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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선을 다한 '마돈나' 권소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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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선을 다한 '마돈나' 권소현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7.06 23: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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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전 최선을 다했어요...언제나”.

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받은 영화 ‘마돈나’(감독 신수원)에서 일명 마돈나로 불린 미나가 잔뜩 짓눌린 목소리로 이 말을 했을 때 짠한 마음이 절로 들게 된다. 이 효과는 오롯이 여배우 권소현(29)의 힘이다.

데뷔 10년 만인 지난해 독립영화 '한공주'로 스타덤에 오른 천우희처럼, 데뷔 10여 년 만에 다양성영화 '마돈나'에서의 눈부신 연기를 쏟아낸 그를 두로 충무로에선 '제2의 천우희'라고 부른다.

지난 2일 개봉한 ‘마돈나’는 정체불명의 사고 환자 미나 그리고 그녀의 충격적인 과거를 추적해가는 간호조무사 해림(서영희)의 씁쓸한 현재와 과거 이야기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삶이 파괴된 채 세상에 버려지고, 잊혀졌던 마돈나를 연기한 권소현과 삼청동 카페에서 마주했다. 영화 속 주눅 든 미나 대신 밝은 에너지의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 뮤지컬·연극으로 보낸 10년...늦깎이 영화 데뷔

‘마돈나’는 그에게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2007년 이후 뮤지컬 ‘뷰티풀 게임’ ‘이블데드’ ‘헤어 스프레이’ ‘투란도트’ ‘그리스’, 연극 ‘이’ ‘쿠킹 위드 엘비스’ ‘노래하는 샤일록’에 출연해 왔다.

“무대에선 주로 좀비, 광대, 여중생, 여고생 등 쾌활하고 자의식이 강한 역을 많이 해서 아픔이 많은, 긴 호흡에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 같은 비주얼의 배우에겐 기회가 잘 오지 않더라고요. ‘마돈나’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그동안 원해왔던 인물이었어요. 표현이 격하고 힘들 거란 부분에 대해선 고민하질 않았어요.”

신수원 감독은 살집이 있으면서 약자의 모습이 절로 우러나는 미나 역 배우를 찾기 위해 온갖 영화를 섭렵했다. 그러던 어느 날, IPTV를 스킵하다가 신기가 떨어진 무당과 ‘요안나’라는 세례명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인 단편 ‘천불사’에서 권소현을 발견했다. 신기를 빨아먹으며 점집에서 사는 여자였다. 단숨에 연락처를 수배해 미팅을 했다.

“연기도 안본 상태에서 같이 하자는 호흡이어서 처음엔 사기꾼인줄 알았어요.(웃음) 시나리오를 받고 1주일간 제주도 스쿠터 여행을 하면서 찬찬히 읽어봤어요. 해야겠단 마음으로 기울었는데 가슴 노출이 있을 것만 같아 다소 망설여지더라고요. 감독님께 물어봤더니 ‘조정해주겠다’고 하셔서 오케이 했죠.”

 

◆ 15kg 체중 늘리고 목소리톤 변조...파괴된 여성 미나 완성

‘마돈나’라는 영화의 주제가 삶에 대한 투쟁이라면, 미나 캐릭터는 투쟁의 연속이다. 바닥을 벅벅 기고, 온몸에 상처투성인 투쟁. 전하는 메시지가 용서와 구원이라면, 미나는 뱃속에 든 생명체를 통해 세상을 용서하고 스스로 구원을 얻는 주인공이다.

할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성장한 미나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뒤 자퇴한다. 보험회사 콜센터 직원, 화장품공장 노동자, 사창가 호객 행위꾼, 노숙자로 나락을 행해 질주한다. 답답할 만큼 감정표현을 안하는 그녀에겐 협박과 회유, 성폭행, 집단 구타가 이어진다. “이유 있는 장면들이라 부담은 없었다”는 담담한 답변이 돌아온다.

