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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청 조정팀의 작은 기적, 어제의 무명들 이젠 '블루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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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시청 조정팀의 작은 기적, 어제의 무명들 이젠 '블루칩'이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29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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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11)] '조정사관학교'에서 찾은 패자부활전…열정·동기부여로 상위권 도약

[200자 Tip!] 엘리트 스포츠에서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 중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은 서로 데려가겠다고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선수들은 미래를 걱정해야만 한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선수의 삶을 포기하고 진로 변경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만 모여 작은 기적을 이룬 팀이 있다. 새로운 선수 인생을 살 수 있는 길을 찾고 전국에서도 상위권으로 도약하는 용인시청 조정팀이다.

[용인=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프로팀이나 실업팀에서 뛰는 선수라면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에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경우다. 프로, 실업팀에서도 기량을 뒤늦게 발전시킬 수 있지만 일단 뽑혀야만 선수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다.

▲ 용인시청 조정팀 선수들은 대학교 또는 고등학교 때 그 누구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전국대회 입상 경력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용인시청에 들어와 새로운 선수 인생을 살아간다. 전국에서도 상위권에 오르는 기적도 함께 만들어간다.

그렇지 못한 선수는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직업 선수의 꿈을 포기해야만 한다. 연습생으로 불리는 신고선수(육성선수)가 성공을 이뤄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

모든 선수들이 무명급이라면 어떨까. 용인시청 조정팀은 고등학교, 대학교 때 관심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모여 전국 상위권의 전력으로 도약했다. 이들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 반토막된 지원, 선수 육성으로 경쟁력을 키우다

용인시청 조정팀이 무명선수들로만 구성된 것은 재정 문제 때문이다. 시 재정이 바닥을 치면서 수영, 역도, 탁구, 보디빌딩, 정구, 복싱, 체조, 핸드볼 등 무려 12개 종목 팀이 2010년 해체됐다. 2005년 2월 10명의 선수로 시작한 용인시청 조정팀은 간신히 살아 남았지만 지원은 반토막이 났다.

창단 때부터 함께 하며 용인시조정협회 전무이사도 맡고 있는 조준형(44) 감독은 "경기도체육회에 있다가 용인시청의 제의를 받고 팀을 창단했다. 창단 당시만 하더라도 대표팀이나 다름없는 선수 구성이어서 2년 동안 전국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며 "그러나 시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2010년부터 선수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선수 유출에만 있지 않았다. 2010년부터 재정지원이 줄어들면서 선수들을 데려올 여력이 안됐다. 다른 팀들이 선수들을 모두 데리고 가니 기량이 처지는 선수들만 남았다. 이때부터 조준형 감독은 생각을 달리 했다. 조 감독은 "다른 실업팀과 스카우트 경쟁에서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았다.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데려와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용인시청 조정팀의 그 실험은 성공했다. 용인시청이 이전처럼 전국무대를 독식하지는 못하지만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 용인시청 선수들이 용인 기흥호수 조정경기장에서 훈련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시 재정 악화로 선수 육성과 발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용인시청 조정팀은 조준형 감독의 조련 아래 새로운 팀으로 변모했다.

지난달 부산 서낙동강 조정경기장에서 열린 장보고기 전국대회에서도 김수동(24), 제태환(24)이 출전한 무타페어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송유빈(26), 전혜종(24)이 호흡을 맞춘 더블스컬에서 3위, 박수진(21)이 나선 싱글스컬은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에이트 종목에서도 국내 최강으로 자리하는 K-water와 충주시청에 이어 동메달을 따냈다.

대학, 실업팀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선수들의 작은 기적이자 반란이다. 조준형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뛰면서도 늘 하위권에 처져있던 선수들이었다.

2년 연속 전국체전 싱글스컬 동메달을 따냈던 박수진도 그런 경우다. 대전체고 소속으로 2010년부터 3년 동안 출전했던 전국체전 고등부에서 단 한 차례도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조준형 감독이 믿는 또 다른 유망주인 전혜종 역시 경남체고, 대구대를 거치면서 전국체전 입상기록이 없다. 지난해 용인시청 소속으로 출전한 에이트 종목에서는 아쉽게 4위를 차지,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지난달 장보고기 전국대회 동메달로 기쁨을 누렸다.

▲ 용인시청 조정팀 선수들이 수상 훈련에 앞서 노를 들고 창고를 나서고 있다. 선수들은 학창 시절 전국대회에서 성적을 올리지 못했지만 용인시청에 들어와 입상권에 드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 스타 출신 감독의 열정,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기적을 만들다

조준형 감독은 현역시절 한국 조정의 에이스였다. 고교생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돼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출전했고 이후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과 1993년 버팔로 유니버시아드에 참가하는 등 한국 조정을 이끌어왔다. 조준형 감독도 애초에는 기량이 떨어지는 제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조 감독은 "선수들을 가르치면서 '왜 이걸 못 알아듣지, 왜 모르지'라고 생각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폼만 제대로 바꾸고 교정하면 충분히 성적이 오를 수 있는데 아무리 지적해도 고쳐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그 답답함을 영상촬영으로 해결했다. 비디오를 찍어서 보여주니 선수들이 그제서야 '내 폼이 이랬나'하고 생각하고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세밀한 부분까지 모두 찍히기 때문에 그만큼 설명이 잘 됐고 선수들도 비로소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또 조준형 감독은 아직까지도 직접 자전거를 타고 선수들의 훈련을 직접 지휘하는 열정을 보인다. 조 감독의 얼굴과 손에는 온갖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전날 훈련 도중 사고가 나는 바람에 생긴 '영광의 상처'들이었다.

