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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운 작가 '단순함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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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운 작가 '단순함의 미학'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4.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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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미례 객원기자] 억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독일 여자 느낌이 솔솔 풍겼다. 장고운 작가는 회화에만 몰두한다. 젊은 작가들이 매체, 설치 등 장르의 유행을 탈 때도 우직하게 그림만을 그려왔다. 그의 그림은 이상한 용적을 지닌 단순한 그림과 같이 보인다. 현란하고 아찔한 현대미술 시선으로 바라보면 매우 담백하고 때론 소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모두가 화창한 봄날의 탐스런 꽃망울만 바라볼 때 그는 홀로 나무기둥 아래 콘크리트 화단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다. 익숙한 시선, 추종, 시끌벅적함 가운데 그의 그림은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조용히 맥박을 짚고 있는 듯하다.

▲ 밤 까페 밖으로 보이는 불빛과 창에 비친 조명 Oil on canvas

어디에나 존재할 것 같고 누구나 다 알법한 장면과 기억, 그렇게 어떤 장면은 개개의 역사라는 맞춤형 필터를 통해 그 장면을 보는 사람이 다른 것들을 기억하게 만들죠. 그런 장면들을 저는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작가는 익숙한 바라봄의 습관, 당연함을 그만의 시선으로 잘라내 그려내고 싶었다. 출근길 아침 햇살에 일렁이는 그림자. 늦은 오후 벽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 지친 밤 저마다의 이유로 켜진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빛의 조화를 바라본다. 때론 삶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단함에 지친 우리를 위로한다는 시선을 그림으로 풀어낸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경험의 파편들이 막막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이죠. 묘하게도 이런 파편들은 캔버스 위 물감의 중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같은 장면들이 그려지고 지워지고 또 그려져 하나의 형상이 나오게 되죠. 기억과 닮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 쌓여 그림이 된다고나 할까요?”

현대인에게 있어 어제와 오늘, 내일의 일상은 엇비슷하다. 작가는 이렇듯 무심한 하루하루 가운데 스쳐가는 시선, 시간을 애정을 담아 따스하게 그려낸다. 그의 그림 가운데 자칫 진부할 수도 있는 소재인 꽃 시리즈를 작업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꽃 그림은 자기 비판에서 시작됐어요.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한 독일 유학 생활이 1년 정도 지났을 때예요. 1년 동안 제가 했던 것은 어학 공부와 식당 웨이트리스 아르바이트 일이 전부였죠. 그림을 그릴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빠지게 됐을 때 ‘실패한 작가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어요. 그때 문득 떠오른 장면이 길거리에서 풍경화를 그려서 파는 거리의 화가였어요.”

▲ 꽃그림 시리즈 Oil on canvas

장 작가는 길거리 화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는 흉내내고자 했다. 방법론을 강구한 끝에 어릴 시절 탄성을 지르며 보았던 밥 로스의 비디오 교본을 참고하기로 결정했다. 테크닉의 대가였으며 이발소 그림의 표본이라고 할 수도 있는 밥 로스의 그림은 한때 대유행한 바 있다. 이 교본에서 제시한 13개의 꽃그림을 그린 것이 바로 꽃그림 시리즈다.

이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통속적인 그리기의 방식을 습득한 것도 흥미로웠지만, 그 책에서 이제 막 그림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제시하는 방법이 지금까지 자신이 작업해온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데 놀랐다. 오브제로서의 꽃이 아니라 회화 자체에 대한 되물음이 번뜩인다고나 할까.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무엇일까.

▲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고운 작가

“딱히 떠오르는 건 없네요. 매순간 어떤 것을 보거나 읽거나 들으면 심하게 공감하면서 빠져들 때가 있는데 그런 자극은 저를 감정적으로 힘들게 해요. 오히려 강한 몰입과 자극이 두려울 때가 있죠. 그래서 영화든 소설이든 저는 무덤덤한 것을 좋아해요. 심심한 제 그림처럼 말이죠.”

얼마 전까지 작가임을 드러내거나 작가로 정의내려지는 것이 두려웠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시선보다는 스스로의 시선에 더 집중하는 작가이기를 원한다. 내공이 생긴 눈치다. 장 작가는 “복잡한 세상에 대한 표현을 장황한 설명이 아니라 정직하게, 군더더기를 덜어낸 채 그림을 통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화방에 들어가 엄청난 종류의 물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빠져드다는 장고운 작가. 물감을 짜고, 붓에 물감이 개어져 캔버스에 발려지고, 그 색이 하루이틀이 지나 마르고 광택을 내며 달라지는 이런 창작 과정에서 환희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함의 미학을 성찰하는 화가임이 분명하다.

 

장고운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학부 및 전문사 졸업. 이후 독일 베를린, 네덜란드 로테르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3년간 마쳤다. 현재 경기도 양주 시립 777레지던시에서 작업 중이다. 일상에서 보이는 순간,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들을 관찰해 화폭에 옮기고 있으며 담백한 그리기 방식을 추구한다. 현재 실내의 빛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옮기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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