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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과 소통하는 '소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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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상과 소통하는 '소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4.17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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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이유라, 김수연, 신현수, 클라라 주미 강과 함께 ‘제2의 사라장’으로 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26)는 상상력이 빼어난 연주자다. 유년기부터 몸에 밴 독서 덕분에 사색의 깊이가 만만찮다. 고국에서 여는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 ‘보이스’의 주제로 ‘전쟁’을 택한 것도 작가적 상상력의 발로다. 예원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주로 해외에서 활약해온 그는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고, 이를 저돌적으로 현실화시키는 에너자이저다. 밀란 쿤데라·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소설에 빠져들었고, 마이클 잭슨·서태지와 같은 천재적인 대중음악 뮤지션에 매료됐다.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진행해온 재능봉사 활동은 그의 예술세계를 살찌우는 자양분이자 큰 행복이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전국 투어를 막 시작한 16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조진주를 만났다. ‘계절의 여왕’ 봄이 질투할 만큼 생명력이 흘러넘치는 인물임이 단박에 느껴졌다.

◆ 해외 유명 콩쿠르 2차례 우승...거침없는 연주 화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의 이름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2006년 몬트리올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였다. 4년 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콩쿠르에 참가, 결선에서 라벨의 ‘치간’과 바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해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동영상이 화제가 됐다. 암표범이 포효하는 듯한 날카롭고 격정적 연주로 전매특허가 됐던 거장 정경화의 20대 시절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실제 무대에서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흐르는 동안 손을 불끈 움켜쥔 채 선율을 타는 등 청중을 휘어잡는 퍼포먼스와 독창적인 연주를 자랑한다. 감성은 흘러 넘친다.

▲ 조진주의 열정적인 연주 장면[사진=봄아트프로젝트]

국내 전국투어는 15일 대전 문화예술의전당, 17일 광주 금호아트홀, 18일 여수 예울마루 소극장을 거쳐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로 이어진다. 풀랑크와 야나체크,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연주한다. 서울 공연에서는 본 공연 뒤 ‘살롱 토크 콘서트’를 마련해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와 풀랑크의 ‘평화를 위한 기도’, 에디트 피아프를 위해 작곡한 ‘오마주’, 조지 거쉬인의 ‘포기 앤 베스’를 들려준다.

“풀랑크는 양성애자이자 작곡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았음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프랑스 작곡가예요. 에디트 피아프와 동시대를 살며 친분을 나눴고요. 풀랑크의 장단조가 섞여 있는 애매모호한 선율, 멜랑콜리한 분위기, 퇴폐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점이 좋아요. 형식면에서 정신없는 느낌을 줄지 모르지만 오히려 전 감성적이라 매력적이고요. 이번에 연주하는 곡은 풀랑크의 작품 중 유일하게 폭력적인 분노를 드러내고 있어요. 에디트 피아프는 알코올과 진통제 중독으로 47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노래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죠. 저도 기분이 울적하면 피아프의 노래를 mp3에 잔뜩 담아서 공원으로 산책을 가요. 그토록 슬픈 노래들인데도 들으면 위안이 돼요.”

▲ 전국 리사이틀 투어 '보이스' 포스터

◆ ‘빛과 어둠의 공존’ ‘광기’ ‘전쟁’ 메시지 강렬... 상상력 자극 및 몰입 유도

공교롭게 2009년 리사이틀 ‘빛과 어둠의 공존’, 이듬해 리사이틀 ‘광기’에 이어 이번에는 ‘전쟁’이다. 매번 연주회에서 메시지를 던지며 관객과 소통하는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그가 무겁고 어두운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얼까.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듯이 예술가들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주옥과 같은 명곡을 탄생시키잖아요. 특히 제가 단조의 곡들을 좋아해서 끌리나봐요. 그렇다고 엄청 어두운 애는 아니예요.(웃음) 예술이나 삶이나 어둠 속에서 빛이 있는 것처럼 그런 면을 부각한 곡들에 끌리다보니 이런 식으로 프로그램을 짜게 되나봐요. 프로그램이 상상력을 자극하면 청중 입장에서도 몰입을 잘 하는 효과도 있고요.”

