬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피력했다.

1학년 주장을 맡고 있는 오채은(19)씨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유럽 축구에 빠지는 등 워낙 축구를 좋아해 퍼스트 플레임에 들어왔다. 대학에 왔더니 축구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얼른 가입했다"며 "남자들의 축구 얘기를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많이 하게 되면 질리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요즘 여자들은 축구를 보러가기도 하고 나처럼 축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기도 한다"고 밝혔다.

전담 코치는 없지만 이미정 씨의 남자친구가 현재 축구 코치로 일하고 있어 훈련을 도와주고 있다. 전국여성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각종 전술이나 위치 선정을 도와주고 개인기 훈련을 도와준 코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덕성여대는 대학 여자축구 동아리의 '꿈'인 K리그컵 여자대학클럽축구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201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 대회는 해마다 11월 열리며 적지 않은 대학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고 있다.

조은영 씨는 "직접 붙어봐야겠지만 우리 실력이 중간 또는 중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며 "우리가 땀을 흘리고 열심히 노력한 것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회 출전도 또 하나의 기쁨이다. 굳이 우승이나 입상까지 욕심내진 않는다"고 말했다.

▲ 아직 축구 동아리의 경기는 대회 참가를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내심 여자대학끼리 모여 친선 교류전이나 여대리그전이 치러졌으면 하는 소망이 가득하다.

이와 함께 내심 여대리그전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밝혔다. 지금은 동아리 주장들이 모여 경기 한 번 하자고 하면 모이는 식의 친선 교류전 정도가 전부이지만 덕성여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숙명여대, 성신여대, 동덕여대, 서울여대에 모두 동아리가 있기 때문에 리그전이 열린다면 더욱 즐겁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첫번째 불꽃'이라는 팀 이름답게 이들은 축구를 통해 청춘의 아름다운 불꽃을 활활 태우고 있다. 엘리트 선수로 진출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이들의 선수 생활은 3, 4년에서 끝나지만 그 짧은 시간을 더욱 즐기고 집중하고 있다.

즐거움을 얻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친목 도모까지 하는 것이 생활체육의 목적이라면 이들은 생활 스포츠로서 축구를 제대로 즐기고 있다. 20대 초반 청춘들이 흘리는 구슬땀은 그래서 이 여름 햇살에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취재후기] 한 선수는 전국여성축구대회에 참가한 후 팔과 무릎 쪽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몸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있었다. 물론 다친 것을 보고 어른들이 걱정을 한 것이겠지만 "대체 그렇게 하면서까지 축구를 해야 하느냐"는 핀잔을 받았단다. 어른들의 근심은 이해하지만 아직까지 여자 축구에 대한 인지도가 낮은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그래도 퍼스트 플레임 멤버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이라도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뛰는 것이 상쾌하고 즐거워 축구의 마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들을 축구팬들로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면 어떨까. 대학 졸업 후 축구를 더이상 하지 않게 되겠지만 팬이 될 자격은 충분할테니 말이다. 대한축구협회나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대학 여자축구 동아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보는 것은 어떨까. 선수들이 직접 대학으로 찾아가 원 포인트 레슨을 해도 좋고 지도자를 지원해주는 것도 좋다. 분명 팬 확대를 위한 최적의 투자가 될 것이다.

▲ 퍼스트 플레임의 선수들이 각자 포지션 자리에 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퍼스트 플레임에서 축구에 대한 20대 청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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