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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대한민국' 세월호 품고 희망 던진 류현진, '애도의 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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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세요, 대한민국' 세월호 품고 희망 던진 류현진, '애도의 역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18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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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라커에 '세월호 참사' 추모 문구…팔색조 투구 패턴으로 2주만에 SF에 설욕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힘내세요, 대한민국'

류현진(27·LA 다저스)이 단순히 소속팀의 에이스에서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대한민국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해 슬픔에 잠긴 고국의 국민을 위로하는 최고의 역투를 펼쳤다.

류현진은 18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AT&T파크에서 열린 미국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원정경기에서 112개의 공을 던지며 7이닝동안 안타 4개와 볼넷 하나만을 허용하고 삼진 3개를 곁들이며 무실점 호투했다.

마무리 투수 켄리 젠슨이 9회말에 1점을 주긴 했지만 LA 다저스가 2-1로 이기면서 류현진은 시즌 3승째(1패)를 올렸다.

류현진에게 있어서 이날 경기는 샌프란시스코에게 참혹하게 당했던 2주 전 최악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였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류현진에게 샌프란시스코전은 설욕전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이는 동기 부여가 돼 더욱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모든 혼과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던지는 류현진을 당해낼 수 있는 타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를 위해 '혼'을 던졌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경기 선발 등판을 앞두고 류현진은 진도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해 적지 않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먼 이국 땅에 있는 류현진은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TV 중계를 지켜볼 국민들에게 최고의 호투를 선보여 마음에 위로를 주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힐링이었다.

▲ 류현진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위로의 문구를 적었다. 소속팀인 LA 다저스도 류현진의 문구를 리트윗한 뒤 영어로 번역해 트위터에 게재했다. [사진=류현진 트위터, LA 다저스 트위터 캡처]

우선 류현진은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 친구들을 위한 위로의 문구부터 적었다. "모두들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네요. 모두들 힘내세요. Remembering the SEWOL disaster(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며)"라는 문구로 국민들에게 위로를 전한 류현진은 자신의 라커에도 'SEWOL 4.16.14'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그들을 가슴에 품었다.

경기 전부터 희생자와 유가족, 친구들을 애도한 류현진의 얼굴에 웃음기는 싹 사라지고 비장함만 묻어났다. 경기할 때는 원래 웃지 않는 '포커 페이스'이기도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전에 임하는 류현진은 더욱 비장해보였다.

류현진의 투구 하나하나에는 혼이 담겨져 있었다. 공을 던질 때마다 입을 악물고 던졌다. 그 결과는 7이닝 무실점이라는 완벽투로 이어졌다.

류현진은 자신의 경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다. 1997년 박찬호(40)가 IMF 사태라는 국가 부도 사태에서 미국에서 희망의 투구를 했듯 류현진 역시 17년만에 대선배 박찬호의 '힐링의 역투'를 그대로 재현했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스포츠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류현진의 역투는 결과적으로 소속팀에도 희망을 던져줬다. 지구 라이벌이자 오랜 앙숙인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원정 경기에서 이틀 연속 1점차 패배를 당하며 스윕을 당할 위기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류현진의 7이닝 무실점 역투로 LA 다저스는 타자들이 단 2점을 뽑아주고도 이길 수 있었다. 2점만 뽑고도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에이스가 등판했을 때다. 류현진이 LA 다저스의 에이스이자 온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에이스임을 보여준 경기였다.

▲ 류현진은 18일(한국시간) AT&T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원정경기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을 위로하는 문구를 라커에 붙였다.[사진=LA 다저스 공식 트위터 캡처]

또 이날 경기는 자신에게도 '힐링'이 됐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상대로 10개의 안타를 맞고도 3실점(1자책점)으로 호투했던 류현진은 7월 6일 샌프란시스코 원정에서 6.2이닝 2실점으로 첫 승을 따냈다. 9월 25일 경기에서도 다시 한번 원정 승리를 따내며 콧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류현진은 홈 개막전에서 샌프란시스코에 난타당하면서 8실점(6자책점)한 후 2이닝만에 강판당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최소 이닝 투구였다.

류현진은 2주만에 다시 샌프란시스코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선발 맞상대는 지난해 데뷔전에서 만났던 매디슨 범가너였고 최고의 역투로 완벽하게 설욕했다.

류현진도 이날 샌프란시스코전 승리로 절망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놓치 않는다면 언젠가는 파랑새를 잡을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 원정 4경기서 26이닝서 피안타 11개 '평균자책점 0'

샌프란시스코전 호투로 류현진은 올시즌 원정경기에서 '극강'의 모습을 이어갔다.

류현진은 지난해 원정에서 7승4패, 3.6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원정에서 3점대 후반의 평균자책점이 아주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홈경기에서 2.3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1점 이상의 점수를 더 줬다는 뜻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올시즌 네차례 원정경기에서 단 1실점도 하지 않았다. 올시즌 3승이 모두 원정에서 거둔 것이다.

지난달 2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호주 개막전에서 5이닝 무실점 호투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31일 샌디에이고전 7이닝 무실점, 지난 12일 애리조나전 7이닝 무실점 등으로 19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왔다.

결국 샌프란시스코전에서 7이닝을 더해 원정 무실점 기록을 26이닝으로 늘렸다. 지난해 9월 25일 샌프란시스코 원정까지 합한다면 원정 28이닝 연속 무실점이다.

류현진이 올시즌 원정에서 무실점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였다는데 있다. 26이닝을 던지면서 피안타가 11개밖에 되지 않는다. 볼넷도 6개뿐이다. 26이닝동안 17명밖에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으니 실점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타자 혼란스럽게 하는 투구 패턴 업그레이드

류현진은 2, 3이닝마다 투구 패턴을 바꾸며 상대 타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1회말과 2회말에는 빠른 공과 브레이킹볼을 섞어 던졌다. 초반 2이닝에서 투심과 포심 등 빠른 공은 30개 가운데 12개 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다. 이에 비해 체인지업을 9개나 던졌고 슬라이더와 커브는 5개와 4개였다.

3회말부터는 빠른 공의 비율을 높였다. 3회말부터 5회말까지 던진 50개의 공 가운데 투심이 28개나 됐다. 포심까지 합치면 빠른 공이 무려 31개다. 몸이 풀리기 시작한 3회부터 3이닝동안 빠른 공으로 상대 타자들을 윽박질렀다는 뜻이다.

특히 5회말 첫 타자 그레고 블랑코를 상대로는 5개의 공을 모두 투심 패스트볼로 상대했을 정도로 밀어붙였다. 6회말과 7회말에서는 다시 빠른 공의 비율을 줄였다. 대신 커브가 약간 늘었다.

이날 류현진은 5회말까지 커브를 5개만 던졌을 정도로 최대한 아꼈다. 브레이킹볼의 대부분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였고 이 가운데 체인지업이 슬라이더보다 두 배 이상 던졌다.

하지만 6회말과 7회말에는 커브를 간간이 섞어 던져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여기에 빠른 공으로도 함께 승부했다. 마지막 두 타자를 상대로는 빠른 공 위주로 상대해 마지막 혼신의 힘을 짜냈다.

이처럼 투구 패턴이 타자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로 짜여진다면 안타를 내줄 틈이 없게 된다.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투구가 업그레이드된 것은 류현진의 야구 지능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류현진 자신도 악몽을 딛고 심기일전해 희망을 확인한 '힐링 3승'이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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