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7:50 (금)
'손님' 김광태 감독 "이 정도가 신선하다면 한국영화 정체됐던 것" [인터뷰]
상태바
'손님' 김광태 감독 "이 정도가 신선하다면 한국영화 정체됐던 것"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7.19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흥행 가뭄에 시달렸던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계를 그나마 해갈시켜준 오아시스는 역량 있는 신인 감독들의 발견이다. 이병헌(스물), 홍석재(소셜포비아), 한준호(차이나타운), 김성제(소수의견), 신수원(마돈나) 그리고 판타지 호러 장르를 들고 ‘입봉’한 김광태(39)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독일 전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손님’은 1950년대, 외딴 산골마을 풍곡리로 찾아든 악사 우룡(류승룡) 부자가 마을의 골칫거리인 쥐떼를 쫓아주면서 맞닥뜨리는 기인한 사건과 핏빛 파국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김광태 감독이 보기 드문 판타지 호러 장르인 영화 '손님'으로 장편 상업영화 연출 데뷔를 했다. 독일 전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영화는 1950년대 외딴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약속과 배신의 드라마틱한 이중주다.

‘약속’을 키워드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이 광기로 전환하는 모습을 포착한 연출력은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완성도 높은 미장센과 음악에서도 김광태 감독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는 18일 현재 77만4000명의 관객을 모았다.

- 개봉 이후 관객 사이에 호불호가 갈리는 양상이다.

▲ 처음엔 대거 등장하는 쥐때문이 아닐까 싶었는데 영화의 만듦새가 많이 거론되더라. 초반 전개가 늘어지고, 거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부는 동의한다. 찍어놓은 분량이 많아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했다. 관객이 한번 더 생각하는 능동적 관람태도를 보여주신다면 간극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 영화에서 드라마가 1순위이긴 하지만 소품이나 음향에 드라마를 대체하는 장치를 깔아놨었다.

- 약속의 중요성을 테마로 한 독일 전설과 ‘손(님)’에 얽힌 한국의 민간신앙을 결합한 스토리가 눈에 밟힌다. 어떤 계기로 착상을 하게 됐나.

▲ 아이디어 수첩을 뒤적이던 중 10년 전 스트랩해뒀던 ‘피리 부는 사나이’ 책 소개가 눈에 띄었다. 원작의 힘이 강력해서 비틀지 않아도, 살만 보탠다면 요즘 관객에게도 충분히 어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 사회적으로 인턴, 비정규직 등 고용의 문제가 스멀스멀 올라와서 ‘약속’과 묶으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여겼다. 관객의 대다수는 을의 억울함에 공감할 것으로 확신했다.

류승룡 이성민 천우희 이준이 주연을 맡은 판타지 호러 '손님'의 극중 장면

- 시종일관 긴장을 조성하는 대목은 떠돌이 악사 우룡과 마을을 지배하는 강력한 촌장(이성민)의 대결구도다. 캐릭터뿐만 아니라 40 남자배우 전성시대를 대표하는 두 배우의 연기대결이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 우룡은 따뜻한 아버지, 약장수의 익살꾼 느낌과 살가움에서부터 복수의 화신으로 변화하기에 극단을 오갈 수 있는 연기자가 필요했고, 당연히 류승룡 배우가 떠올랐다. 촌장의 경우 시나리오대로 60대 배우로 가려다가 뻔한 이미지 캐스팅으로 갈까봐 이성민 배우를 선택했다. 드라마 ‘골든타임’에서의 피곤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손님’에서 촌장 역시 독재자지만 피로감을 느끼는 인물이라 어울릴 거 같았다. 캐스팅 때는 ‘미생’이 히트하기 전이었다. 류승룡 이성민, 두 배우의 격돌이 빚어내는 긴장을 살리느라 영화의 앞에 부분을 들어낼 만큼 최대치를 보여주셨다.

- 한국전쟁으로 남편과 아이를 잃은 청상과부 미숙은 촌장의 강요로 마을을 지키는 무당이 된다. 우룡과 풋풋한 로맨스를 나누기도 한다. 주연은 아니었으나 영화에 독특한 색깔을 덧칠한 여배우 천우희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 생각이 깊고 넓은 배우다. 아주 똑똑하다. 배려심도 많고. 배우들에게 세밀하게 디렉션을 하지 않고 맡기는 편이다. 워낙 유명한 감독들과 작업해왔으니 전략적으로 믿고 갔다. ‘손님’이 돋보였다면 배우들의 역량 덕분이다. 천우희는 그런 면에서 이번에 큰 역할을 해줬다.

