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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최고령 여배우 김영옥, '할미넴'과 '어머니' 사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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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극장 최고령 여배우 김영옥, '할미넴'과 '어머니' 사이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7.1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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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이동윤(플러어1스튜디오)] 때로는 주연으로, 때로는 주연보다 더 빛나는 조연으로 작품을 밝혀온 연기자 김영옥. 올해 나이 만 78세. 고 여운계를 비롯해 전원주 강부자 김용림 김혜자 사미자 반효정 정혜선보다 서너 살 위다. 안방극장 최고령 여자 연기자임에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쉼표 없이 활동한다. 미국의 힙합가수 에미넴을 연상시키는 속사포 화법과 속 후련한 욕설로 ‘할미넴’ 애칭까지 달고 다닌다.

SBS 일일극 ‘돌아온 황금복’에서 왕여사로 열연 중인 김영옥이 명품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8월15~27일·장충체육관 특별무대)로 오랜만에 무대 나들이를 한다. 연습에 한창인 15일 오후,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영원한 현역’을 만났다. 얼굴 가득한 잔주름이 수 만 가지 표정을 지어온 그의 인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정갈한 은발에 고운 옥색 원피스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탤런트 김영옥. 안방극장을 종횡무진 누벼온 김영옥이 오는 8월15일 개막하는 명품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온 어머니상을 열연할 예정이다

◆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에서 아들 위해 희생하는 한국의 모성 그려내

한국전쟁부터 오늘날까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와 오직 성공만 바라보며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불효자는 웁니다’는 1998년 초연 당시 세종문화회관 3800석 전회 전석 매진의 흥행을 기록했다. 17년 만에 업그레이드돼 돌아온 공연에는 어머니 역 김영옥을 비롯해 이덕화 박준규 오정해 이홍렬이 출연한다.

“불효자를 만드는 엄마니까 얼마나 비중이 크고 힘들겠어. 가족 친지 등 주변에선 ‘무리 아니냐’고 만류했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 서는 건 내 생애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서 용기를 냈지. 개인적으론 노래를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데 열창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고. 대강 넘어가기엔 작품이 아까워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본을 들여다볼 정도로 매일 긴장한다우. 내실을 다져셔 좋은 무대를 선사해야지.”

‘불효자는 웁니다’는 흥겨운 음악과, 화려한 볼거리에 한국적인 스토리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대표 악극이다. 어린 시절 신파극을 보고 자라났던 김영옥 역시 작품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크다.

“극 안에 신파조 노래가 녹여지므로 응집된 연기만 보여주면 절로 빠져들더라고. 이번에 내가 그러고 싶어요. ‘오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해 나이 든 세대는 반주하는 기회를 갖고, 젊은 세대는 새로운 뭔가를 느낄 거라고 봐요. 또 와서 보면 댄스, 합창, 노래와 드라마가 어우러지니 흥이 나거든. 우리의 희로애락이 깃든 걸 가지고 하니까 감성에서 만큼은 해외 유명 뮤지컬도 못 따라가지.”

 

특히 2000년 악극 ‘아버님 전상서’에서 청년시절부터 아껴온 후배 이덕화와 모자로 출연하면서 무대 연기의 희열을 맛봤는데 이번에 다시 모자로 호흡을 맞춰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 아나운서·성우 거쳐 탤런트 입문...극단 신화 단원으로 28년간 활동

지금도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장 여배우들은 라디오 성우로 출발해 1960년대 TV가 보급되면서 탤런트로 전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영옥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서울 계성여중·고 시절부터 연극활동을 했던 그는 졸업 후 1960년 춘천방송국 아나운서로 시작, 기독교방송 성우(5기)로 활약했다. 그때 입사 동기가 전원주다. 다시 MBC가 개국하자 일터를 옮겼다. 이때 동기는 나문희 최선자 백수련 등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국내 연극계 거목 차범석이 이끌던 극단 산하의 전신부터 단원으로 활동해 문을 닫은 83년까지 무려 28년간 1년에 1~2편씩 창작·번역극에 출연하며 연기 내공을 쌓았다.

