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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클래식' 껴안은 대중문화, 신선하게...특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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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클래식' 껴안은 대중문화, 신선하게...특별하게...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10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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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 Scene 1. 2000년대 영화 ‘올드보이’에서 ‘더 라스트 왈츠’(미도의 테마)의 피아노와 클라리넷 선율이, ‘친절한 금자씨’에서 비발디(협주곡 2~3번, 현을 위한 협주곡)와 파가니니(카프리치오 24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잘 만들어진 복수극으로 기억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 시리도록 서정적인, 불꽃 튈 만큼 격정적인 이들 음악이 장면장면과 어우러졌기에 지금까지도 잔상 강한 작품으로 남아 있다.

▲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 Scene 2. 2014년 JTBC 드라마 ‘밀회’의 불우한 천재 피아니스트 선재(유아인)와 예술재단 기획실장 혜원(김희애)이 처음 만나 함께 연주하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아’는 남녀의 떨리는 교감을 시청자의 가슴에 고스란히 실어 날랐다. 위험한 사랑을 애써 접으려는 혜원과 이를 반박하는 선재의 갈등 장면에 등장하는 리스트의 열정 가득한 '스페인 광시곡’은 보는 이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고귀한 예술장르로 여겨져온 ‘클래식’이 대중적인 영화, 드라마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대중문화’는 클래식을 품으며 신선함과 특별함이라는 효과를 톡톡히 누린다.

◆ ‘랑랑...’ ‘그랜드 피아노’ ‘파가니니’ 개봉 잇따라...관객에 특별한 경험 선사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공연 실황을 꾸준히 상영함으로써 클래식 마니아의 니즈 충족과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 서온 멀티플렉스 메가박스는 지난달 27일 ‘랑랑 라이브 인 런던’을 개봉했다. 클래식 음악계의 슈퍼스타이자 중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랑랑의 런던 로얄 알버트홀 실황은 색다른 감상을 제공한다.

영화홍보사 아담스페이스의 김은 대표는 “무대가 먼 공연장과 달리 연주자의 생생한 표정연기, 디테일한 테크닉, 손가락 터치와 모션을 대형화면에서 볼 수 있기에 클래식 애호가와 입문자들이 주로 관람한다”며 “드라마 ‘밀회’의 영향 덕분에 일반 관객의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고 귀띔했다.

▲ '랑랑 라이브 인 런던'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그랜드 피아노'(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외 은퇴한 피아니스트의 목숨을 건 연주를 내용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그랜드 피아노’(17일 개봉), 19세기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삶을 영화화한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4일 개봉)가 연이어 관객과 만난다.

위의 영화들은 실재 혹은 가공의 연주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이와 별개로 국내외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은 미장센과 더불어 영화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해온지 오래다. 주제가와 배경음악으로 팝, 가요와 같은 대중음악이 사용되는 경우 역시 빈번하나 클래식 음악만의 효과가 분명 존재한다. 조원희 영화감독은 이를 “특별한 경험 선사”라고 압축한다. 그에 따르면 클래식은 오랜 세월을 통해 검증받은 음악이며 대중이 평소 향유하는 음악이 아니기에 관객에게 있어 특별한 대상이자 경험일 수밖에 없다.

◆ ‘밀회’ 클래식 향한 관심 촉발...밀도 높은 음악으로 시청자 마음 움직여

클래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라는 뇌관을 건드린 주인공은 단연 드라마 ‘밀회’다. 예술재단과 음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배경음악도 클래식이 대부분이다. 바흐의 ‘평균율 846번’, 리스트의 ‘파가니니 4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이 매회 쏟아진다.

SNS의 반응은 뜨겁다. 방영이 끝나는 순간 트위터 타임라인은 삽입곡 관련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다. 유튜브에서는 출연 배우 및 유명 연주자의 연주장면 동영상을 공유하는 사례가 확산한다. 멜론차트에서도 이 곡들의 순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주변의 직장인이나 주부들 가운데 취미 삼아 피아노 연주를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꽤 많이 접하게 된다.

