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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로 스타터' 뮤지컬배우 김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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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슬로 스타터' 뮤지컬배우 김승대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14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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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프랑스 뮤지컬 ‘태양앙’(6월1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의 한국어 초연에서 태양왕 루이 14세의 자유분방한 동생 필립 역을 맡은 김승대(34). 동안 이미지를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격파하고 캐릭터를 맹렬히 확장 중이다. 잘 생긴 외모와 감정선을 자극하는 연기를 앞세워 국내 여심을 훔친 것도 모자라 요즘은 K-뮤지컬 전령사로 해외팬들까지 공략하고 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프로 격투기 선수에서 배우로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장남인데 체구가 작았다. 씨름선수 출신인 아버지가 이를 우려해 격투기연맹에 있는 친구에게 아예 맡기다시피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합기도와 격투기를 배웠다. 12년을 갈고 닦았다. 당연히 격투기 선수가 될 것이라 생각해 체대를 지망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까지 2년 동안 프로 격투기 무대에서 활동하며 촉망받는 ‘선수’로 명성을 떨쳤으나 배우의 꿈을 위해 접었다.

강타와 이지훈

가수 강타와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이지훈은 그보다 한 살 위인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배다. 공교롭게 김승대의 외모는 강타와 이지훈을 섞어놓은 듯하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난 강타는 그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나 닮았단 소리 많이 들었겠네”라고 말했다. 이지훈과는 캠퍼스에서 선후배로 처음 만나 2008년 뮤지컬 ‘햄릿’에서 번갈아가며 주인공 햄릿을 맡는 등 ‘업계’에 나와서까지 질긴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앙상블에서 주인공으로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다. 친구가 혼자 오디션을 보러가기 싫다며 2006년 ‘지킬 앤 하이드’ 오디션을 앞두고 참가 신청서를 내버렸다. 그때까지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고 있던 김승대는 ‘지킬 앤 하이드’의 앙상블로 데뷔해 뮤지컬의 매력을 느끼게 됐다. “앙상블은 극의 배경 요소라 빛나는 역할은 아니죠. 대학 졸업 후 밑바닥부터 출발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냉혹한 사회구나’ ‘누구에게는 잘 보여야 하는구나’ 등을 터득한 시간이었어요. 그때 이후로 많이 현실적이 됐죠. 제가 할 수 있는 역과 하고 싶은 배역을 구분할 줄도 알게 됐고요.” 그리고 기회가 왔다. ‘햄릿’의 주인공 햄릿이 그에게 달려왔다.

 

‘햄릿’의 충격 그리고 교훈

처음에는 조연 레어티스 역이었다. 햄릿은 톱스타 박건형 임태경 이지훈이 맡고 있었다. 그를 눈여겨본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가 “적자를 보겠지만 배우로서 성장하는 바탕이 될 것”이라며 첫 주연의 기회를 줬다. 첫 공연 때 부푼 꿈을 안고 무대에 섰는데 객석이 반만 차 있는 광경을 보고는 ‘멘붕’에 빠졌다. “충격적인 아픈 기억이자 저를 현실적으로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됐어요. 뮤지컬이 상업적인 예술이라는 점과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극장을 채워야하는 지를 뼈저리게 느겼죠.”

주인공 퍼레이드

‘인당수 사랑가’의 이몽룡,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내 마음의 풍금’의 강동수, ‘몬테 크리스토’의 알버트(2010년)와 몬테 크리스토(2012년), ‘엘리자벳’의 루돌프,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의 발렌틴, ‘요셉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요셉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을 도맡았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깊은 감정선의 표현, 감성을 자극하는 애절한 노래와 섬세한 연기 디테일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여기에 여성관객을 사로잡는 훈훈한 얼굴이 뒷받침됐다.

