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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행' 일군 미식축구대표팀, "우린 풋볼에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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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행' 일군 미식축구대표팀, "우린 풋볼에 미쳤어요"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4.12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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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예선 쿠웨이트 꺾고 2015 스웨덴월드컵 진출

[300자 Tip!] 12일 목동종합운동장.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이 2015 스웨덴 미식축구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본선 티켓을 놓고 쿠웨이트와 맞붙었다. 한국은 1쿼터부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쿠웨이트를 몰아붙였다. 한수 위의 실력을 보여주며 여유있게 승리해 스웨덴행을 확정지었다. 미식축구에 미친 이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월드컵 티켓 뒤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아시아 무대를 통과한 그들은 이제 한 단계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 한국 미식축구대표팀과 쿠웨이트 미식축구대표팀이 맞서고 있다.

[목동=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이 12일 서울 목동경기장에서 2015 스웨덴 미식축구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서 쿠웨이트를 69-7로 완파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1 월드컵 챔피언 미국, 개최국 스웨덴, 오세아니아 대표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미식축구월드컵은 1999년 이탈리아 대회를 시작으로 4년 주기로 열린다. 스웨덴월드컵은 2015년 6월 스톡홀롬에서 열린다.

한국은 초반부터 쿠웨이트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국제미식축구연맹(IFAF)이 주관하는 첫 홈경기를 치러 신이 난듯 한국은 스피드를 활용해 측면을 집중 공략했다. 압도적인 페이스로 경기를 끌고가던 한국은 4쿼터 들어 집중력이 떨어지며 실점했지만 벌어놓은 점수가 많아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이 쿠웨이트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디펜스백 박세훈(24)은 “쿠웨이트 선수들의 피지컬이 워낙 좋아 처음엔 긴장했다”며 “6개월간 열심히 다져놓은 조직력이 결과로 잘 나와서 뿌듯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월드컵 티켓을 확정지은 선수들은 얼싸안고 기뻐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관중석에 자리해 목청껏 선수들을 응원했던 가족과 친지들은 모두 그라운드로 내려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기쁨을 나눴다.

◆ 한국에도 미식축구가 있다

미국인들은 미식축구(아메리칸 풋볼)에 목숨을 건다. 미국인들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미식축구를 꼽는다. 각 지역 학교의 미식축구 선수들은 선망의 대상이다.

한국에서도 미식축구를 하는 이들이 있다. 대한미식축구협회가 있고 협회가 주관하는 미식축구리그도 있다. 무관심 속에서 그들이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큰일을 해냈다.

▲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이 경기전 화이팅을 다짐하고 있다.

국제미식축구연맹(IFAF)이 주관하는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대팀 쿠웨이트는 월드컵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오일머니를 앞세워 '미국피'를 수혈했다는 소문이 돌아 종잡을 수가 없는 팀이었다.

백성일(45) 한국 미식축구대표팀 감독은 전력분석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스스로를 최대한 강하게 만들며 쿠웨이트를 62점차로 완파했다. 덩치가 크지만 스피드가 느렸던 쿠웨이트 선수들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중앙보다는 측면을 집중 공략하며 수비진을 허물었다.

▲ 백성일 감독은 쿠웨이트 선수들의 피지컬이 좋은 점을 간파해 측면 공격을 집중적으로 지시했다.

한국 대표팀은 이번에 순수 국내선수로만 팀을 꾸렸다. 지난해 10월 경남 김해에서 트라이아웃을 진행해 140명을 선발한 후 지난달 최종 45명의 엔트리를 확정했다. 재일동포들과 일본인 지도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실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팀워크가 맞아 돌아갔다.

◆ 미식축구에 미친 이들, “연애할 시간도 없다” 

미식축구는 아직 대한체육회 가맹 종목으로 승인받지 못했다. 국가대표라고는 하지만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전폭적인 지원은 먼 나라 이야기다. 선수들은 매달 3~4일씩 열리는 강화훈련에도 자비를 들인다. 이번에도 자비를 들여 아시아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서울로 모였다. 미식축구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이 생활을 할 수 없다.

▲ 대표팀 주장 이동환은 "풋볼이야말로 종합스포츠"라며 미식축구의 장점을 강조했다.

백성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모두 생업이 있다. 그들은 ‘무늬만 국가대표’다. 협회에서 숙식만 제공할 뿐이다. 제대로 일당을 받는 지도자도 선수도 없다, 백 감독은 자영업을 하고 있다. 그래도 직업란에는 ‘풋볼 감독’이라고 적는다.