▲ 격정 멜로 '밀회'의 김희애 유아인(사진 위)과 극중 유아인의 피아노 연주장면[사진=JTBC]

단순히 클래식 연주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유명 클래식 넘버들을 배치했다면 이 같은 반향을 지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지영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문화사업팀 대리는 “극 전개와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맞춰 클래식 명곡을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였다”며 “곡의 배경과 작곡가 설명을 동반하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 참여한 이들이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처럼 시청자 역시 과거 한번쯤 듣고 지나쳤을 법한 곡들이 공감각적으로 다가오니까 훨씬 신선한 느낌으로 귀에 쏙쏙 담는 것 같다”고 짚었다.

16세기 바로크 음악으로부터 시작한 클래식은 수백년의 시간을 묵혀온 완성도 높은 음악이다.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영혼을 흔드는 음악장르다. 그럼에도 흔히 들을 수 없기에 신비함,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는 판타지와 호기심으로 연결된다. 클래식 문외한들이라도 이런 음악을 영상과 함께 들으면 임팩트가 강렬하기 마련이다.

강태규 가요평론가는 “발라드 반주음악에 오케스트라나 현악파트가 들어오면 곡의 밀도가 급상승한다. 타 악기에 비해 감정적으로 밀어내는 힘이 강하다. 수용자의 마음을 움직여 몰입도를 높이기에 향후 드라마·영화든 가요음반이든 클래식과의 동거는 빈번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클래식은 어렵다? ‘충분히 즐길만한 콘텐츠’ 인식 확산

‘밀회’는 기획 당시만 해도 “클래식은 어렵다” “멀게 느껴지는 콘텐츠다”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우려를 샀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안판석 PD는 “어떤 사람이건 꺼려하는 뭔가에 대한 성취 욕구가 있다”며 “클래식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즐길만한 콘텐츠인데 적절한 계기가 없을 뿐”이라고 믿음을 줬다.

안 PD의 말대로 대중은 클래식을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선행 학습이 꾸준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클래식을 위해 열정을 쏟아붓는 청춘의 이야기를 그린 2000년대 일본만화 및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맹렬히 빠져들었고, '강마에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탐닉했다. SBS 예능프로 ‘스타킹’을 통해서는 특별한 천재로만 생각해오던 각양각색 클래식 연주자들을 손쉽게 접하며 놀라운 기량에 감동했다. 또 과거 고가의 클래식 음반과 달리 음원료가 저렴해지면서 클래식 음악을 부담 없이 접하는 기회가 늘어났다.

▲ '누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젊은 클래식 연주자 클라라 주미 강, 손열음, 김선욱(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클래식 업계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시향 등 클래식 연주단체들은 ‘찾아가는 음악회’ ‘해설이 있는 음악회’ ‘천원의 행복’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며 문턱을 낮추는데 공을 들였다.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활발하게 유치, 저변 확대에 주력했다. 김선욱, 손열음, 임동민·동혁 형제, 클라라 주미 강, 리처드 용재 오닐, 김정원, 최수열과 같은 젊은 연주자들은 대중과 소통하며 스타성을 발휘하고 있다.

클래식을 맹렬하게 파고든 대중문화, 대중문화에 품을 내주며 파급력을 강화한 클래식. 조원희 감독은 “귀에 발린 뻔한 레퍼토리를 쓰기보다 대중의 고급화된 취향을 겨냥, 선도하는 능력이 대중문화계를 살찌운다”며 "이보다 더 좋은 콜라보레이션이 어딨는가"라고 반문한다. 드라마 속 선재와 혜원은 가슴 아프게 ‘밀회’를 나누지만, 현실의 클래식과 대중문화는 ‘공개연애’를 당당히 즐기는 중이다. 나이와 신분차를 훌훌 털어버린 채.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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