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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도심 골목, 정감어린 ‘소통의 거리’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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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후된 도심 골목, 정감어린 ‘소통의 거리’로 거듭나다
  • 박길명 편집위원
  • 승인 2014.02.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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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강구안 푸른 골목 만들기’ 총감독 김윤환

[통영(경남)=스포츠Q 박길명 편집위원] 코끝에 감도는 비릿한 바다 내음, 흰 구름 둥실, 물살 가르는 뱃고동. 경상남도 통영이다. 뭇 사람들에겐 바닷가 달동네의 알록달록한 벽화로 이름난 고장. 그곳 동피랑 마을 아래 해산물 넘치는 중앙시장을 지나 충무김밥거리 뒷골목을 만났다.

 

▲ 고 윤이상이 작곡한 '달무리' 악보의 음표를 자전거로 형상화한 작품 앞에 선 김작가

육지로 바다가 들어온 항구, ‘강구안 골목길’이다. 바닷바람과 부대끼며 살던 이들의 추억이 오롯한 이곳이 예술과 만나 힘찬 도움닫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년, 강구안 골목길의 도약을 함께 한 미술작가 김윤환(49)씨는 낙후된 옛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라고 했다.

“강구안 골목은 ‘통영의 명동’과 같은 곳입니다. 통영출신 예술인들의 활동무대이자 놀이터이기도 했지요. 그러다 인근에 새 상권이 잇따라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 지저분한 골목길로 전락해 버렸어요. 이런 강구안의 옛 명성과 활기를 되찾자는 취지에서 지역사회단체인 푸른통영21이 낸 기획이 경남도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강구안 푸른골목 만들기’ 프로젝트가 본격화된 겁니다.”

과거 뱃사람과 나그네들이 먹고, 마시며, 자던 골목안 가게는 식당을 중심으로 전당포, 옷가게, 여관 등 50개에 이른다. 단연 외지인의 눈길이 사로잡는 것은 ‘공작소’라 불리는 대장간. 대장장이가 쇠를 다루는, 시골 장터에서도 좀체 만나기 힘든 풍경 하나가 도심 한복판에 있다.

예술감독으로서 김 작가가 총괄한 프로젝트는 통영안팎 10여명의 예술가들이 만든 친환경 간판부착과 더불어 태양광 가로등 설치, 골목쉼터 조성, 바닥재 교체 등으로 진행됐다. 앞서 간판교체에 따른 가게 주인 설득작업에서 작가와 상인간의 의견조율 역시 그의 몫이었다. 최근에는 골목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골목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골목 안 통영’이란 제목의 책도 출간됐다.

“골목이 밝고 깨끗해진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소통의 거리’가 됐다는 게 중요합니다. 상인과 예술가, 또 상인간의 소통 말이지요. 예전엔 없던 상인협회가 생겨 서로 잘해보자며 격려하고 정을 나누는 장, 그것이 프로젝트의 큰 성과지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상인들의 만족도나 도시를 되살리는 예술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는 점도 그렇고요.”

◆ ‘밥그릇 뚜껑’이 물고기 조형물로

골목상권 입구에는 천재화가 이중섭의 '물고기와 노는 세 아이'에 나오는 물고기를 형상화한 4.5m 높이의 조형물이 설치돼 강구안 골목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중섭은 한국전쟁 중 통영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조형물. 이 작품은 프랑스 환경 조각가 그룹 ‘아트 북 콜렉티브’의 장 미셀 후비오, 얄 룩 마스. 마갈리 루이 3인이 지난해 봄 한 달 동안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만들었다.

▲ 골목 상징 조각

물고기 비늘을 자세히 보니 밥그릇 뚜껑이다. 조형물에 쓰인 재료들은 모두 통영에서 구한 것이라고 한다. 물고기 조형물 꼬리 부분에는 책을 꽂아 누구나 나눠 볼 수 있게 했다. 시민들이 나누고 싶은 책을 지나다 꽂아두면 다른 사람이 꺼내 보는 방식. 단순히 조각으로만 머물지 않고 소통의 의미를 살린 것이다. 소통을 상징하는 조형물은 김 작가와 그의 10년 지기인 프랑스 작가들 간의 우정이 낳은 산물이다.

“작품비가 포함되지 않은 말도 꺼내기 민망한 저비용에도 취지에 공감한 프랑스 친구들이 흔쾌히 응해줘 정말 고맙더군요. 작업도 이른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하루 12시간, 그야말로 막노동하다시피 너무 열심히 해줬습니다. 처음엔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주민들도 이내 감동하더군요.”

김 작가는 이달 말 프로젝트 마무리돼 한바탕 마을잔치를 하고 나면 강구안 골목길은 통영의 또 다른 명소로 거듭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다가올 봄, 그는 동피랑 마을의 벽화 새 단장에 나설 계획이다. ‘도시의 버려진 공간이 예술과 만나면 그곳은 바로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는 김 작가.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myung65@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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