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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수려한 비주얼, 성긴 드라마 '경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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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수려한 비주얼, 성긴 드라마 '경성학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09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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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 엄지원 호연, 눈길 붙드는 미장센...몰입 힘든 영화적 상상력

[스포츠Q 용원중기자]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은 여러 면에서 최근 충무로 트렌드를 담고 있는 영화다. 남성영화가 대세인 충무로 제작 풍토에서 속속 선보이는 여성 캐릭터 영화들 가운데 한 편이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 시절을 다룬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경성학교’는 황국 신민화 정책이 극에 달하던 1938년 민족말살 통치기를 배경으로 한다. 몸이 약한 주란(박보영)은 계모 손에 이끌려 경성 주변 외부와 단절된 요양학교에 전학 온다. 외로움을 느끼는 주란에게 다가오는 인물은 급장 연덕(박소담)과 교장(엄지원)뿐이다. 연덕과 가까워진 주란은 우수 학생들만이 갈 수 있는 도쿄 유학까지 꿈꾸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들이 하나 둘씩 이상 증세를 보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라진 소녀들을 목격한 주란은 기숙사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의문을 품고, 실체를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간다. 하지만 주란에게도 실종 소녀들과 비슷하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박보영 박소담 엄지원(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경성학교’는 학원 공포물인 ‘여고괴담’을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각광받았던 이유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의 압축적 공간으로써 학교, 계층적 질서의 최약자인 10대 여성이라는 상징성이 현실에 대한 공포감을 배가하며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여고괴담’이 동시대성을 장르물로 잘 엮어냈다면, ‘경성학교’는 민족의 잔혹사를 장르물로 풀어내는 숙제를 품은 채 출발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리 성공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초반엔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계에서 불안하게 존재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소녀에서 여성으로의 과도기에 선 여학생들을 중첩시키며 정체성의 혼란에 주목하는 듯싶더니 이내 봉인된 미스터리를 향해 긴장을 고조시킨다. 시대적 배경과 감독의 상상력이 결합한 ‘비밀’을 사춘기 여성들과 연결시키면서 드라마는 다소 버거워 보이고, 무리한 전개가 이뤄지는 느낌이다. 그들 사이의 우정과 갈등이 밀도 높게 그려지지도, 교장과 학교로 상징되는 야만적 체제의 희생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 해도 왜 이런 사건이 이 공간에서 일어나야 하는지, 중반 이후 떠오른 물음표는 끝날 때까지 명쾌하게 해결되질 않는다. 영화적으로 매력적인 시대에 오히려 상상력이 갇혀버린 건 아닐까.

반면 촬영과 미장센은 인상적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기숙학교로 향하는 검은색 승용차를 부감으로 잡아낸 도입부 시퀀스는 앞으로 펼쳐질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응축해 보여준다. 1930년대 기숙학교를 재현한 미장센은 소품과 의상, 비밀스러운 공간 창조 등 공들인 비주얼로 눈길을 붙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극의 3각축을 형성한 박보영 엄지원 박소담의 연기는 안정적이며 호흡도 만족스럽다. 러닝타임 1시간39분. 6월18일 개봉.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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