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환영을 위한 무대에는 또 다시 '변화하라(Time for Change)'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치른 한국 축구대표팀의 슬로건은 여자축구대표팀으로 이어졌고 그 약속이 지켜졌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여자축구 대표팀이 2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해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미국전지훈련을 위해 출국한 지난달에는 환영인파가 거의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지만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70여명의 취재진이 밀려들었고 축구팬들이 몰려들어 환호성을 지르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선수들은 입국장을 빠져나오면서 200여명의 환영인파를 발견하자마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도 환영인파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 관계자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안고 돌아왔던 1년 전의 아쉬움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것 같다"고 파안대소했다. 지난해 6월 30일 홍명보 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엿 세례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너무나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것이다.
◆ 탈락 위기에서 투혼 발휘, 다시 한번 감동을 보여주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대표팀과 지금의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성적은 조별리그 2차전까지 1무 1패로 같았다.
2차전에서 졸전 끝에 알제리에 1-4로 대패한 남자대표팀과 2-1로 앞서고도 막판에 동점골을 내줘 월드컵 첫 승을 놓친 여자대표팀 모두 3차전을 어려운 상황에서 맞았다. 무조건 이겨야만 16강에 나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것도 닮아있었다.
그러나 남자대표팀은 벨기에와 경기에서 무너져 1무 2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귀국했고 여자대표팀은 선제골을 내주고도 후반에 2골을 내주며 2-1 역전승을 거두고 프랑스와 16강전까지 치렀다. 2차전까지는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 뒤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에 대해 전가을(27·인천 현대제철)은 "스페인전 전반전은 힘이 없었는데 후반에는 다들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열심히 뛰었다"며 "아마도 윤덕여 감독님께서 라커룸에서 던진 '국민들께 이런 모습밖에 안보여줄거냐'는 말이 강한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스페인전에서 투혼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한국 여자축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이어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북한과 4강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동점골에 이어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역전 결승골을 내주면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당시 투혼은 국민들의 마음 한 구석의 영원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 투혼이 여자월드컵을 통해 다시 발휘된 것이다.
여자대표팀 선수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투혼과 감동을 다음 경기에서도 다시 보여줄 것을 다짐했다.
주장 조소현(27·현대제철)은 "월드컵을 워낙 힘들게 준비해서 얻어가는 것이 많았으면 했는데 다행히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기쁘고 즐겁다"며 "4년 뒤에 프랑스에서 또 월드컵이 열리는데 그 때는 더 좋은 경기력으로 이번에 해낸 것 이상의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다. 또 8월 동아시안컵이 있고 내년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이 있기 때문에 준비를 더 잘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부족했지만 자신감 잃지 않았다는 여자축구, 더 강하게 만들려면
윤덕여 감독은 환영식이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에서 "아직 한국 여자축구는 세계 강팀과 비교했을 때 많은 것이 모자란다. 그러나 그만큼 더 많은 발전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했다"며 "어렸을 때부터 개인능력을 키워야 하고 강한 팀과 잦은 경기를 통해 적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높은 벽에 맞서 당당하게 겨루기 위해서는 A매치를 자주 가지면서 세계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얘기였다.
또 맏언니 김정미(31·현대제철)도 "세계 무대에서 경기를 갖는 기회가 많지 않다. 아시아권에서는 자주 A매치가 열리긴 하지만 세계 강팀은 또 달랐다"며 "스피드와 몸싸움, 슛 모두 부족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팀들과 자주 맞붙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12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 여자축구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분석 능력도 발전했고 체력이나 체격으로 봐도 세계 강팀에 못지 않게 따라갔다고 본다"며 "하지만 축구를 하는 동안은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늘 낮은 자세,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되 자신감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 큰 책임감을 갖고 출전했다. 월드컵 16강이라는 목표는 자신들의 목표이자 하나의 책임이었다.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월드컵이긴 하지만 그래도 16강을 해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다"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보고 꿈을 키울 어린 학생들이 여자축구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또 지금 뛰고 있는 선수들도 밝은 미래를 봤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월드컵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을 동료, 후배들과 나누고 8월 동아시안컵과 내년 올림픽 예선 준비에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며 "이번 월드컵 16강이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잊지 말고 여자축구에 성원과 관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월드컵 16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며 '변화하라'는 말에 이미 책임을 다했다. 5년 전에도 한국 여자축구는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 3위와 17세 이하(U-17) 여자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고도 발전과 변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16강이라는 목표를 투혼으로 만들어낸 선수들의 눈물과 땀이 헛되지 않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장기 발전 계획으로 응답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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