장비도 선수들이 알아서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있다. 저가에 기본적인 장비들을 구입할 수 있지만 그들은 양질의 제품을 갖기 위해 기꺼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대표팀 주장인 풀백 이동환(32)은 “평일에는 일 마치고 웨이트트레이닝하기 바쁘다. 주말에는 팀 훈련에 매진한다. 아시아 예선전을 앞두고는 6개월 동안 주말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니 연애할 시간도 없다. 여자들이 좋아하겠나”라며 웃었다.

▲ 미식축구대표팀이 목동종합운동장에 울려퍼진 애국가에 맞춰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대표팀 선수 45명은 학생과 직장인이 5대5 비율로 구성돼있다. 학생들은 출석일수를 줄여가며, 직장인은 피곤한 몸에도 휴가를 내가며 월드컵 진출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경기를 이틀 앞둔 10일에도 집합이 되지 않아 하루 전날인 11일에야 모두 모여 손발을 맞췄다.

월드컵에 3회째 도전한 라인백커 정인수(32)와 디펜스백 김수돈(31)은 경기도 광주에 살고 있다. 대표팀 합숙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대표팀 합숙은 신라대학교에서 열린다. 다행히 신라대에서 기숙사와 운동장은 제공해주고 있다.

“우린 고기장사 하는 사람입니다. 체력 소모가 힘든 운동이니까 고기를 싸들고 갑니다.”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다.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한 종목이기에 같은 포지션 선수들과는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 미식축구대표팀이 쿠웨이트전 승리 후 경기장을 찾아준 팬들에게 큰절로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다.

대표팀의 컨디셔닝과 스트렝스를 총괄하고 있는 우승민(34) 코치도 개인 시간을 할애해 대표팀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대구에서 운동처방사로 재직중인 그는 대구FC 축구단, 현대캐피탈 배구단 등 프로 선수들도 관리할 정도의 ‘고급 인력’이다.

우 코치는 “교통비만 받고 움직이고 있다”며 “선수 모두에 신경 써서 각 개인에 맞는 정보를 다 주고 있다. 컨디션 조절법, 체성분 검사, 운동하는 방법 등을 가르친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 미식축구의 매력, “종합스포츠, 이만한 것이 없다” 

▲ 한국대표팀과 쿠웨이트대표팀 선수들이 12일 월드컵 아시아예선전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가가 없는데 왜 이렇게들 미식축구에 미쳐있는지 부쩍 궁금해졌다. 대체 미식축구의 매력은 뭘까. 미식축구 자랑 좀 해달라고 질문을 던지기가 무섭게 다들 열변을 토해냈다.

“기획한대로 11명이 착착 움직여주면 미치죠. 미칩니다.”

백 감독은 “미국 사람들은 풋볼을 비즈니스와 비교한다. 예를 들어 존 디펜스 전술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며 본인의 의도대로 선수들이 움직였을 때의 희열을 큰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동환은 “핸드볼이나 농구처럼 스텝을 밟는다. 멀리 던져야 하는 야구 요소도 있다. 발로 공 차는 축구, 씨름이나 스모같은 격투기 요소까지 있다”며 종합 스포츠임을 강조했다.

▲ 미식축구는 공을 차는 축구요소뿐 아니라 야구, 레슬링, 농구 요소까지 두루 갖췄다.

정인수는 “남자 스포츠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게 좋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로 감동을 준다면 나는 풋볼로, 움직임으로 감동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국가대표가 꿈이라는 김성민(18)군은 12일 경기 스태프를 자청했다. 경기를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국가대표 형들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서다. 그 역시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 전투에 나가는 느낌이다. 다른 어떤 종목도 풋볼의 짜릿함을 따라올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한국 미식축구 발전엔 그가 있었다, 카스지 이바라키 감독

감독도, 선수도 하나같이 ‘한국 미식축구는 2007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한국은 2003년 2회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에 0-88으로 패했던 팀이었다. 지금은 일본과 30여점 차의 격차가 난다.

백 감독은 “이바라키 감독이 부임한 2007년 이후 ‘코리안 풋불’에서 ‘아메리칸 풋볼’로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바라키에 대해 “테크닉보다도 지도 철학, 선수 관리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배웠다“며 ”그가 없었다면 한국 풋볼이 이렇게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바라키 감독 부임 후 달라진 점에 대해 정인수와 김수돈도 “테크닉보다도 의식이 바뀌었다”는 점에 크게 공감했다.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자존감 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 이바라키 감독(사진)이 없었다면 한국의 미식축구는 계속해서 제자리 걸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표팀의 궂은일을 담당하는 총괄 매니저 임영화(28)씨는 “이바라키 감독님이 시스템을 심었다. 매니지먼트에는 기록 촬영, 부상선수 관리, 그라운드 관리 등 해야할 일이 정말 많다. 감독님 부임 후 체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중요한 일전인 쿠웨이트전을 위해 백 감독은 이번에도 이바라키를 자문 역으로 모셨다. 현재 도시샤대학 미식축구부 감독인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한국으로 넘어와 훈련기간 날카로운 조언으로 백 감독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했다.

