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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썸머 나잇' 김상진 감독 "나 같은 사람이 안하면 코미디영화 실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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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썸머 나잇' 김상진 감독 "나 같은 사람이 안하면 코미디영화 실종"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7.24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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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로 국내 코미디 영화를 개척해온 중견 감독 김상진(48)이 돌아왔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직설화법 웃음을 들고.

지난 7월16일 개봉한 ‘쓰리 썸머 나잇’은 코미디 영화의 정통성에 다가가려는 김상진 감독의 의지가 투영돼 있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순도 100%의 웃음을 향해 전력 질주한다.

영화는 고교시절부터 절친했던 세 친구가 어느 여름 밤, 술판을 벌이다 탄력을 받아 부산 해운대로 일탈을 감행하는 여정을 그린다. 만년 고시생 명석(김동욱), 콜센터 상담원 달수(임원희), 제약회사 영업사원 해구(손호준)는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뒤 눈을 뜨지만 조폭,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돼 좌충우돌한다.

충무로 중견 감독 김상진이 4년 만의 신작 '쓰리 썸머 나잇'으로 코미디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아냈다

- ‘투혼’ 이후 4년 만이다.

▲ 할리우드 코미디영화 ‘행오버’ 느낌이 나는 코미디를 해보고 싶었는데 우리 정서와의 차이로 인해 포기했었다. 그랬던 차에 내 콘셉트와 비슷한 원안을 접하게 됐다. 불쑥 여행을 떠나고, 술로 인해 기억이 나질 않고, 사건사고가 펼쳐지는 내용이었다. 세 친구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삽입하고, 에피소드를 많이 바꾸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 세 친구는 모두 지친 인물들이다. 명석은 잘나가는 변호사 여자친구, 달수는 진장 고객, 해구는 갑질하는 의사로 인해 힘들어한다. 꿈을 잃고 살아가는 이 시대 미생들을 위로하는 건가?

▲ 이들이 꿈을 찾아 떠나기는 하지만 떠나는 순간부터 개고생하는 이야기다. 절대로 이들이 즐거워선 안 된다, 그래야 관객에게 재미를 준다고 여겼다. ‘쓰리 썸머 나잇’은 세 주인공을 개고생 시키는 이야기다. 위로하고 용기를 주려고 하기보다 “고생은 하지만 잘 살고 있어요”란 말을 하고 싶었다.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닌가. 이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사는 계기 운운은 ‘오바’다.

- 잘 나가다가 강박적으로 ‘휴먼’ ‘메시지’를 담으려드는 국내 코미디 영화 트렌드에 딴지를 걸기 위해 만든 것 같다.

▲ 다들 코미디 영화를 사회성을 지닌 작품으로, 교훈적 이야기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영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를 보면 작가와 감독의 강요가 너무 싫더라. 그냥 재밌는 이야기로 만들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게 코미디고, 재밌게 느꼈던 걸 표현해보자 했다.

임원희 김동욱 손호준이 코미디 영화 '쓰리 썸머 나잇'에서 30대 초반의 절친한 세 친구로 등장해 더위를 씻어낼 화끈한 웃음을 선사한다

- 그렇다면 ‘쓰리 썸머 나잇’에서 담아내고 싶었던 게 무언가.

▲ 젊음과 생기발랄함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아직은 젊고 해볼만하다는 거, 명석 달수 해구는 일탈 후 제자리를 찾아갈 거고 인생은 계속될 거다. 이런 일탈을 더 이상 시도하겠나? 그러니 마지막으로 해볼 만하지 않을까 여겼다.

- 왜 부산을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했는지도 궁금하다.

▲ 예나 지금이나 젊은 세대가 일탈을 꿈꾸며 가장 많이 가는 곳이지 않나. 나와 내 친구들도 그랬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찾게 되나 결국은 고생만 하고, 술만 진탕 마시다가 온다. ‘쓰리 썸머 나잇’의 조감독도 세 친구와 비슷하게 해운대에 갔다가 노래방에서 6시간 동안 노래만 한 뒤 새벽에 기차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고 한다.(웃음)

- 임원희를 제외하고 김동욱 손호준은 코미디 장르에 익숙지 않은 배우들이다.

▲ 코믹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좋지만은 않다. ‘주유소 습격사건’ 당시 이성재와 유지태를 캐스팅했듯, 배우 본인이 가진 캐릭터가 영화에 묻어나는 게 싫어서 주인공 3명은 신선하고 고정화된 이미지가 없는 배우들을 기용하고 싶었다. 그래야 옷을 입히고, 만들어가기가 쉽다. 임원희는 코미디를 많이 해왔기에 감각이 좋고 이해도가 높다. 그러면서도 캐릭터의 옷을 잘 갈아입는 느낌이 난다. 김동욱과 손호준은 코미디 장르를 낯설어 했지만 자기 역할을 잘 수행했다. 영화에서 제일 크게 터지는 부분은 사실상 동욱이가 담당했다.

 

- 임원희 김동욱 손호준이 만취 상태에서 부산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차가 몽땅 분해된 장면에서 많이들 웃더라.