‘영웅’ 안중근, 김승대의 재발견

지난해 ‘영웅’에서의 안중근 역할이 품에 안겼다. 워낙 동안 이미지라 배역의 한계를 절감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안중근을 선 굵은 연기로 소화하면서 멋지게 탈출했다. “이미지가 굳어지던 순간이었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참이라 안중근 역에 도전했죠. 독립지사라는 실존 인물 캐릭터라 난감했고, 노래도 즐겨 부르는 장르가 아니었죠. 하지만 첫 공연 커튼콜 때 박수를 받는데 ‘이런 박수도 있구나’를 절감했어요. 가슴으로 쳐주는 뜨거운 박수 있죠? 제가 배우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토록 위대한 분의 삶을 살 수 있겠어요. 배우여야 하는 이유를 확인하게끔 해준 작품이죠.”

 

남성성과 여성성의 공존, 필립

‘태양왕’의 자유분방한 필립은 프랑스 오리지널 공연에서 주인공 루이 14세보다 대중적으로 더 사랑받은 캐릭터다. 다채로운 춤과 가창력, 유머를 요구하는 역할이다. “극이 무거워질 때마다 등장해서 분위기를 전환해주는 인물이죠. 여장(치마와 7cm 힐)을 즐기는 여성스러운 면과 전쟁광인 남성적인 면이 공존하는 묘한 캐릭터예요. 프랑스 뮤지컬은 팝 적인 넘버들이 워낙 많은 데다 필립의 경우 비트 있고 리듬을 잘게 쪼개는 노래가 많아 목소리를 긁어서 내보기도 하는 등 실험을 많이 하는 작품이죠.” 그동안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는 캐릭터를 줄곧 소화해온 김승대가 무대에서 ‘끼’를 어떻게 발산할 지 관심거리다. 그에게는 ‘영웅’에 이은 새로운 도전이다.

김도현 and 이병헌

음악 전공자인 뮤지컬 배우들이 워낙 많이 늘어 연기 전공자인 그는 가창의 한계를 절감했다. 같은 처지인 연극·뮤지컬 배우 김도현과 의기투합, 자구책이자 일종의 자신감으로 ‘노래보다 연기적 정서로 무대를 뒤집어보자’고 가슴에 새겼다. “저에게는 선배이자 멘토였는데 어느 날 ‘뮤지컬의 시작은 연기지만 마침표는 음악으로 찍더라’며 변절(?)의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연극은 목소리와 연기의 힘이 지배하지만, 뮤지컬은 노래의 힘이 존재해요. 이제는 알게 됐죠. 뮤지컬 배우는 마음은 뜨겁되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는 걸.” 롤모델을 꼽아달라고 하자 ‘이병헌’을 거론했다. 그의 눈을 보면 수많은 대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눈빛 좋은 배우가 김승대의 소망이기도 하다.

슬로 스타터 but K-뮤지컬스타

스스로를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라고 표현한다. 대학시절 숱한 기회가 찾아왔어도 ‘기본기를 확실히 닦아서 뿌리 깊은 배우가 될 거야’라며 죄다 물렸다. 프로에 입문해서는 긴장으로 인해 오디션에 약한 배우로 꼽히지만 주역을 척척 따내고 무대에서 빛을 낸다. “고집쟁이에다 고지식해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격투기 선수 출신답게 근성이랑 뒷심이 좋아요. 하하.” 요즘 김승대에게는 ‘K-뮤지컬스타’란 별칭이 따라다닌다. 후배 전동석과 함께 지난해 8월 듀엣앨범 ‘투 오브 어스’를 한일 동시발매한 뒤 현지 쇼케이스, 합동 콘서트를 연이어 진행했고 지난달 뮤지컬배우 최초로 도쿄 팬미팅을 성황리에 마쳤다. 뮤지컬계에서 자기만의 영토를 확고히 구축해오고 있는 배우 김승대가 ‘연출’할 앞으로의 광폭 행보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취재후기] 필립 역에 더블 캐스팅된 정원영의 공연을 보기위해 블루스퀘어를 찾았다고 했다. 공연 전 만난 그는 “관객과 잘 놀 줄 아는 끼 많은 배우라 나보다 필립에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가식적인 겸손이 아니라 ‘너는 너, 나는 나’ 식의 쿨한 제스처였다. 해맑은 표정이지만, 무명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세상이치를 꿰뚫고 있는 ‘어른아이’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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