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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34) 사막에서 마라톤 되찾은 송정미, '은퇴선수들, 기죽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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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34) 사막에서 마라톤 되찾은 송정미, '은퇴선수들, 기죽지 말지어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7.03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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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으로 마라톤 선수 접은 뒤, 사막마라톤으로 새 인생

[200자 Tip!]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송정미(26) 씨가 딱 그렇다. 그는 지난달 250km 고비 사막 마라톤에 참가해 160명 중 2위를 차지했다. 은메달이 중요한 게 아니다. 즐겁게 완주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는 엘리트 마라톤 선수였다. 실업팀에 스카우트돼 한국 여자 마라톤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불렸다. 그러나 갑작스런 지병으로 인생의 전부를 버렸다. 송 씨는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은퇴 후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은퇴 이후만 생각하면 걱정에 휩싸이는 모든 운동선수를 향해 이렇게 외친다. ‘기죽지 말지어다'

[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사막 마라톤은 250km를 뛰는 죽음의 레이스다. 하루 10리터씩 지급되는 물이 참가자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거친 모래와 찌는 태양 속에 식량과 장비를 둘러메고 6박 7일간 사투를 벌여야 한다.

▲ 송정미 씨는 250km 코스의 고비 사막 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했다. 함께 참가한 동료들로부터 '아시안 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송정미 씨는 “앞으로도 계속 뛰겠다”고 말한다. “왜 뛰냐”고 물으니 “안 뛰면 안 될 것 같아서”라며 “나도 한다. 여러분들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러분’은 미래가 불투명한 운동선수를 통칭한다.

그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마라톤 선수였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 인생의 전부, 마라톤을 잃다 

“스물하나였어요. 심장병 수술을 받았습니다. 동맥간개존증이래요. 마라톤을 하니까 아픈 걸, 가슴이 답답한 걸 당연하게 여겼던 거예요. 성인이 될 때까지 저도 부모님도 몰랐던 거죠. 수술을 받고 운동을 그만두게 됐어요. 아무 것도 할 게 없더라고요."

▲ 송정미 씨는 엘리트 마라톤 선수였다.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 만큼 촉망받던 유망주였다. [사진=송정미 씨 제공]

송정미 씨는 2008년 코오롱구간마라톤대회 2위, 2009년 전국체육대회 1만m 2위, 2010년 동아국제마라톤 풀코스 5위를 차지했다. 청주여중, 충북체고를 졸업하자마자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청주시청에 입단했다. 그때가 국가대표 상비군이었다.

“열심히 했어요. 남들은 쉬려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들이 미련하다고 할 만큼 뛰었어요. 동료들이 잘 때 새벽 운동을 하고 와서 자는 척 한 적도 있을만큼요. 그만큼 운동을 사랑했습니다.”

다른 세계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었다. 마라톤은 인생의 전부였다. 2010년 3월 처음이자 마지막 42.195km 풀코스 레이스를 마쳤는데 의사로부터 더 이상 뛸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온 세상이 하얘졌다. 깊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내일이면 운동하러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술을 찾게 됐어요. 8개월간 방황했지요. 주량이 소주 8병이 됐어요. 술자리를 밤에 시작해 아침에 끝내곤 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낳으셨는지, 왜 운동을 시키셨는지 부모님도 많이 원망했어요.”

▲ 심장병 판정을 받고 운동을 그만뒀던 송정미 씨는 국토대장정과 사막 마라톤으로 슬럼프를 이겨냈다.

◆ 국토대장정이 끝낸 슬럼프, 사막 마라톤으로 이어지다

암흑기에 마침표를 찍은 전환점은 다름 아닌 국토대장정이었다. 나락으로 떨어진 송정미 씨의 삶을 걱정하던 친구들이 고심 끝에 찾아준 돌파구였다. 합숙, 산행이 일상이었던 송 씨에게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국토대장정은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던 자존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힘겨워하는 동료들이 저를 찾는 거 있죠.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과도 친해질 수 있더라고요. 전우애죠, 전우애. 운동에만 전념하다보니 바깥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었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거더라고요. 존재감을 찾았습니다.”

이 경험이 사막 마라톤까지 연결됐다. 연이은 대장정으로 몸에 무리가 왔던 차에 고향 청주로 내려가다 고속터미널에서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망설일 것도 없었다. 이거구나 싶더라”고 회상했다.

4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두 달간 팔을 걷어붙였다. 파워포인트라고는 구경도 못해 본 송정미 씨에게 '섹시한 제안서'를 작성한다는 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100군데가 넘는 기업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 마라톤 선수 시절의 송정미 씨. 심장병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국토대장정과 산악 마라톤으로 새 삶을 살고 있다. [사진=송정미 씨 제공]

“그런 제안서는 저라도 거절해요. 돌이켜보면 우습고 부끄러워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사하라로 갔는지 아세요? 은행에서 1000만 원 대출 받았어요. 참가하고선 죽는 줄 알았어요. 마지막 날 피로골절로 레이스를 포기했어요. 하하하”

◆ “바깥 세상은 무섭지 않다”, 은퇴선수를 향한 메시지 

“고비 사막에선 당당히 완주했죠. 그것도 2등으로. 참가한 다른 분들이 저를 ‘아시안 머신’이라고 불렀어요. 동양인 중 등수 안에 든 사람이 제가 유일했거든요. 그런데 순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뛰는 내내 행복해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죠.”

지난해 2월 사하라 레이스를 시작으로 송정미 씨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고 있다. 국토대장정 스태프로, 다이어트를 원하는 여성들의 러닝 강사로, 아웃도어 업체의 직원으로 그리고 사막 마라토너로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하나 더. 은퇴선수들의 교육, 진로 설계, 취업 등을 주선하는 사업가가 될 준비까지 하고 있다. 송정미 씨는 “많은 운동선수들이 나처럼 불안해 할 것이다. 은퇴선수 에이전시를 차리는 것이 꿈”이라며 “그들에게 등대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밝혔다.

▲ 송정미 씨의 최종 꿈은 은퇴선수 에이전시를 설립하는 것이다. 달리기는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해 하고 있는 운동선수들을 향한 격려 메시지다.

프로, 아마 종목을 막론하고 운동선수라면 생각해봄직한 결정적인 한마디가 이어진다.

“세상을 두려워 말았으면 해요. 바깥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아요. 우리와 다르지 않더라고요. 모든 사람이 나보다 훨씬 똑똑할 것이란 생각도 틀렸어요. 운동선수였다는 사실로 기죽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는, 우리는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더라고요.”

[취재 후기] 사막 마라톤의 고독함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하려던 인터뷰는 스포츠 선수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급선회됐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지도자와의 마찰, 부상, 부적응 등으로 은퇴를 택한 운동선수들이 꼭 새겨들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잔뜩 듣게 돼 무척 뿌듯했다. 송정미 씨의 사례가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에 떨고 있는 현역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되기를 바란다.

▲ 6박 7일간의 험난한 사투. 송정미 씨는 지난해 사하라 사막에서 완주하지 못한 한을 풀고 고비 사막을 정복했다. [사진=송정미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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