▲ ‘한 번 해볼 때까지 해보자’였다. 상상인데 뭐든 못하겠냐 싶었다. 대리 운전기사가 차체를 산산조각내서 도망간다는 설정도 캐릭터들을 어떻게 고생시킬까를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었다. 마침 그 즈음, 주차장에 있던 차가 완전 분해돼 벽돌더미 위에 얹혀져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온 것도 자극을 줬다.

-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제작진 역시 부산 로케이션을 이어가며 ‘개고생’하진 않았나?

▲ 촬영 자체는 힘들지 않았으나 코미디를 더 하고 싶은데 제작비와 여건 면에서 뒷받침이 되질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예를 들어 도주할 때 행글라이더 장면이 상투적인 바나나보트로 대체되고, 경찰의 추격을 받을 때 유원지 회전목마와 꽃마차가 골목길 오토바이크로 바뀌어진 것들이 그랬다.

- 요즘 대세인 청춘스타 손호준의 베드신 장면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 뜨기 전에 출연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까(웃음)...사전엔 많이 긴장하고, 수위와 관련해 궁금해하고 그러는 거 같았는데 흠잡을 데 없이 잘 찍었다. 기본적으로 내가 에로나 멜로 커트를 잘 찍질 못한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과 톤을 맞추기가 어렵다. 이번엔 ‘부담 없이 만들자’가 목표였기에 만화적 표현을 많이 하려고 했다.

- 김상진 감독의 전작들에서처럼 세 친구, 조폭, 경찰들이 서로의 뒤를 쫓는 난전 같은 소동극이 등장한다.

▲ 내 코미디의 장점이자 단점이 돼버린 게 한바탕 왁자지껄하는 거다. 이번 영화에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 새 또 찍고 있더라. “이러면 안 되는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도 후반부에도 있었던 신을 바꾸기도 했다.

 

- 감독으로 데뷔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만족할 만한 행보였다고 자평하는지.

▲ 지금까지 잘 해온 것 같다. 이른 나이에 너무 큰 성공을 해봤고,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과 같은 가족 코미디 영화도 찍어봤고, 감동과 눈물이 있는 영화도 해봤다. 성공과 실패를 두루 맛보면서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향후 20~30년간 연출을 할 테니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를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앞으로 10년간 메시지와 정치·사회비판 없이 재밌게 보는 코미디영화를 더 할 수 있는 동력은 생긴 듯싶다.

- 김 감독도 ‘주유소 습격사건’ ‘광복절 특사’ 때는 영화에 사회 비판적 시선을 곧추 세우고, 메시지를 담아내려 하지 않았나?

▲ 30대 초반, 젊은 날의 치기였다. 성장하며 생각이 바뀌어가는 게 있는데 생리적으로 무겁고 난척하는 게 싫다.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좋다. 물론 코미디에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가 빠지면 약하다고 말한다. 그것도 맞는 말인데 난 아주 은밀하게 슬쩍 밀어놓고 싶다.

- 이토록 코미디 영화에 천착하는 이유가 무언가.

▲ 원래부터 액션, 코미디영화를 좋아했다. 어린 시절 홍콩영화에 탐닉했다. 재미나고 마음껏 웃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우석 감독님 밑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코미디 영화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감탄했기 때문이다. 요즘 코미디가 가뜩이나 위축되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코미디 안하면 코미디 영화는 실종된다.

- 그리고 보면 퓨전 코미디는 있으나 코미디의 본질에 집중하는 영화는 많이 줄어들었다. 공포물도 마찬가지겠지만.

▲ 지금 만들어지는 장르란 게 대부분 시대물과 액션대작이다. 영화를 지키는 기본 토양인 호러, 멜로, 코미디는 다 죽었다. 이제 배우들도 코미디를 하지 않으려 든다. 폼 나는 영화만 하려고 한다. 나까지 코미디를 버리면 극도로 위축된 장르영화가 죽을 것 같단 위기감 탓에 코미디에 더욱 매진하려고 하는 것도 있다. 장르뿐만이 아니라 투자·배급 시스템에서도 다양성이 확보돼야 좋은 감독, 배우, 스태프가 발굴·성장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아무튼 내가 꿋꿋하게 하면, 따라오는 후배들과 지지해주는 관객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김상진 허진호 장윤현 봉준호 임상수 등 주목할 만한 30대 감독들로 인해 한국영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그래서 충무로 중견감독의 귀환이 반갑게 여겨진다.

▲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장윤현의 ‘접속’에 배어나는 순수멜로의 감성을 이젠 찾아볼 수가 없지 않나. ‘플란더스의 개’에서 묻어나는 봉준호의 독특한 시선과 묘한 감성도 대체불가였다. 나는 나대로 코미디에 투혼을 불살랐다. 당시와 같은 장르의 풍성함은 떨어짐에도 지금도 좋은 영화들은 많다. 다만 수익성 창출이 관건인 대기업·대작 위주의 불공평한 시스템으로 인해 푸대접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 '쓰리 썸머 나잇’에 대한 흥행 성적표를 조만간 받아들 텐데, 요즘 심경은 어떤가.

▲ 걱정은 그때 가서 하면 되는 거다. 얼마 전 일반시사 때 발을 동동 구르며 관람하는 관객을 봤을 때 가장 큰 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코미디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통쾌하고 기분이 좋다. 아직 할 만하구나...죽지 않았다...고 내게 주술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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