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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지연 '미운 오리새끼에서 당당한 디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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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지연 '미운 오리새끼에서 당당한 디바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04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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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서편제' 타이틀롤 맡아 감동 전달

[300자 Tip!] 미친 가창력과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 차지연이 창작뮤지컬 ‘서편제’에서 눈먼 소리꾼 송화로 관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뮤지컬 넘버와 판소리까지 소화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을 가능하게 한 동인은 과거 겪었던 좌절과 상처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수가 되고자 했던 그는 방향 전환을 해 뮤지컬 무대에서 차곡차곡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6월부터는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모차르트를 후원하는 남작부인으로 또다시 변신한다. 보컬 레슨, 중성적 캐릭터 도전이 현재의 소망이다.

 

[스포츠Q 용원중기자]

비운의 명성황후(잃어버린 얼굴 1895), 관능의 집시여인 카르멘(카르멘), 눈먼 소리꾼 송화(서편제). 뮤지컬 배우 차지연(32)이 지난해 9월부터 숨 돌릴 틈조차 없이 갈아타온 동서양, 근현대사의 인물들이다. 한(恨)이 집약된 캐릭터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과거를 더듬어보자. 압도적인 가창력에도 뚱뚱하고 못생긴 외모로 소외되는 에피(드림걸스), 포로가 돼 조국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누비아 공주 아이다(아이다), 투옥된 연인으로 인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 후 연인의 아들을 낳아 키우는 메르세데스(몬테 크리스토) 역시 그랬다.

차지연이 ‘서편제’(5월 1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의 송화로 무대를 흥건히 적시고 있다. '서편제'는 동명의 소설 원작을 토대로 어린 송화와 동호가 어른이 되고 유봉과 갈등을 빚으며 이별과 만남을 겪는 과정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봄비가 쏟아지던 3일 오후 무대에 오르기 전 차지연을 만났다. 전날 공연에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아낸 바람에 얼굴이 퉁퉁 붓고 몸도 최악인 상태였다.

“2010년 초연 이후 세 번째로 송화를 연기하고 있으니 특별하죠. 한 폭의 수묵화처럼 여백이 많고, 무대는 텅 비워져 있어요. 송화 역시 모든 걸 다 비워낸 인물이에요. 채울 게 많지 않겠어요? 그 어떤 화려한 라이선스 뮤지컬보다 향이 진하고 오래 남을 작품이라고 여겨요. 제가 원래 북잡이(고수)였는데 우리의 음악 뿌리와 정서를 좇는 작품에 참여한 건 정말 운명적인 일이죠.”

▲ '서편제' 중 송화와 동호의 이별 장면

◆ 국악인 집안에서 북잡이 꿈꿔...방향전환 후 뮤지컬 데뷔

인간문화재였던 외할아버지 등 외가 식구 대부분이 국악에 종사해 차지연 역시 북채를 잡았다. 대전 한밭고 시절 배구부 주장으로도 활약했으나 국악을 전공하기 위해 서울 홍익여고로 전학까지 했다. 하지만 국악, 그중에서도 타악은 남자들이 독차지한 세계였기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입학 후 가수 데뷔를 꿈꿨으나 좌절의 신산함을 맛봐야 했다. 흘러흘러 2006년 라이선스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뮤지컬 무대에 상륙했고, 오늘날에 이르렀다.

초연부터 송화 역은 신세대 소리꾼 이자람과 뮤지컬 디바 차지연이 소화했다. 일반적인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것과 아울러 단장의 판소리 서편제까지 소화해야하므로 배우로써 보통 어려운 도전이 아니다. 그럼에도 차지연은 늘 그래왔듯 폭발하는 에너지와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연기·가창으로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어떤 역을 맡느냐에 따라 실제 생활도 달라져요. 카르멘 때는 여러 사람들과 에너지를 나누면서 명랑 쾌활하게 지내요. 반면 송화를 할 때는 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죠. 눈을 감은 채 물건을 찾다가 답답한 심경을 이해하고, 어둠에 어떻게 익숙해졌을까, 옷의 색깔 선택이나 손톱 정리는 어떻게 해냈을까 사사로운 것들을 생각하곤 하죠.”

숱한 작품과 역할을 소화해왔다.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송화’와 ‘명성황후’를 꼽는다. ‘서편제’는 절절한 연기로 탄탄한 작품에 깊이를 더했으며, ‘잃어버린 얼굴’은 어둠의 포스 짙은 연기로 아쉬운 완성도의 작품을 구해냈다.

