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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스타 릴레이] (16) 김건호, "캐스팅 연락부터 시작되는 '연기 소풍'"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06.06 10:02 | 최종수정 2016.05.27 17: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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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짧은 시간 안에 매회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들'. 2002년 시작해 올해로 14년째를 맞는 장수 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를 대표로, '실화극장 그날', '기막힌 이야기-실제상황' 등은 실화를 재구성해 극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배우는 역에 따라 얼굴을 바꾸는 이들이지만, 특히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매회 새로운 역을 맡는 '만능'이 된다. 스포츠Q는 숨은 별빛들, 즉 '히든스타'들의 이야기를 담은 릴레이 인터뷰를 싣는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노민규 기자] 각종 드라마, 영화, 광고, 연극 출연 등으로 얼굴을 널리 알린 배우 김건호(65)는 스스로를 "행복한 배우"라고 소개했다. 언뜻 듣기에 흔한 이 표현이 특별한 것은 그가 연기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의 정도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 김건호가 촬영 네 시간 전 집을 나서는 이유는? 

김건호는 늘 촬영보다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집을 나선다. 촬영지까지 두 시간쯤 걸린다면 네 시간 전 출발하는 식이다. 김건호에게 연기는 촬영장에서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다. 촬영 섭외 연락을 받으면서부터 설렘은 시작되고, 촬영장으로 운전해 가는 길은 소풍과도 같다.

"나이가 들면 감동을 못 느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연기를 할 때면 가슴이 벅차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감동이 있어요. 흔히들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고 하는데 그 느낌이 뭔지 알죠.

배역이 들어오면 설레요. 역할에 맞는 옷을 정성들여 고르고 준비해 두죠. 촬영지까지 가면서 좋은 곳을 보면 사진도 찍고 여행하듯 즐겨요. 그렇게하면 받는 출연료의 두 배 되는 기쁨을 맛보게 돼요. '좋다'를 넘어서 '행복'한 거죠."

그는 행복의 '순간'을 넘어 '지속'을 언급했다.

"행복은 참 달콤한 맛이죠. 이 달콤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지만, 이를 지속하긴 힘들죠. 제가 이 일을 하며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분명히 저는 행복하다는 거예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하고 다른 일에 뛰어든 친구들이 많아요. 지금은 대기업 고위 간부, 큰 사업가가 돼 있지만 다들 절 보고 부럽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쓸 시간이나 즐거움이 없다고요."

 

◆ 북한말 대본 연습에 의심받은 웃지 못할 사연도 

김건호의 고향은 광주광역시다. 초등학생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장래희망 란에 항상 '배우'라고 적었으나, 혼나기 일쑤였다.

"의사, 대통령은 가만 두면서 배우가 된다고 하면 혼나는 이상한 때였죠.(웃음)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 왔어요. 그 당시엔 집안 사정이 괜찮았던 때라 논 한 마지기를 몰래 팔아 그 돈을 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탔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꼭 감춰 허리춤에 메고 잠이 들었으나, 깜빡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보니 돈은 사라져 있었다. 서울에 일가 친척, 친구도 없었던 어린 김건호는 남산 밑 파출소에 찾아가 잠을 청했다. 고향에 연락을 취해 동생이 어느정도의 돈을 가지고 올 때까지 3일간을 꼬박 굶었다.

"그때 한 지게꾼이 구멍가게에서 라면국물에 밥을 말아먹는데, 어찌나 먹고 싶던지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라면을 먹을 때면 꼭 밥을 말아먹죠.(웃음)"

 

서울의 첫 인상은 그렇게 차가웠으나, 김건호는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영화배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연기를 배우고 대본을 보고 연습하다보니 이런 열심에서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아파트 지하층에 살았는데, 대본 중 북한말로 은밀히 논의하는 장면을 혼자 연습한 것이 주민들에게 들리며 의심을 샀던 것이다.

"지하 한 켠을 연탄창고로 쓰다보니 주민들이 자주 다녔죠. 그런데 아파트 지하에서 자꾸 은밀한 북한말이 들리니 경찰에 신고를 한 거예요. 끌려가 곤욕을 치렀죠. 물론 무혐의로 풀려나 정중한 사과를 받았지만요.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한 기억이죠."

연극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장화홍련전' 등 연극 무대에 올랐고 방송은 1991년 대하드라마로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제5공화국', '상도', 영화 '인사동 스캔들', '강철중: 공공의 적' 등 다양한 작품에서 연기했다.

 

◆ "죽을 만큼 최선 다해야" "연기력만큼 중요한 사람 간 관계"

김건호는 일본 NTV 특집 정치 드라마 '고백'에서 김정일 위원장 비서 역을 맡고, 해외촬영 광고를 찍는 등 다양한 경험도 했다. 거지, 기업 총수, 이등병, 대령 등 안 해 본 역 없이 다 맡아봤다. 앞으로 꼭 해 보고싶은 역으로는 '비극'을 꼽았다.

"제 안에 있는 울분을 토하고 싶은 비극이 있는데 단 한 번이 안 들어오네요. 맡겨주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껏 수많은 작품에서 연기했으나, 여전히 만족보다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이 따른다.

"지금까지 연기하면서 단 한 번도 '내가 잘 해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이건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후회할 때가 많죠. 그럴 때면 우울함이 바닥을 칠 때도 있고요. 뭐든지 10년을 하면 베테랑이란 소리를 듣지만, 항상 다른 역과 작품을 받다보니 긴장과 기다림의 연속이죠. 열심히 해서만은 안 됩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해야죠."

김건호는 지금까지 연기를 해 오면서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싶은 말들이 여럿 있다고 했다. 크게 나누자면 연기력만큼이나 "사람 간 관계를 중요시하라"는 것과, "독서와 공부"다.

 

"연기는 다함께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꼽는 네 가지 덕목은 사랑, 희생, 봉사, 양보예요. 젊었을 땐 저도 이런 것들을 많이 놓쳤는데, 지금 시작하는 이들이 정신적인 자세, 사람 간 관계의 중요성을 알아두면 좋겠어요. 그리고 평소 독서와 공부에서 얻는 상상력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되니 독서, 공부를 놓지 말았으면 해요."

김건호에게 이런 사랑, 희생, 봉사, 양보의 중요성을 알려준 사람은 그의 아내다. 김건호는 인터뷰 중 갑작스레 "나는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의 탈을 쓰고 남자들과 섞여 사는 게 좀 그렇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여성 혐오'가 최근 뜨거운 감자로 대두된 상황에서 이는 당황스러운 발언이었으나 이어진 내용은 깜찍한 반전을 안겼다.

"여성은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고 선녀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흔히들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라'는 말이 있지만 여성은 하늘을 뛰어넘는 우주같은 존재죠. 항상 사랑과 희생으로 뭉쳐서 살잖아요. 내가 지금 사랑, 희생같은 정신을 알게 된 것도 아내 덕분이죠. 지금껏 저를 위해 묵묵히 도와준 든든한 조력자예요."

[취재후기] 김건호는 친숙한 인상만큼 재치가 넘치는 배우다. 연기에 대한 기쁨, 아내에 대한 사랑 등 인터뷰에서 보여준 매력도 다양했고, 유쾌한 언변이 빛난다. "연기는 즐거운 소풍"이라는 그가 딱 한 번 겪어보지 못한 작품은 '비극'. 슬픔을 토해내는 연기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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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영 기자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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