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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스타 김병찬 고독사에 가려진 은퇴스타들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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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스타 김병찬 고독사에 가려진 은퇴스타들의 그림자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30 1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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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 금메달리스트의 쓸쓸한 죽음…생활고 시달리는 은퇴선수 복지 시급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비운의 역도스타 김병찬(46)씨의 쓸쓸한 죽음이 광주 유니버시아드 축제를 앞둔 국내 체육계에 비보로 전해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 스포츠를 위해 청춘을 받쳤던 우리들의 스타들이 은퇴 이후 과연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우울한 소식이다.

스포츠 선수들에게 '태극마크'는 하나의 목표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것은 영광이다. 해당 종목에서 국내 1인자로 인정을 받고 나간 올림픽,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내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다.

하지만 어떤 한 사람에게 국가대표와 국제대회 메달은 영광이 아닌 족쇄가 됐다. 또 수많은 현역 선수들은 은퇴 이후 자신의 삶을 고민하고 이미 은퇴한 선수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만 한다.

▲ 자신의 청춘을 한국 스포츠 발전에 모두 바친 선수들이 현역 은퇴 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현역 은퇴 뒤 선수들의 복지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체육인 행복나눔 기금마련 행사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김정행 대한체육회장(가운데)과 스타 선수들. [사진=스포츠Q DB]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역도 90kg급 금메달을 따낸 김병찬씨의 고독한 죽음은 태극마크와 메달이라는 것이 영광이고 기쁨으로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역 때는 알지 못했던, 아니 알 필요가 없었던, 또 다른 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러져가는 옛 스타 출신 선수들이 비단 김병찬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 메달연금 때문에 최저생계비 지원도 못받는 현실

30일 강원도 춘천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김병찬씨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남자 역도 90kg급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일약 한국 역도 중량급 미래로 떠올랐던 스타였다. 1991년 세계역도선수권에서도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냈고 아시아역도선수권에서는 1991, 1992년 2년 연속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된 그의 삶은 척박했다.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49만9288원)보다 많은 매월 52만5000원의 메달리스트 연금 때문에 지원도 받지 못한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으로 월 10만원 안팎의 의료 급여와 주거 급여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역설적인 것은 대한체육회가 국위를 선양한 국제대회 메달리스트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메달연금을 대폭 상향하는 바람에 생계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병찬씨는 상향 전 월 35만원을 받았지만 연금이 인상되는 바람에 1인 기준 월 61만7000원 가량의 최저생계비를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병찬씨처럼 또 다른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2008년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사건이다. 인성을 문제삼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것이 가려지지 않는다. 그 역시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해 은퇴 뒤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다가 살인사건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다.

농구선수 출신인 한기범 한기범희망나눔대표와 김영희 전 한국여자농구연맹 경기기술위원도 은퇴 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기범 대표는 두 차례나 심장수술을 받은데다 사업 실패까지 겹쳐 생활고에 시달렸고 김영희 전 위원 역시 거인병으로 투병하면서 최저생계비로 살아가고 있다.

▲ 한때 한국 농구의 대표적인 센터였던 한기범 대표는 두 차례 큰 심장수술을 받은데다 사업까지 실패, 생활고를 겪었다. 지금은 사회사업가로 재기에 성공했지만 현역 은퇴 뒤 생활고에 시달리는 선수는 그뿐이 아니다. [사진=스포츠Q DB]

또 전 농구스타였던 양경민은 한때 전체 연봉 5위 안에 드는 억대연봉 선수였지만 2013년 찜질방 좀도둑으로 전락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현역 은퇴 후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데다 이혼까지 하면서 생활비가 떨어져 먹고 살려고 돈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현역 시절 3억 넘는 연봉을 받았던 그가 찜질방을 전전하면서 훔쳤던 금액은 350만원이었다.

◆ 사회진출 연착륙 위한 지원대책 시급…선수 본인도 미리 준비를

은퇴선수들의 척박한 삶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1년 중국 일간지 징화시보는 2001년 유니버시아드 링 금메달리스트인 장상우가 베이징 번화가에서 묘기를 보여주며 구걸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당시 중국은 장상우를 사회에 연착륙시키기 위한 지원정책을 썼지만 2013년 다시 베이징 거리에서 구걸하는 장면이 포착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한국도 김병찬씨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볼 필요가 있다. 은퇴선수들이 사회진출에 연착륙하기 힘든 것은 스포츠계와 사회가 너무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처럼 엘리트 스포츠를 중시하는 나라일수록 더욱 심하다.

엘리트 선수들은 오직 자신의 훈련과 경기 결과에만 집중할 뿐 은퇴 뒤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준비를 전혀 하지 못한다. 프로선수라면 서장훈처럼 자신의 높은 연봉을 활용해 강남애 여러 채 빌딩을 갖고 노후를 완벽하게 대비할 수 있겠지만 이런 사례는 드물다.

프로가 없는 선수들이라면 더욱 심각하다. 현역 은퇴 뒤 오직 메달연금으로만 살아가는 선수가 부지기수다. 지도자로 변신하는 사례도 있지만 이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대부분은 10년 이상 자신이 해왔던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무직으로 살아가야 한다. 김병찬씨처럼 치유하기 힘든 병이라도 걸린다면 더욱 고통스런 삶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한체육회 국정감사에서 은퇴선수 2942명을 대상으로 한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48%에 해당하는 1272명이 무직이었다. 또 프로선수나 교수, 강사, 심판 등 스포츠와 관련한 업종에 종사하는 비율은 18%에 그쳤고 나머지 34%는 자영업이나 사무직 등 경력과 무관한 분야에서 대부분 비정규직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대한체육회는 지난 4월부터 맞춤형 직업훈련교육과 취업지원 서비스를 실시하는 한편 은퇴선수들에 대한 생활실태 조사와 함께 구직활동을 돕는 멘토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선수 본인들도 은퇴 뒤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선수들의 사회 적응도가 일반인들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미리 학업 등을 통해 은퇴 뒤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월드컵 16강 주역 '그라운드의 엘사' 조소현의 경우 현재 10년 뒤 자신의 삶을 미리 대비하고 있다. 바쁜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현역 말년에는 영어권 국가의 팀에서 뛰며 스포츠마케팅 공부를 할 계획이다. 박지성 역시 영국에서 스포츠마케팅 등에 대한 공부를 준비하고 있고 이영표 역시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캐나다 유학을 통해 스포츠마케팅 학업을 계획하고 있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직접 개척해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선수로서 성공하기 위해 개척할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엘리트 스포츠 제도 역시 훈련과 경기결과에만 올인해 선수들의 은퇴 후 인생 준비를 챙겨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은퇴 뒤 선수들의 '세컨드 라이프'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로 다뤄져야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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