“명성황후는 자유분방하고 당당한 국모임에도 여자로서 시린 구석이 많잖아요. 그런 삶을 잘 표현하고 싶기에 정말 다시 해보고 싶죠. 송화의 경우는 이제야 제 마음상태가 송화와 잘 맞는 경지에 온 것 같아요. 무대에서 보이는 것 너머의 삶마저 관객이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게 숙제죠.”

▲ '서편제'의 한 장면

◆ 상처와 자학의 과거 딛고 당당한 디바로 거듭나

차지연의 과거는 아픔과 상처투성이였다. 본인은 “몇 차례를 빼고는 행복해하거나 웃었던 기억이 별반 없다”고 고백할 정도다. 꿈을 포기해야 했고,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고 심지어 뮤지컬마저 먹고 살기위한 수단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172cm의 큰 키와 통뼈 체구는 내내 콤플렉스였다. 연출자와 상대배우 눈치 보기 급급했고 잔뜩 주눅이 들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히려 미워했다.

“어느 순간 ‘이게 그냥 나야, 난 괜찮아’라고 놔버리게 되자 어떤 역할이 들어와도 수줍은 욕심과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 옷은 한 번 입어보고 싶다’는. 또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찬 배우, 스태프와 함께 하면서 충만함, 감사함을 느끼게 된 듯해요. 과거의 아팠던 시간들 역시 무대 위 연기를 풀어내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됐고요. 요즘은 제가 경험했던 아픔이 관객에게 치유와 위로로 순환되는데 희열을 느껴요.”

‘미운 오리새끼’에서 ‘당당한 디바’로 거듭나면서부터 진가가 120% 발휘되기 시작했다. ‘카르멘’에서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뇌쇄적인 여인의 매력을 무대에 펑펑 터뜨려 대중 및 평론가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 '카르멘'의 도발적인 모습

◆ 다양한 이미지...한국적 구성짐과 서구적 그루브 공존 보컬

차지연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다. 비천함과 고귀함, 비련의 여인과 당당하면서 섹시한 여인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음색에 있어서도 한국적 구성짐과 서구적 그루브를 함께 지녔다.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의 폭이 다른 배우들보다 광대하다.

“한의 정서는 태어날 때부터 피 안에 흘렀던 것 같아요. 여기에 북을 치면서 리듬을 쪼개고 늘리는 리듬감을 몸에 익혔죠. 박자에 민감해지다 보니 그루브함이 생겨났고요. 음악도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키가 아니라 유익종, 김현식, 임재범, 최백호 선생님의 노래를 들어서 옛 감성에 익숙해졌나봐요.”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는 비중이 큰 뮤지컬 배우임에도 정식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부터 차량 안, 분장실, 귀가 이후에 이르기까지 내내 음악을 틀어놓고 듣는다. 아울러 노래의 가사를 연습노트에 일일이 옮겨 적은 뒤 곡의 흐름을 보고 익히는 게 가장 중요한 레슨이다. 여기에 그 순간 인물의 진심을 정확하게 말(노래)하는 데 공을 들임으로써 ‘차지연만의 노래 색깔’이 만들어졌다.

“전 노래 테크닉이 뛰어나지 않고 예쁘게도 부르지 못해요. 정선아나 임혜영처럼 아름답게 노래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지만 이런 제가 좋아요. 하하. ‘노래 잘하는 배우’보다는 ‘연기 참 잘하는 배우’ 소리를 듣고 싶거든요. 그래도 ‘서편제’를 마치고나서는 레슨을 받아보려고요. 새로운 소리의 길을 찾아보고, 뭔가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요.”

여성과 남성의 면이 공존하는 중성적인 캐릭터를 꼭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첨가했다. 서스펜스 짙은 아주 연극적인 작품으로. 여배우로서 어려운 도전일 테지만 편견을 깨트려나가고 싶단다.

 

 

[취재후기] 차지연은 태도가 좋은 여배우다. 겸손하고 진지하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굿이다. 상처를 극복하고 세상을 껴안은 사실을 뒤늦게 접하고나서야 그의 절창 그리고 연기가 온전히 이해됐다. 작품마다 목표를 하나씩 설정해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왔다는 그녀, “10년 후면 재료가 그득 쌓인 내 안의 다락방을 부자의 마음으로 지켜볼 것 같다”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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