◆ 우리나라 미식축구의 미래 

“돌아가신 최현두 회장께서 씨를 뿌렸다. 나도 아직 뿌리는 중이다. 이제는 거둘 때가 아닌가 싶다.”

백 감독은 2013년 작고한 우리나라 미식축구 1세대 고 최현두 전 대한미식축구협회 회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꼭 일본을 넘어서는 걸 보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는 “아무런 대가가 없었기 때문에 그동안 좋은 선수와 동료들을 많이 떠나보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좋은 자원들을 수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아쉬움을 곱씹었다.

▲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이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을 통과한 뒤 환호하고 있다.

백 감독은 “유럽도 독일만 한수 위일뿐 호주, 프랑스, 스웨덴은 우리가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월드컵에 나설 팀들은 쿠웨이트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며 “풋볼을 접할 다음 세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 위해서 남은 1년간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국 미식축구는 실력뿐 아니라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서서히 희망을 보이고 있다. 유인선 회장과 원로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숙식을 제공했다. 과거에는 합숙비도 선수들의 몫이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제대회도 치르며 대회 운영경험도 쌓았다. 사무국의 큰 수확이다.

▲ 한국대표팀의 이민우(20번)가 터치다운을 위해 질주하고 있다.

이바라키씨는 “환경이 문제다. 경기장, 선수 수급 등 시스템이 갖춰지면 충분히 승부가 된다”면서 “한국선수들 중엔 대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있다”고 한국 미식축구의 장밋빛 미래를 예상했다.

■ 한국의 미식축구리그는 

현재 국내에는 순수 아마추어인 36개 대학팀과 7개 사회인팀이 활동중이고 45명 엔트리인 국가대표와 달리 각 팀마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36명까지 있다. 고등학교팀으로는 서울 삼성고, 부산 동아고, 인천 송도고가 있다.

36개 대학 미식축구팀이 맞붙는 미식축구선수권대회의 결승전이 '타이거볼'이다. 7개 팀이 자웅을 겨루는 사회인리그의 결승전이 '광개토볼'이다. 타이거볼과 광개토볼 우승팀이 맞대결하는 왕중왕전이 바로 '김치볼'이다.

■ 한국 미식축구대표팀은 

▲ 대표팀 선수단 전원이 쿠웨이트전 승리 후 단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감독= 백성일
△ 코치= 박경배 장원석 홍동혁 김용희 이광우 음용수 김연태 김성훈 강승민 우승민 황규태 윤기범 김우성 이광복
△ 닥터= 정석현 허지성
△ 매니저= 이민주 임영화 유수경 최윤정 박민지 백수연 김정원 박찬희 이혜린 이민주 장현정 송정은
△ 선수(45명 배번) =조현수(1) 이찬우(2) 김수돈(3) 정용욱(4) 김성훈(5) 김민성(7) 남기호(9) 정인수(10) 유강환(11) 김태훈(12) 임승순(13) 윤병우(17) 이민우(20) 박보성(21) 전홍덕(25) 서형욱(28) 시석현(29) 황준근(36) 이준필(40) 송지원(43) 이동환(44) 여봉도(50) 최현진(51) 신홍섭(55) 류승혁(59) 정현우(62) 구정모(63) 공웅록(64) 이상현(66) 윤승호(68) 조지웅(74) 명종신(76) 구우승(77) 장봉영(80) 안준호(81) 조성민(82) 천병희(84) 허성환(85) 김재환(87) 김상홍(89) 김홍록(90) 남정수(91) 박세훈(92) 이승훈(97) 김효진(99)

[취재후기] 사흘에 걸쳐 감독과 선수들을 만났다. 목동 아시아예선 현장도 찾아 쿠웨이트를 잡고 월드컵 진출 티켓을 따내는 짜릿한 순간도 함께 했다. 감독부터 선수들, 매니저들이 모두가 하나되어 진지하게 스포츠를 대했다. 미식축구가 매력적인건 두말할 나위 없는 소리. 그보다도 미식축구인들의 열정적인 자세에 느낀 것이 많았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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