“‘천사의 고향을 보라’ ‘오판’ 등 숱한 작품에서 조연을 주로 했어.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감정표현, 발성의 기초를 익혔던 거지. 요즘도 사람들이 ‘노인네인데도 소리가 짱짱하다’는 말을 하는 걸 들으면 배에서부터 내는 발성 훈련이 연극배우 시절부터 몸에 배었기 때문이겠지. 드라마 연기는 기계를 통해서 시청자에게 전달되지만, 무대에서 직접 이뤄지는 교감의 기쁨은 배우 아니면 모를 거야. 한동안 벌어먹고 사느라 무대연기를 하질 않아서 겁이 나더라고. 그래서 출연제의를 거절하곤 했는데 나이가 드니 옆구리가 허전하더라고.”

재작년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서 재소자들을 위한 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노희경 원작)을 진행했을 당시 극단 신화 후배였던 김용림과 더블 캐스팅돼 거의 전회를 공연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 ‘마징가제트’ 철이 목소리 주인공...숱한 노역으로 진한 감동 전달

전설적인 TV 애니매이션 ‘마징가제트’의 주인공 철이 목소리를 연기한 것부터 시작해 숱한 드라마에서 노인 역을 단골로 맡았다.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 ‘올드미스 다이어리’에서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을 까먹을 이 시러베 자슥~”이라는 욕설을 차지게 구사하던 쌍문동 쓰레빠, ‘꽃보다 남자’의 집사장, ‘내가 사는 이유’의 미친 여동생을 보필하는 욕쟁이 할머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등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국민 할머니’로 불렸다.

“젊은 나이에 할머니 역부터 맡기 시작했지.(웃음) ‘내가 사는 이유’ 땐 정말 인물에 빠져서 신나게 연기했네. 요즘은 부자 할머니 역할을 많이 맡아서 괴로워. 코디가 빌려오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캐릭터 상 싼 의상·액세서리를 사서 착용할 수도 없으니 지출이 엄청나게 되더라고. 그래도 덕분에 비싼 옷 입어보고, 가방 들어보면서 엔조이하는 거지...하하.”

김영옥이 후배 연기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기본이다. 연극이든 드라마든 호흡과 대사전달이 기본이다. 입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등 기본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리얼리티를 주장하면 어불성설이다.

“적극적으로 덤비는 사람은 나중에 꼭 되더라. ‘끼’가 없으면서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또 아니다. 최대치를 끌어내려면 미쳐야 한다. 안이하게 연기하는 애들을 보면 용서가 안 돼. 우려스럽기도 하고. 후배들 가운데 찍어내듯 연기하면서 ‘안 팔린다(캐스팅이 안 된다는 의미)’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본인 책임도 크거든.”

 

후배들에겐 ‘이럴 땐 이렇게 해보렴’ ‘이렇게 해보면 더 대단해질 거야’라고 조언 혹은 격려를 해준다. 일부 어르신 연기자들처럼 호통을 치거나, 붙들고 늘어지진 않는다. 재능이 있으면 그의 식대로 발전시켜줘야 한다는 지론과 더불어 “그럴 정도로 힘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미쳐서 살아왔던 50년 세월...대사 뱉어내지 못하는 순간까지 연기 계속”

50년이 넘는 세월, 연기와 생활이 같이 왔다. 욕심이 많아서 배우로서, 주부로서 최선을 다해온 삶이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 오랜 세월, 소문 창궐하고 부침 많은 그곳에서 버티도록 했을까.

“미친다고 할까...이거 아니면 안 될 거 같았으니까. 이거 안 하면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였고. 좋아서 했으니까 그 마음이 변함없었던 거 같아. 언젠가 대사를 뱉어내지 못하면 끝나는 것일 테니 지금까지 버틸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해준 게 고맙지. 부모님께 감사하고, 하늘에 감사하지. 요즘도 내가 연기한 인물에 대해 사람들이 공감해주는 거에 행복함을 느껴요. 과장되게, 부족하게 연기할 때도 있겠으나 내 만족이지.”

[취재후기] 유머감각 풍부한 어르신이다. 스스로도 "웃기고 즐겁게 살려는 '올드미스' 할머니"라고 고백한다. 호기심과 의심이 많다. 에두르는 법 없이 돌직구를 날린다. 김영옥의 연기를 젊은 세대들이 좋아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모습과 달리 소녀감성이며 우아하다. 그 많은 대사량 소화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늘 대본을 들고 다니는 게 창피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자신 있으면 왜 들고 다니겠느냐”며 “윤여정은 딱 놓고 다닌다”고 직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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