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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점 많은 영화 관객들 덕에 천만 넘겨 감사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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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점 많은 영화 관객들 덕에 천만 넘겨 감사할 따름"
  • 이희승 기자
  • 승인 2014.02.04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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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인터뷰] '변호인' 제작자 최재원 위더스필름 대표 ①

[300자 Tip!] 11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변호인’에 대해 "영화적으로 허점이 많은 작품"이라고 겸손해 했다. 75억원의 제작비로 8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제작자인 최재원(47) 위더스필름 대표의 수중엔 80억원 정도가 남는다. 최대표는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는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원을 하려고 한다.  적어도 4~5년간은 회사 운영에 걱정 없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는 그는 50대가 되면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고 고백했다.
 

▲ 사진=스포츠Q 노민규 기자

[스포츠Q 이희승기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이었다. 30대 초반이었지만 벤처캐피널 회사에서 그가 관리하는 돈만 수백억 원이 넘었다. 경쟁 투자사에서는 연봉을 몇 배로 올려서라도 그를 영입해 오려고 난리였다. 멋진 차와 집, 단란한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 단 한 순간도 아쉬운 적이 없었다. 머니 게임에만 길들여진 그가 영화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기업 투자의 몇십분의 일만 투자해도 운이 좋으면 배 이상의 수익이 보장됐다. 망해도 몇십 만명은 영화를 보는 셈이니,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손해볼 게 없었단다.

'재미난 삶' 살고파 잘나가던 금융맨에서 영화로 터닝

그때였다. 문득 대학 때 아르바이트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다큐멘터리 작가라는 괜찮은 타이틀이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FD도 되고, 방송 전에는 편집까지 해야하는 고단한 작업이었다. 몸은 힘들어도 그때의 재미난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사 아이픽쳐스의 문을 두드렸다. ‘변호인’의 제작자 최재원 대표의 영화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에서야 실감나요.1100만명이 넘어서야 믿겨지다니. 저도 참~(웃음). 수많은 영화를 했는데도 솔직히 1000만명은 꿈에서나 나올 법한 숫자잖아요. 이제야 내가 무슨 노력을 했나. 한 게 아무것도 없구나 싶은 거죠.”

한국영화 사상 아홉 번째로 1000만 클럽에 가입한 ‘변호인’은 여러모로 ‘늦둥이’에 속했다. 애초부터 소규모 영화로 제작할 계획이었고, 예산도 작았지만 쉽게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 10년 지기인 배우 송강호가 그의 사정을 듣고 기꺼이 동참했지만 진도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어렵게 영화를 완성했어도 고난은 이어졌다. 개봉 전부터 평점 테러를 당하고, 대량 예매취소를 겪기도 했다.

영화가 걸어온 과정과 이뤄낸 성과보다도 최대표의 뚝심이 궁금했다. 벤처 캐피탈 업계에서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는데, 하필이면 왜 이렇게 춥고 배고픈 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는 지를 묻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후배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영화판에 오지 말라’예요. 대한민국은 영화로 밥벌이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 걸 너무 잘 아니까. 한해에 제작되는 영화를 100편으로 잡고, 10년 동안 망하다가 겨우 ‘변호인’ 한 편 건진 건데, 그걸 뚫기위해 버티는 건 미련한 거죠. 그 어떤 보상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요.”

 

 

가장 책임감으로 혹독한 영화계 버텨내…동갑내기 아내에 감사

그럼에도 그가 영화계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맞닿아 있다. 강남 한복판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영화를 시작하며 경기도 인근의 전세, 월세를 전전해도 묵묵히 지원해 준 동갑내기 아내는 ‘변호인’ 촬영 당시 유난히 신나서 현장에 가는 자신에게 “그렇게 좋냐?”고 눈을 흘겼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바가지 한 번 긁지 않았다.

