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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아닌 한국인 강유미·안창림의 특별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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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아닌 한국인 강유미·안창림의 특별한 도전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19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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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경계인 굴레 벗어나 당당한 국가대표로 발돋움…미식축구 삼총사도 월드컵 출사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재일동포란 수식어는 잊어라. 우리도 당당한 한국 국가대표다'

한국 스포츠계에 재일동포 선수들의 대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스포츠의 초창기를 이끌었지만 한동안 잊혀졌던 재일동포 선수들이 당당한 국가대표로 발돋움하며 국제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강유미(24·화천 KSPO)는 캐나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에서 2개의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올리며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을 사상 첫 16강으로 올려놨다.

남자 유도 73kg급의 안창림(22·용인대)도 국가대표 1, 2차 선발전 우승에 이어 지난 16일 최종선발전까지 석권, 오는 8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안창림은 오는 21일 태릉선수촌에 입촌, 세계선수권 출전을 위한 구슬땀을 흘리게 된다.

또 다음달 미식축구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에도 3명의 재일동포 선수들이 합류해 4강 신화 도전에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이들 모두 재일동포라는 사연이 있지만 오직 기량과 경쟁력만으로 당당한 '대(大)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 강유미는 FIFA 여자월드컵을 통해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춘기 나이에 단신으로 한국으로 온 강유미는 윤덕여 감독에 의해 깜짝 발탁돼 한국의 첫 16강 진출을 이끄는 2개의 어시스트를 배달, 이변을 일으켰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히로미가 아닌 국가대표 강유미로, 16강 택배 크로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첫 월드컵 16강에는 재일동포 3세 강유미의 대활약이 컸다. 코스타리카와 2차전에서 전가을의 역전 헤딩골을 정확한 크로스로 도운데 이어 스페인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0-1로 뒤지던 후반 8분 조소현의 헤딩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모두 오른쪽 공간을 돌파한 뒤 문전으로 감아올린 촌철살인의 닮은꼴 택배 크로스였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여자월드컵에 출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강유미로서는 '인생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동메달을 차지한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함께 하지 못했던 강유미는 윤덕여 감독에 발탁돼 지난 4월 러시아와 평가전을 통해 비로소 A매치에 데뷔했다.

물론 2010년 지소연 등과 함께 FIFA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에서 3위 돌풍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지난 5년은 강유미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강유미의 어렸을 적 이름은 오무라 히로미(大村裕美)였다. 일본 도쿄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아버지 강신보 씨와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 박효자 씨 사이에서 태어난 강유미는 조기축구에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축구를 처음 접했다.

아홉살 때 재일동포로만 이뤄진 유소년 축구클럽 무궁화 주니어에서 축구공을 차기 시작한 작은 소녀의 마음 속에는 태극마크를 달겠다는 꿈이 싹텄다. 그 목표 하나만 보고 17세 나이에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강유미의 한국에서 첫 스승은 최인철 감독이었다. 강유미는 동산정보산업고부터 시작, U-20 여자월드컵에 이어 인천 현대제철에 이르기까지 최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2012년 충남 일화가 해체돼 갈 곳을 잃은 상황에서 최 감독이 현대제철로 불러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이다.

올 시즌 KSPO로 이적하면서 홀로서기에 나선 강유미는 소속팀에서 맹활약, 대표팀에 발탁됐고 지난 5년의 어려움, 그리고 한국에서 7년째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모두 날려버렸다.

자신의 축구화에 할머니 한화자 씨의 이니셜을 박고 뛰는 강유미는 다음 목표는 여자월드컵에서 얼마나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느냐와 내년 벌어지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에 가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단 두 팀만 올림픽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여자월드컵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다.