이번 공연에서는 진흙에서 꽃이 피어나듯 참혹했던 전쟁을 바탕으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시킨 작곡가들의 곡을 꺼내 들었다. 풀랑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협연 김현수)를 비롯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을 묘사해 ‘전쟁 소나타’라고 불리는 야나첵 바이올린 소나타,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와 ‘장밋빛 인생’, 역시 ‘전쟁 소나타’라는 부제가 달린 프로코피에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 자선공연, 재능기부 프로그램 열성적 참여

딸을 과학자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이 바이올린을 배웠던 사실을 알아내고 5세 아이에게 바이올린 활을 쥐어줬다. 화려한 소리를 지니고 있으나 단선율이고, 악보를 읽지 못하는 탓에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을 좋아했다. 미국 유학을 가고 나서야 바이올린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학교에 배치된 봉사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부터 자선공연, 재능 기부에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도 소록도와 꽃동네, 양로원, 특수학교를 자주 방문하며 클래식 음악을 선물했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앙드레 나바라, 에이미 비치의 곡이나 가요 ‘개똥벌레’ ‘아침이슬’을 연주할 때 흥에 겨워하는 소박한 청중을 보며 행복을 진하게 느꼈다.

“환우나 주민들은 감정의 필터링이 없으세요. 따분한 곡을 연주하면 주무시거나 ‘재미없어’라며 곧장 소리 지르세요. 마음에 들면 춤을 추시고요. 반응을 보며 대중과 호흡하는 레퍼토리를 시험해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죠. 연주자로서 얻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잖아요. 이런 만남을 통해 제가 바이올린 연주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우리가 할 역할을 곰곰이 되새겨보게 돼요.”

조진주는 봉사활동 무대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연주회에서도 틈틈이 팝송, 샹송, 가요 등 대중음악을 직접 편곡해 들려주곤 한다. 이러한 시도에 보수적인 클래식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날선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태도죠. 음악가가 역사상 대접받은 적이 있나요? 그런데도 아티스트 대접을 받으려는 음악인들의 자세가 문제가 아닐까요. 전 외국에서 연주할 때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지내요. 청중과 무대가 있으면 고마워할 일이죠. 일부 음악가들은 ‘너 클래식 안 좋아해? 그럼 무식한 거야’라며 대중 위에 군림하려 드는데 저희는 클래식이 좋은 음악이라고 설득해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클래식이 어려운 건 사실이니까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죠. 그래서 여러 시도를 해야 하고요. 대중문화를 통해서든, 다른 장르와의 접목이든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해요. 전 제 연주에 또래집단인 20~30대가 많이 와줬으면 하거든요. ‘내가 추구하는 문화를 다른 문화와 더불어 좋아해주면 안되겠니?’가 제 솔직한 마음이에요.”

 

◆ ‘클래식= 고급문화’ 편견에서 벗어나야...대중과 호흡하는 자세 필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클래식과 천재 아티스트를 그리곤 한다. 어렵고 딱딱하다는 클래식이 과거에 비해 꽤 많이 대중 속으로 파고든 모양새다. 조진주로부터 클래식의 매력을 듣고 싶어졌다. 최소한 클리셰(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다.

“가사가 없는 곡이 어려울 수 있지만 장점이기도 해요. 상상하면서 듣게 되잖아요. 똑같은 음악을 들어도 각자의 해석이 완전히 다를 수 있거든요. 그럼으로써 온전히 자기 게 되는 거죠. 3분짜리 가요에 비해 너무 길다고요? 맞아요. 협주곡과 교향곡은 20분에서 길게는 50분 가까이 진행되니까. 하지만 감동은 기다림과 비례한다고 봐요. 연인관계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수록 애틋한 감정이 솟구치잖아요. 긴 클래식 음악이 쭈욱 이어져오다가 막바지에 빵 터지면 감동의 크기가 달라요. 척추를 잡는 전율이랄까. 물론 공부가 필요하고 참을성을 요구하지만 몸안에서의 떨림을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나이가 들수록 바이올린이 좋아진다는 조진주는 죽을 때까지 연주하는 게 목표다. 가수 이소라의 “죽기 전 90세쯤 가장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실력이 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자신의 연주에 세월이 제공한 울림이 점점 커짐을 느끼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취재후기]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다가 서태지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두 스타 모두 인간관계에 휘둘려 살지 않았다. 인생의 중심이 음악이었다. 음악을 종교처럼 여겼다. 그런 점이 좋다고 했다. 마이클 잭슨으로부터는 “예술은 도피처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잠언과 더불어 공연 아이디어, 아티스트의 봉사활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이어 서태지를 언급하는 순간, 눈에 별이 그려졌다. 여배우와의 결혼시절 발표한 5집의 따뜻함, 여행하던 순간의 자유가 상쾌하게 묻어나던 8집을 좋아했던 조진주는 결혼 후 발표할 서태지의 넉넉해진 신보가 몹시나 궁금하다고 했다. 차~암, 특별한 캐릭터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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