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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때리나요? 한국 스포츠가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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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때리나요? 한국 스포츠가 아픕니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23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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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리스펙트'가 절실...군사문화·권위주의 여전, 폭력 추방 안되면 자연도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소치 동계올림픽을 치르고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2014년 한국 스포츠의 현실이 암담하다.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는 일제시대의 잔재와 군사독재, 권위주의와 맞물려 특이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과정보다 결과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전쟁에서 패배는 곧, 죽음이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서는 그 어떠한 것도 용납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군대 문화와 권위주의까지 더해져 지도자가 선수에게 손찌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져왔다. 물론 명분은 '사랑의 매'와 '기강잡기'다. 함께 뛰는 선수 사이에서도 선후배가 나뉘어 폭력이 자행되는데 지도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결과 논란에 휘말린 지도자들이 옷을 벗었다. 22일 성남 FC를 이끌던 박종환 감독은 선수 폭력 논란에 휘말려 K리그 현장 복귀 4개월여만에 자진 사퇴로 불명예 퇴진했다.

또 부천FC 유진회 골키퍼 코치 역시 13일 강원과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 하프타임 때 선수들을 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유 코치는 상습적으로 수차례 선수들을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고 결국 자진 사퇴로 귀결됐다.

▲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14일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진행한 '리스펙트 캠페인' 선포식에서 감독,선수,심판 등 참가자들이 상호 존중을 실천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지도자의 폭력은 오랜 관행이자 치부

지도자가 선수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치부이기도 하지만 오랜 관행이기도 하다.

프로야구에서는 K 감독이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던 2군 포수의 머리를 야구 방망이로 때린 사건이 있었다. 피해 선수는 머리 윗부분이 깨져 병원에서 여섯 바늘을 꿰매는 치료를 받았다. 몸이 생명인 선수에게 이런 부상을 입힌 것도 문제이지만 그 서러움과 창피함이 평생 가슴에 남을 멍이다.

Y 감독은 야구 방망이로 선수들에게 기합을 주려 하자 선수단이 집단으로 숙소를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선수단이 와해되면서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결국 Y 감독도 불명예 퇴진했다.

2003년에는 대학 입학 예정이던 전도유망한 야구 선수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당시 경찰 조사 결과 정확한 자살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자친구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선수들에게 정신적 및 물리적 폭력과 위협이 흔하게 가해졌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를 봤을 때 해당 선수도 폭력에 대한 공포감이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수많은 지도자의 폭력이 2000년대에 있었고 당시에도 시대에 뒤처진 일 또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하지만 2010년대가 되어서도 스포츠 현장은 변한 것이 없다. 이런 치부가 오랜 관행이었다는 증거다.

쇼트트랙 대표팀의 C 감독은 과거 선수 구타 사건에 연루돼 대표팀 코치직에서 사퇴했다. 소치 올림픽을 앞두고는 성추행 전력이 있는 지도자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소치 올림픽을 통해 '컬스데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여자컬링대표팀 역시 코치의 성추행과 폭언 사실이 밝혀졌다.

또 루지 대표팀의 L 코치는 지난해 9월 강원도 평창 훈련 도중 무단으로 숙소를 이탈했다며 선수를 구타했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던 해당 선수는 구타당한 뒤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을 느꼈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해당 코치는 5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 1월에는 경남 지역의 한 고등학교 농구부 감독이 선수를 구타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올시즌 여자프로농구 MVP 박혜진이 2011년 소속팀 우리은행을 이끌던 감독으로부터 목이 졸리는 폭행을 당해 언론에 피해 사실을 알린 일화도 유명하다.

경기 지역 고등학교의 한 축구 감독은 "학생 선수들을 대학교나 프로팀에 잘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것이 지도자들의 숙명이자 책임"이라며 "어떻게 해서든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선수들이 말을 안들어 감정이 올라오다 보면 저절로 매를 들고 손찌검을 하게 된다. 기강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쓰면 분명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나기 때문에 계속 쓸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또 서울 지역 중학교의 농구 감독 역시 "자신의 선수들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위해를 가하는 지도자는 없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지도자 가운데에는 인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지만 분명 폭력은 끊기 힘든 유혹"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대택 국민대 교수도 뜻을 같이 한다.

이 교수는 "기강을 잡고 겁주고 때리면 단기적으로나마 좋은 성적이 나고 효과가 나니까 계속 폭력을 쓸 수밖에 없다. 학생 선수들을 상급 학교에 진학시키고 좋은 성적과 메달이라는 결과를 중시하는 엘리트 스포츠의 현실상 지도자들은 폭력이 정당하다는 명분을 갖게 된다"며 "성적과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이런 제도가 지도자의 선수 폭력을 양성화하고 묵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부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40, 50년 동안 뿌리깊게 자리하고 사회가 방조해온 문제"라며 "우리나라 스포츠계 전반과 사회, 조직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절대 뿌리뽑히지 않을 문제"라고 지적했다.