▲ 안창림은 이원희, 김재범, 왕기춘 등 한국 유도 슈퍼스타들이 거쳐간 남자 73kg급 새로운 신예다. 한국 유도의 뿌리깊은 텃세마저 실력으로 이겨내 다음달 광주 유니버시아드와 8월 세계선수권,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우승에 도전한다. [사진=스포츠Q DB]

◆ 텃세 심한 한국 유도계에 새로운 활력, 안창림의 메치기는

사실 한국 유도는 재일동포에 큰 빚이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유도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김의태도 재일동포였다. 그러나 재일동포와 한국 유도의 관계라고 하면 얼른 '사랑이 아빠' 추성훈이 생각난다. 추성훈이 한국 유도대표로 활약했지만 뿌리 깊은 텃세에 일본으로 돌아갔고 2020년 일장기 도복을 입고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추성훈의 아픔은 잊어도 좋다. 안창림이 힘찬 메치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강유미처럼 재일동포 3세인 안창림의 체급은 이원희, 김재범, 왕기춘 등 한국 유도의 슈퍼스타들이 거쳐갔던 남자 73kg급이다.

지난해 3월 국가대표 2차 선발전 3위에 이어 6월 최종선발전 1위에 오르고도 정작 인천 아시안게임에 나가지 못했다. 국제무대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방귀만에게 아시안게임 출전자격을 줬던 것. 안창림은 러시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다. 사실상 '2진'이었다.

그러나 안창림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의 기량을 끌어올리는데만 신경썼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제주 그랑프리 우승에 이어 지난 2월 독일 뒤셀도르프 그랑프리 3위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생애 처음으로 아시아선수권까지 제패했다.

안창림은 쓰쿠바대 2학년에 재학하던 2013년 전일본학생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귀화까지 권유받았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한국 국적을 지켰다. 귀화는커녕 아예 용인대에 편입학, 태극기를 가슴에 달았다.

안창림의 목표는 당장 다음달 열리는 광주 유니버시아드부터 8월 세계선수권, 그리고 내년 리우 올림픽이다. 당연히 금메달을 노린다. 남자 유도의 간판이 된 안창림의 무한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안창림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훈련하고 있다"며 "지금 몸 상태도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지난해 2라운드에서 탈락했던 세계선수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 남규광(왼쪽부터), 송호철, 장량육 등은 불모지인 한국 미식축구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고 있다. 다음달 미식축구 월드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대표팀에도 포함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 관심 밖 미식축구 대표팀 이끄는 삼총사, 대이변 기대한다

다음달 미국에서 열리는 미식축구 월드컵인 월드챔피언십에는 송호철, 남규광, 장량욱 등 재일동포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재일동포라는 수식어를 거부하며 "우리도 한국인"이라고 외친다.

미식축구라는 종목은 미국에서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하고 있지만 한국은 비인기종목이다. 어쩌면 비인기종목보다 더 못할지도 모른다. 아예 대한체육회에서도 정식 가맹단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종목이다. 한국 스포츠계에서 주변인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다.

그럼에도 한국 미식축구는 당당히 아시아 예선을 통과, 본선티켓을 따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지원도 받지 못해 사비로 대회에 출전하는 환경에서 기량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런 만큼 일본에서 산전수전을 다겪은 재일동포, 아니 약간은 특별한 세 한국 선수의 기량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이들 트리오는 일본 사회인리그 X리그의 강호 후지쓰에서 뛰고 있다. 한국의 우승 클럽이 일본 우승팀에 80점차로 질 정도로 한일의 수준차는 현격하다. 일본리그의 강팀에서 뛰고 있는 이들의 경기력이 대표팀의 경기력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키커를 맡고 있는 송호철은 50야드에 달하는 킥 거리를 자랑한다. 한국의 톱 키커는 기껏해야 30야드에 불과하기 때문에 송호철의 킥은 필드골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공격루트다.

지난 7일 대구에서 열린 최종 평가전에서 남규광은 "누구와 맞붙어도 이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발혔다.

이제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자격(?) 한계도 사라졌다. 오직 한국내에 거주하는 순수 한국인이 대표팀 선수로 뽑힐 자격이 있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하다. 해외에서 살고 있는 동포 선수는 물론 귀화선수와 다문화가정 선수들도 충분히 태극마크를 달 자격이 있다. 이들을 동포니, 다문화가정(또는 혼혈)이니, 귀화인이니 나눌 필요가 없다. 태극마크를 다는 순간 모두 같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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