“미나는 내면의 상처를 폭식과 화려한 의상으로 해소해요. 그래서 족발이랑 1000cal가 넘는 팥빙수를 먹고, 종일 먹고 자면서 15kg가량 체중을 늘렸어요. 처음엔 미나와 다른 성격이라 표현이 가능할까, 우려했어요. 하지만 질문지를 만들면서 생각을 정리해 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보험회사 과장에게 매달리는 장면을 모니터링하며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생존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사랑받고 싶어하는 약자의 모습이 선연하게 드러났거든요. 그 이후부터는 미나에만 집중했어요.”

영화 내내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신 감독은 권소현에게 목소리 톤에 대해 많이 주문했다. 자의식이 더 약해 보이는 목소리를 찾는 게 관건이었다. 이때 무대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작품에 따라 여러 갈래의 목소리로 대사를 하고, 노래했기 때문이다. 원래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높은 권소현은 호흡이 위로 가는 어린 아이의 발성을 미나 목소리에 응용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임신과 모성애 연기는 오로지 상상에 의존했다. 원래 과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연기에 접근하기보다 “믿으면 가자”는 스타일이다. “임신했다. 아기 있다”란 마음으로 찍어 나갔다.

◆ 상명대 시절 무대 진출...제한된 캐릭터에 답답해하던 무렵 ‘마돈나’ 만나

경북 안동이 고향인 권소현은 초등·중학교 시절 5년간 한국무용을 배웠다. 가정형편상 중도에 접었으나 어린 시절부터 춤추거나 남들 앞에서 뭔가를 하는 걸 좋아했다. 고3 때 연기에 대한 확신이 들자 1년 동안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연기를 배웠다. 방학 때는 아예 고시원에 짐을 푼 채 연기공부에 매진했다.

상명대 연극학과 2학년을 마치고 나서 답답함에 뮤지컬 오디션을 보면서 무대로 발을 내디뎠다. 다양한 연기 욕구에 연극도 했다. 그럼에도 해갈이 되질 않았다.

“뮤지컬이냐 연극이냐, 장르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작품의 문제였던 거죠. 연극을 하면 더 다양한 연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다양한 소재와 캐릭터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10년차가 되니 기술만 늘고 연기는 늘지 않는 것 같아 무섭고 답답해 방황하던 시기에 ‘마돈나’를 만나게 돼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았죠.”

지난 5월 처음 밟아온 프랑스 칸에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서영희, 연극 ‘에쿠우스’에서 너무나 멋있었던 김영민과 같은 숙소에 머물며 한층 가까워졌다. 저녁이면 테라스에 모여 와인 잔을 기울였고, 수상이 불발되고 나선 ‘칸의 왕자님’(김영민의 별명) 주도 하에 새벽녘 바닷가로 뛰쳐나가 놀았다. 영화제가 끝난 뒤엔 1주일간 니스와 모나코 등지를 여행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의 연속이라 현실 감각이 사라지고, 초현실주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 “미의 기준 바꾸는 배우 됐으면...소처럼 일하고 싶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관객의 냉정한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미나를 연기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학창시절, 불쌍한데 관심을 갖거나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던 친구가 있었어요. 미나도, 그 친구도 피해를 준 게 없는데 우리는 흔히 답답해하거나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잖아요. 그들은 그로 인해 점점 더 구석으로 몰리고. 다른 거를 틀리게 보는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이번에 절감했죠. ‘마돈나’를 보는 관객들께서도 ‘다른 것’에 대해서도 관용의 시선을 가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통통한데 스위트한 드류 배리모어, 빅 마우스인데 사랑스러운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한다. 20대 초반엔 “내가 유명해져서 미의 기준을 바꾸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여배우는 날씬해야 기회도 많은데 그러질 않아 꿈이 무산되는가 싶었다. 적시타를 날렸다. 요즘 소망은 “소처럼 일하고 싶다”이다.

[취재후기] 촬영을 마치고 난 뒤 15kg을 감량했다. 체중이 고무줄인 건지, 의지가 투철한 건지...느긋하게 찬찬히, 할 말 다하는 스타일이다. 꽤 오랜 배우생활을 하며 기다림을 터득했다. 연이어 무대에 설 수 없으므로 그 빈 시간을 채워가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얻었다. 스쿠터, 그림, 파스텔화, 자수, 우쿠렐레와 기타연주, 발레, 요가, 각종 댄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온 팔방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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