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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풍성해진 임수정의 '은밀한 유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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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풍성해진 임수정의 '은밀한 유혹'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04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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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거래 동참하는 지연 맡아 유연석과 날선 심리대결

[스포츠Q 용원중기자] 임수정이 3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범죄멜로 ‘은밀한 유혹’(4일 개봉)에서 인생을 바꿀 위험한 거래에 나서는 지연을 맡았다. 영화는 마카오에서 동업하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사채업자에게까지 쫓기며 바닥의 삶을 살던 지연이 성열(유연석)으로부터 인생 반전의 제안을 받은 뒤 마카오 카지노 그룹 회장(이경영)에게 접근하는 내용을 담았다.

‘은밀한 유혹’은 신데렐라 스토리에서 미스터리 스릴러로 축을 옮겨간다. 스크린에는 임수정의 다채로운 표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4일 오전,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여배우의 차분한 모놀로그가 삼청동 카페 안을 그득 채웠다.

 

◆ 지연, 고전적 여성성과 잡초 같은 여성성의 대비

윤재구 감독님의 시나리오를 봤을 때 매력적인 스토리와 캐릭터가 눈에 들어왔다. 지연은 아주 독립적인 여성상은 아니다. 전반부에 여리여리하고, 고전적인 면모가 드러났다면 후반부에는 깡과 악바리 근성으로 끈질기게 상황을 견뎌나간다. 스릴러물에서 흔히 나오는 팜므파탈 설정은 아니다. 잡초와 같은 느낌이다. 이렇듯 클래식한 여성성과 잡초 같은 여성성의 분명한 대비가 좋았다. 특히 후반부의 계속 견뎌내는 느낌이 나와 비슷했다.

캐릭터에서 어떤 면이 확 다가올 때 출연을 결정하는 편이다.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캐릭터에 들어가는 배우가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서 캐릭터를 끌어내는 배우가 있다. 난 후자다. 내게 와 닿는 면이 있거나, 이해가 충분히 된다거나, 나와 닮았다거나 그러면 연기하고픈 욕구가 발동한다.

20대 때는 캐릭터 선택에 있어서 도전적이었다. 나를 던졌고, 흔히 볼 수 없는 캐릭터에 욕심을 냈다. 지금은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선호한다. 캐릭터의 다양성은 더 넓어진 듯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소녀적 캐릭터를 해왔다면 지금에서야 여자다운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지연은 내게 포만감을 준 캐릭터다.

 

물론 연기하기가 쉽진 않았다. 복합적 성격을 장면마다 보여줘야 했고, 후반부에는 극단의 감정을 표현해야 했으니까. 시나리오에도 감정이 디테일하게 나와 있진 않았다. 어려웠지만 해내고 나니 많이 성장한 느낌이 든다.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영화를 보게끔 할 만한 애착 가는 배역이다.

◆ ‘장화, 홍련’ ‘미사’ 그리고 10년의 세월

2003년 공포영화 ‘장화, 홍련’에서 날이 선 불안한 수미,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씩씩한 순정파 은채를 한 게 벌써 10여 년 전이다. 팬들이 슬슬 그런다. “누나, 드라마도...”. 난 “영화하는 거 좋다매?”라고 반격한다. 나도 내 안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는 캐릭터가 있다면 드라마를 해보고 싶다.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 등을 보면 드라마 장르가 무척 다양해졌다. 그래도 드라마는 뭐니뭐니해도 로맨스 아닐까?

공교롭게 ‘장화, 홍련’ 당시 함께했던 신인 여배우와 촬영감독 어시스트가 이번에 주연 여배우와 촬영감독으로 다시 만났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다. 날선 캐릭터를 오랜만에 맡게 돼서 애정이 샘솟았다. 복합적 감정, 날선 느낌, 불안과 어두움이 반가웠다.

‘장화, 홍련’ 때에 비해 연기 면에선 많이 유연해졌음을 스스로 느꼈다. 순간 집중도도 훨씬 높아졌고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도 잘 한다. 당시엔 준비했던 것 해내기 바빴는데 이젠 오감을 열어놓은 채 본능적으로, 상황을 흡수하며 즉각 대처한다. 성장한 거다. 후후.