- 과거와 달리 호러는 최근 국내에서 잘 제작되지 않는 장르다. 완성도와 흥행 면에서 위험부담도 크다. 그럼에도 신인 감독으로서 도전한 이유가 궁금하다.

▲ 위기이자 기회가 아닐까. 이 영화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포인트가 뭘까 고민하다가 ‘판타지’와 ‘호러’로 결론이 났다. 호러영화가 그간 좋은 평가를 많이 받지 못했으나 오히려 기회로 생각하고 과감한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외국 공포영화에 식상해하던 참이었으니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거라 생각했다.

 

- 관객과 평단은 ‘손님’을 두고 “독창적이다” “신선하다”는 칭찬을 많이 하고 있다.

▲ 이 정도가 ‘신선하다’고 한다면 그동안 한국영화가 너무 정체돼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손님’이 과감한 도전의 발판이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여름 시장의 문을 여는 작품이라 부담이 많이 된다.

- 풍곡리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이 매우 정치적으로도 읽힌다. 촌장의 포용과 탄압이라는 분할통치, 독재자 이미지, 한국전쟁과 레드 콤플렉스 조장, 마녀사냥, 약속 파기, 배신의 낙인찍기 등이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 정치 표현은 부담스러우나 우리 사회에 대한 기시감은 의도했던 부분이다. 지금만의 일도 아니지 않은가. 과거를 빌어서 현재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국사회 재편의 분수령이 한국전쟁이었고 1950년대는 레드 콤플렉스가 사람의 생사를 좌우하던 시기이자 공포심이 지배했던 시대였다. 독재자는 영화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아이콘이기도 하니까 이미지를 쓸 수 있다고 본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해석됐으면 해서 행간을 띄어 놨다. 영화는 수용자의 것이니까.

- 강원도 평창 등 산악지대에서 촬영을 이어가느라 고생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지난해 5월 말부터 9월까지 100일 동안 60회차로 찍어나갔다. 날씨 때문에 보름 정도 지연됐는데 거의 산골에 짱 박혀서 촬영을 했다. 젊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인스턴트 음식도 못 먹고, 별다른 유흥거리도 없어서 힘들어했다.(웃음)

- 공간적 배경인 미스터리한 풍곡리 마을, 유럽의 집시풍 민속음악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결합한 OST 음악이 매우 인상적이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세트를 리모델링해서 풍곡리를 재현했다. 미숙과 촌장집은 새로 지었다. 전반에는 따뜻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다가 이야기가 급변하는 후반부에선 주로 밤 촬영으로 풍곡리를 담아냈다. 횃불 등을 이용해 불안감과 위협감 효과를 덧댔다. 영화 ‘혈의누’ 당시 태평소와 서양악기를 결합한 선율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이지수 음악감독에게 음악작업을 의뢰했다.

 

- 데뷔가 늦은 편이다.

▲ 2006년 사진기자와 쿠데타 세력의 이야기를 그린 정치영화 ‘사진사’로 경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한 뒤 2007년부터 데뷔를 준비했다. 공소시효 제도를 다룬 스릴러 ‘돌아온 남자’(2010)를 3~4년간 준비했으나 상업영화 제작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때 가장 힘들었다. 언젠가는 정치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다. 1960~70년대는 정치영화가 정점에 있던 시기였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은유적 표현이 횡행하면서 영화언어가 굉장히 발전했다. 난 지금 영화가 너무 드라마에 의존하고 있다고 본다. 소설의 정체성이 작가의 문체이듯, 영화의 정체성은 영화언어여야 한다.

- 차기작 구상을 들려 달라.

그간 한국영화계에선 드물었던 미래 배경 히어로물을 준비하고 있다. 구상은 끝났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 Who’s 김광태

1976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업/ ‘로드무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청춘만화’ 조감독/ 2006년 ‘사진사’ 경기영상위원회 경기창작지원프로그램 시나리오 부문 대상, 2010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NAFF 잇 프로젝트 한국방송예술진흥원상 수상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