스무살에 친구처럼 만나 7년을 연애해 결혼해서인지 자신의 성격을 가장 잘 알고 지지해준다. 유난히 말수가 적은 막내 아들은 집에 있는 '변호인' 시나리오를 보더니 “뒤로 갈수록 통쾌하다”며 젊은 세대 관객에게 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최대표는 아이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배우로 캐스팅 조언(?)을 해줄 때가 제작자이자 아버지로서 가장 행복하다는 속내를 들려준다. 얼마 전 대입수능시험을 본 딸은 "아빠, 이 역할은 무조건 박유천이 해야 된다"며 조르기도 한다.

‘변호인’의 제작자로서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일까. 그는 “영화적으로는 허점이 많은 영화”라는 말로 겸손해 하면서도 “입봉 감독이기도 하고, 송강호가 커버해줄 거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현장에서 그만큼 치열하게 싸운 결과물이다. 개인적으로는 극중 송우석의 ‘할게요. 변호인!’이라는 대사를 볼 때마다 울컥한다. 내 입장에선 하나의 확신같은 말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변호인’이 있기 까지 최대표의 영화 인생은 한마디로 “고스톱에서 잃은 건 고스톱으로 따야한다”로 함축된다. 영화에 입문한 뒤 돈만 날리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예전 회사와 금융업계에서 러브콜이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훌쩍 떠난 미국 연수에서도 영화 ‘장화, 홍련’의 제작자로 알려지면서 할리우드 관계자들과 인맥을 쌓으며 영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 워낙 해외에서 호평받았잖아요. 자연스럽게 인연이 이어지더라고요. 그 소개로 봉준호 감독과 ‘마더’도 찍고, 나중에는 김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또 찍게 됐어요. 되돌아보면 몰라서 더 지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에 들어가서도(바른손, NEW 대표) 앉아서 월급만 받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서 ‘파괴된 사나이’부터 현장에서 버텼어요. 그러다 보니 투자와 배급, 제작을 모두 경험한 CEO가 된 셈이죠. 하하.”

 

     
 
 

총매출의 10%인 80억원 수중에…스태프에 인센티브 지급ㆍ회사 재투자

최대표의 회사인 위더스 필름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은 ‘변호인’은 약 75억원의 제작비로 8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예매율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금의 추세를 감안하면 10배 이상의 수익이 예상된다. 극장과의 수익 배분율인 50%를 떼고 각종 세금과 프린트비, 밀린 정산을 끝내면 그의 수중엔 80억원 정도가 남는다.

최대표는 “내가 손에 쥐는 건 10%이지만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원을 하려고 한다. 나머지는? 아내는 집부터 사자고 하지만 적어도 향후 4~5년은 회사 운영에 걱정이 없는 것만으로도 배부르다”며 미소 지었다.

'변호인’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관객들이 차려준 ‘1000만’이라는 밥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시스템을 정착시키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 일환으로 개성이 강해 유난히 뭉치기가 힘든 영화인들을 단합시키는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구상 중임을 살짝 들려줬다.

“원래 제 인생 계획이 20대에는 돈 많이 버는 회사원, 30~40대에는 하고 싶은 영화 제작자, 50세부터는 나누는 삶을 사는 거였어요. 가장 힘들 때 불교를 통해 위안을 많이 얻어서인지 마음 편한 게 가장 큰 행복인걸 깨달았거든요. 이제 3년 남았으니 더 열심히 뛰어야죠.”

[취재후기]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사무실에는 향초가 타고 있었다. 항상 켜두는 게 습관인지 창가에는 바닥을 드러낸 향초가 쌓여 있었다. 각종 상패와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어 있는 곳은 봤지만 사무실 공기까지 신경 쓰는 제작자는 처음이었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흡연자인 대표와 비흡연자인 직원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란다. 그러고보니 최대표의 사무실 이름은 '모두 다함께'라는 뜻의 'With us'다. 모두 다함께 울고 웃는, 또 하나의 영화가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ilove@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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