◆ 원작 소설 ‘지푸라기 여인’...부자(父子) 같은 파트너 이경영과 유연석

▲ '은밀한 유혹'의 유연석과 임수정

시나리오를 읽은 뒤 원작인 프랑스 소설 ‘지푸라기 여인’을 독파했다. 시나리오와 비슷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시나리오는 한국 정서에 맞게 잘 쓰여 있었다. 둘 다 매력적이나 결말 부분은 확연히 다르다. 소설과 시나리오의 시대적 배경이 달라졌고, 여성의 지위나 사회에서 삶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졌으나 상황 속에서 욕망에 접근하거나, 욕망에 의해 건드려지는 부분은 비슷했다. 여주인공이 갈등하며 힘겨워하는 점은 동일해서 큰 괴리감은 없었다.

이경영 선배님은 워낙 관록이 있는 배우시고, 연석씨는 영화 경험이 많은 배우라 감정선을 맞춰 장면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들이었다. 두 분은 전작 ‘제보자’에서도 호흡을 맞췄던 터라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근하게 지내더라. 현장에서 난 캐릭터의 영향으로 말쑤도 적고 힘겨워하곤 했는데 두 분이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줬다.

◆ 음악과 글쓰기...배우인생 풍성하게 만들어줘

기타 연습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 초급은 넘긴 수준이다. 비틀스의 ‘블랙 버드’, 노르웨이 남성듀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Cayman Island’, 영화 ‘Her’의 OST인 ‘The Moon Song’을 즐겨 연주한다. 귀에 꽂히는 곡을 연습하면서 레퍼토리를 늘려간다. 최근엔 피아노 음악, 피아니스트에 관심이 많아졌다. ‘바흐 스페셜리스트’ 글렌 굴드 평전,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신간, 일본 만화 ‘피아노의 숲’을 탐독하고 있다.

 

글은 꾸준히 계속 써왔다. 올해를 ‘습관들이기’ 원년으로 정했다. 나와의 약속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고도 다짐했다. 일기 형식의 에세이, 정시 공연 영화 리뷰, 아이디어와 기획 관련 글을 쓰곤 한다. 그동안 써온 글들을 모아서 머지않은 시간에 책으로도 출간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매체 기고나 연재도 해볼 생각이다. 주변에서 권유하는 단편이나 중편소설 집필에도 관심이 있다. 대신 시나리오는 엄두를 내지 못하겠더라. 너무 시간이 많이 들고 어렵다.

이런 작업들이 내게 영감을 준다. 또 그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만나게 되면서 서로에게 자극을 준다. 이후 소규모 공연장에서 어울려 공연을 해보고 싶고,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기획해보고 싶다. 누가 또 아나? ‘위플래시’ 같은 음악영화에 도전을 해보게 될지.(웃음) 취미로 시작했는데 많이 힐링이 된다.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일찌감치 자기만의 관심 분야를 가지는 게 좋은 것 같다.

◆ 스스로를 괴롭혔던 20대...즐겁고 유연해진 30대

20대엔 오로지 연기만 생각하며 지냈다. 개인의 일상 따위는 돌보지 않았다. 좋은 연기를 해야지, 훌륭한 배우가 돼야지, 만족할 만한 작품을 찍어야지...스스로를 괴롭히는 시간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괴리감이 크니 그 어떤 걸로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주목받는데 왜 이리 힘들지,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30대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빨리 30대가 되기를 원했는데 3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편해졌다. 시야가 넓어진 것도 분명하다. 물론 지금도 치열함, 괴로움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겁고 유연해졌다. 지금에서야 배우의 일이 즐겁게 느껴진다. 나의 30대를 더 즐기며 싱글라이프를 만들어가고 싶다. 배우로서 더욱 다양하고 깊은 캐릭터 연기를 보여주고프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사람이 ‘배우’니까 본연의 일에 충실했던 것만큼은 부끄럽지 않다. 되돌아보면 임수정, 나답게 살아온 것 같다. 지금은 배우인 게 좋으며, ‘배우’로 불리는 게 좋다.

◆ 새 영화 ‘시간이탈자’ 1인2역 소화...빈번한 작품 활동 꿈꿔

지난해 상반기엔 ‘은밀한 유혹’을, 하반기엔 ‘시간이탈자’를 촬영하며 보냈다. 감성멜로, 판타지, 액션 스릴러 장르가 섞인 ‘시간이탈자’에선 1980년대와 현재를 각각 살아가는 윤정과 소은, 1인2역을 소화했다.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개봉될 예정이다. 작품을 많이 보여줘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공백기가 길어져 팬들에게 미안하다. 앞으론 자주 팬들과 만나고 싶다. 목표는 올해 하반기에 어떤 작품이든 촬영에 들어가는 거다. 이를 위해 들어온 시나리오를 열심히 검토하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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