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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굵었던 김기태의 30개월 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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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굵었던 김기태의 30개월 변혁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24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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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 카리스마 '형님 리더십' 발휘…내부 유망주 발굴·육성도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김기태(44) LG 감독이 떠났다.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에서 최근 1승 9패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짊어지고 자진 사퇴했다.

경질이 아니다. LG도 그를 잡기 위해 밤새 설득했지만 김기태 감독의 마음은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2011년 11월 LG와 3년 계약을 맺었던 김기태 감독은 올해가 그의 계약 마지막 시즌이었다. 30개월만에 LG 사령탑에서 스스로 물러났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LG에 큰 재산이 됐다. 김기태 감독이 걸어왔던 30개월은 짧았지만 굵었다.

◆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 '모래알 LG'은 없었다

첫 시즌에는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두번째 시즌인 지난해 팀을 2위로 올려놓으며 11년만에 가을야구를 경험하게 했다. LG 가을야구의 상징인 '유광점퍼'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다.

LG가 이처럼 성적이 급상승세를 탈 수 있었던 것은 모래알 같았던 조직력이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이었다.

모든 단체종목이 그렇겠지만 야구 역시 '케미스트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선수를 모아놓아도 각자 알아서 행동하고 조직력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는다면 절대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없다. LG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김성근 감독을 경질시킨 LG가 10년 넘게 '흑역사'를 쓰게 됐던 것은 바로 스타의식이 심하게 물든 선수들의 개인행동 때문이었다.

이를 그 어떤 감독도 해결하지 못했다. 이광환,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전 감독에 양승호 감독대행도 풀지 못한 숙제였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이를 해냈다.

사실 김기태 감독이 박종훈 전 감독의 후임으로 선임됐을 때만 하더라도 최연소 신인 감독이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가 팽배한 LG를 잘 꾸려 나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과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이는 기우였다.

김기태 감독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보스기질'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말한다. 현역 시절부터 '왼손 거포'로 통했던 그는 쌍방울 시절부터 주장을 맡으며 리더십을 일찌감치 발휘해왔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카리스마는 개성이 강한 LG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성공 요인이 됐다.

첫 시즌부터 고난이 있었다. 박현준과 김성현 등 기대했던 투수들이 승부조작에 휘말리면서 전열에서 이탈했다. 또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온 이택근과 송신영, 조인성 등을 모두 다른 팀에게 뺏기면서 팀 분위기가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자신의 첫 시즌에 LG를 '자신의 팀'을 만드는데 할애했다. 당장 포스트시즌에 나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가을야구는 하지 못했지만 1년 동안 자신의 팀으로 만든 것이 2013년 포스트시즌을 나가는 힘의 원천이 됐다.

일단 자신의 팀을 만들기 위해 스타의식이 가득한 선수들을 부드럽게 포용할 필요도 있었다. 이병규(9번)와 박용택 등 30대 중후반 선수들과 나이차가 얼마 나지 않는 김기태 감독은 특유의 '형님 리더십'으로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

또 그는 선수들의 잘못은 모두 '내탓이오'라며 자신의 책임으로 돌렸다. 지난해 임찬규가 '물벼락 세리머니'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김기태 감독은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가 책임진다"는 말로 임찬규를 감쌌다. 자상하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는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말은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 권위 버린 '낮은 리더십' 스스로 가장 권위있는 감독이 되다

김기태 감독은 경기 도중 절대로 의자에 앉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든 팀의 덕아웃에는 감독 전용 의자가 있지만 "선수들이 계속 서서 경기를 하는데 어떻게 나 편하자고 의자에 앉겠느냐"는 김기태 감독이다.

현역 시절 스타 출신이었기에 어느 정도 콧대가 높을 법도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절대 그런 법이 없다. 오히려 형님같은 따뜻함으로 다가간다. 형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권위의식을 버렸기에 가능했다.

또 그가 권위의식을 버렸다는 증거는 직접 만들었다는 손가락 세리머니다.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만든 것이다. 감독이지만 감독 같지 않다. 따뜻한 큰 형님 같다는 것이 선수들의 얘기다.

지도력에서도 권위를 버렸다. 감독이 모든 권한을 갖고 지시할 수 있지만 각 분야별 코치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전문 코치들이 전문인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위를 버린 것이 오히려 그를 카리스마 있는 최고 권위의 감독으로 만들었다. 권위를 앞세우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선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부 지도자들이 새겨들을만한 얘기다.

◆ 동맥경화 LG, 유망주 발굴로 치료하다

LG의 또 다른 문제점은 바로 '동맥경화'다. 쉽게 말하면 세대교체가 되지 않는 대표적인 팀이다. 이제 40대가 된 이병규(9번)과 30대 중후반의 박용택이 팀의 주전인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LG는 이를 위해 두산의 화수분 야구를 키워냈던 박종훈 감독과 계약을 맺기도 했다.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박 감독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중도 사퇴했다.

박 감독 재임시절 LG의 2군 감독으로 부임했던 김기태 감독도 유망주의 발굴 육성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 결과 신정락, 문선재, 김용의 등 뉴페이스들을 1군에 기용할 수 있었고 이들은 주전급으로 성장했다.

고졸 루키 임지섭이 올해 두산과 개막 2연전의 두번쨰 선발 투수로 내보내 데뷔 선발승을 따낼 수 있었던 것 역시 김기태 감독이 얼마나 유망주 발굴과 육성에 힘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모든 복합적인 요소가 효과를 낸 것이 바로 2013년이었다. 모래알 같았던 조직력이 찰흙처럼 끈끈해지고 유망주들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맹활약하면서 LG를 11년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비록 두산에 1승 3패로 져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김기태 감독의 성과이자 업적이었다.

김기태 감독이 자진 사퇴하면서 이 모든 것은 '유산'으로 남았다. 그가 남긴 유산이 LG의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짧지만 굵었던 30개월은 지난 LG의 30년 세월보다 더 값질 것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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