▲ 현역 시절 한국 조정의 에이스였던 조준형 감독은 선수들에게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다. 지금도 선수들이 수상훈련을 할 때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지휘한다. 사진 속 감독 얼굴에 있는 온갖 반창고는 전날 훈련 지휘를 하다가 자전거에서 떨어져 생긴 열정의 증거들이다.

감독의 열정과 더불어 선수들의 동기부여도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기틀이 됐다. 조준형 감독은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어 열심히 하려는 정신무장이 되어 있다"며 "본인 스스로도 열심히 하고 하나하나씩 고쳐나가며 기량이 향상됐다. 패배의식을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니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에게 지옥훈련은 필수다. 이 가운데 전혜종은 용인시청에 들어와 불과 두 달 만에 체중을 30kg 이상 줄였다.

194cm의 거구인 전혜종이 용인시청에 입단했을 때 체중이 125kg에 달했다. 어깨 부상 등으로 2년 가까이 운동을 쉬는 바람에 몸이 그렇게 불었다. 그러나 조준형 감독의 지시에 따라 하루 7시간씩 기흥호숫가를 돌았다. 전혜종은 "기흥호수 한 바퀴가 3km 정도 되고 한 시간에 2~3바퀴를 돌기 때문에 하루에 50~60km씩을 뛰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달을 뛰니 체중이 90kg로 줄어 탄탄한 근육질 몸이 됐다"며 "지금도 하루에 20km 이상을 뛴다"고 말했다.

조준형 감독은 "전혜종은 워낙 살이 불어있어 다른 팀이 데리고 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웃으며 "지구력이 뛰어난데다 힘도 좋다. 처음에는 기흥호수 돌라는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워낙 성실하게 해내 깜짝 놀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선수들이 기흥호수 조정경기장에서 수상 훈련을 하기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학교 선수로 뛰면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이 오히려 동기 부여로 이어지면서 감독의 열정과 함께 성적을 끌어올리는 힘이 되고 있다.

◆ 계속되는 지옥훈련, 그래도 늘 즐거운 용인시청

전혜종 말고도 다른 9명의 선수들도 하루에 4, 5시간씩 노를 당긴다. 오전에 체력훈련을 하고 오후 2시부터 시작하는 수상훈련은 6시 정도에 끝난다. 또 저녁에는 자세 교정이 필요한 선수들에게 비디오를 보여준다. 저녁에 자율 체력훈련도 있다.

이 때문에 용인시청 조정팀은 '조정 사관학교'라고 불린다. 전혜종은 "용인시청을 거쳐간 수많은 선배 선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다른 팀에 가면 오히려 훈련이 쉽다고 한다"며 "아마 용인시청의 훈련량은 다른 팀이 절대로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빡빡한 훈련 일정이지만 훈련이 곧 그들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잘 알기에 단 한마디 불평불만이 없다.

주장 송유빈은 "감독님과 코치님이 많은 것을 챙겨주시고 선수들은 서로 신뢰하면서 열심히 한다. 그것이 성적을 올리는 비결인 것 같다"며 "일단 용인시청 운동량이 상당하다. 그래도 메달도 따내고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지니까 기꺼이 힘든 훈련을 소화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혜종도 "학생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닌 직업 선수로서 기량 발전을 이룬다는데 지옥훈련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성적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한다"며 "용인시청에 오는 선수들은 한두 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보면 된다. 직업선수로서 성적이 바로 돈과 직결된다. 그러다보니 미친 듯이 노를 당긴다"고 말했다.

▲ 용인시청 조정팀 선수들이 기흥호수 위로 힘차게 노를 저어가고 있다. 오전 체력훈련과 오후 수상훈련으로 이어지는 평일 일정은 빡빡하지만 이것만이 자신들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지옥훈련을 성실히 수행한다.

여기에 용인시청은 흔히 말하는 '케미'가 좋다. 건장한 남정네들만 10명이지만 26세 송유빈이 최연장자일 정도로 젊은 선수들만 모여있다보니 모든 것이 '쿨'하다는 것이 송유빈의 얘기다.

송유빈은 "신입선수들은 기존 선수들과 실력차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 그런 성장과정을 거친 선수들이기 때문에 다그치거나 혼내지 않는다"며 "훈련에서 있었던 일은 딱 훈련에서 끝낸다. 숙소나 일상 생활에서는 사생활을 지켜주면서 편안하게 지낸다. 그것이 10명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시청의 올해 목표는 역시 전국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리고 전국체전에서 우승까지 넘보는 것이다.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전국체전 금메달은 당면 과제다. 용인시청에 있는 10명의 선수 모두 자신들의 앞에 놓여진 더 큰 목표를 향해 쉼없이 물살을 가른다.

[취재후기] 조준형 감독은 아직 고민이 많다.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흐뭇하지만 언젠가는 이들도 용인시청을 떠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준형 감독은 "좋은 선수로 성장하고 국가대표가 되면 기쁜 일이지만 몸값이 올라가 다른 팀에 뺏긴다. 시에서 지원이 잘 되지 않아 항상 키워놓고 다른 팀에 내주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됐다"며 "돈이 없어서 다른 팀에 애제자들을 내준다는 것은 늘 아쉬운 부분이다. 역시 모든 것은 '돈'이 좌우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용인시청이 '조정선수 사관학교'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 용인시청 조정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훈련을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용인시청 선수들은 서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모여 더욱 똘똘 뭉치는 등 조직력까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 재정이 부족해 키워놓은 선수들이 다른 팀의 스카우트 대상이 돼 떠나보내는 일이 잦지만 '조정 사관학교'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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