◆ 스포츠인 권익센터·4대악 센터 등 각종 대책도 악습 끊기엔 역부족

스포츠 현장의 오랜 악습을 끊기 위해 정부도 팔을 걷고 나섰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채택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을 통해 스포츠를 향유하는 과정에서 폭력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인 스포츠 인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2012년 선수 (성)폭력 사안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한 뒤 실태조사를 하기도 했다.

당시 실태조사에서 스포츠현장에서 폭력 경험 비율이 2010년 51.6%, 2012년 28.6%였고 성폭력 경험 비율 역시 2010년 26.6%, 2012년 9.5%로 조사됐다. 줄어들긴 했지만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폭력을 당하고도 대처에 소극적이었으며 상당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폭력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돼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줬다.

결국 문체부는 스포츠인 권익센터 상담·신고 기능 보강, 각종 대회 및 훈련 현장, 학교에 직접 찾아가는 교육 및 상담, 신고자 불이익 처분에 대한 처벌 강화 및 비밀보장 등 10대 과제를 마련했다.

또 지도자 채용심사 때 폭력 경력 지도자가 징계기간 중 복귀하는 사례가 일부 발생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도자 등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적 위주의 지도자 평가시스템 개선, 지도자 양성과정에서 폭력·성폭력 예방 등 인권교육 확대 및 학부모와 지도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중 폭력 예방 교육 실시 확대 등도 실천해나가기로 했다.

여기에 스포츠 4대악 신고센터에 제보된 사례 가운데 징계와 형사처벌에 이르는 등 스포츠 비리 근절에 기여하는 중요한 제보를 한 신고자에게 최고 3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폭력 행위를 뿌리뽑으려는 각종 대책을 내놨다.

이후에도 체육지도자 자격 검정 시험에 '스포츠 윤리' 과목을 신설하는가 하면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규정 개정안을 마련, 폭력과 성희롱, 성추행 등에 대해 경중에 따라 6개월 미만 자격정지에서 영구제명까지 양형 기준을 세분화하고 선수 폭력과 성폭력에 관한 모든 징계를 선수위원회 결정에 따라 결정하도록 창구를 일원화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스포츠3.0 위원회, 스포츠공정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출범시켜 폭력 등 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비위를 해결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 대한축구협회가 지난 14일 주최한 '리스펙트 캠페인' 선포식에서 참가자들이 상호 존중을 실천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인식 변화와 지도자-선수 상호 존중 문화도 자리해야

협회나 연맹 등 관련 기관에서도 폭력 근절을 위한 노력에 한창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상호 존중을 위한 '리스펙트 캠페인'을 시행, 상호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결의하기도 했다. '리스펙트 캠페인'은 영국에서 매년 7000여명의 심판들이 경기 중 받은 모욕적인 욕설과 협박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상황이 발생하자 이를 막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도 매년 경기장에서 폭력 및 폭언 행위가 늘어나고 있어 협회에서 이 캠페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번 캠페인은 선수와 지도자, 심판, 서포터 등 축구 관련 종사자들이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올바른 축구 문화를 선도하자는 취지여서 지도자의 선수 폭력이 자행되는 현실에서 의미가 있다.

또 한국프로축구연맹도 23일 지도자의 선수 폭행과 관련, 선수의 인권 보호와 폭력 행위 근절을 위해 2012년 5월부터 상시 운영하고 있는 클린센터를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연맹은 스포츠계에 만연해 있는 폭력 불감증을 해소하고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캠페인과 소양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한편 선수를 포함한 K리그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건강한 K리그에 위협이 되는 각종 요소들을 직접 관리·감독함으로써 보다 책임감 있고 효과적인 감시 기능을 수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당사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부와 관련기관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폭력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음에도 팀의 기강을 잡기 위해 선수에 대한 '사랑의 매'는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는 지도자들이 계속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상 고쳐지기 힘들다.

이에 대해 허정훈 중앙대 교수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지도방법을 도입해야 하는데 해당 지도자들이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전통적인 코칭 방법에 길들여진 지도자들이 감정적으로 폭력을 쓰게 된다"며 "폭력이라는 방법이 단기적으로나마 효과가 나지만 결국 이는 동기를 떨어뜨리고 의사 소통도 안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조언했다.

허 교수는 이어 "지도자의 폭력은 너무 오래된 관습이라 각종 제도와 시스템으로 강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폭력이 범죄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만 한다"며 "채용단계부터 서약서를 쓰게 하는 한편 선수인권 가이드라인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달영 변호사는 "엘리트 스포츠에서 지도자의 선수에 대한 손찌검은 이제 경중을 떠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되기 어렵다"며 "과거와 달리 지금 우리의 문화와 의식 수준은 선생님 또는 지도자의 학생과 제자, 또는 선수에 대한 징계의 정당성에 대한 포용심이 좁아졌고 징계의 법적 타당성에 대해서도 법원에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지도자들이 손찌검에 대한 가치관 제고가 필요할 때"라고 인식의 변화를 요구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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