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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배상문 패소, 병역 '특례'와 도전 '특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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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배상문 패소, 병역 '특례'와 도전 '특혜' 사이
  • 김한석 기자
  • 승인 2015.07.2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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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김한석 기자] ‘입대 연기 논란’을 빚은 프로골퍼 배상문(29)이 22일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올림픽 메달로 병역특례에 도전할 기회를 달라며 입대 시기 문제를 놓고 병무청과 대립, 이례적으로 법리 공방까지 치달았던 상황은 일단락됐다. 배상문이 항소하느냐, 법원의 결정에 따라 귀국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느냐를 떠나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남자 스포츠선수들의 숙명인 병역 문제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특례와 특혜를 보는 시각차부터 생각하게 된다. 올림픽 3위 이상 성적이나 아시안게임 금메달 성적을 거둘 경우 체육요원 병역특례가 주어지는 ‘특별한 혜택’는 누구나 도전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병역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 기회는 공평하게 보장받아야 하는 전제가 따른다. 도전하는 기회에서 특별한 예외가 나와서도 안 되고, 특혜로 비쳐져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 배상문이 입대연기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대구지방법원 제1행정부는 22일 배상문이 제기한 국외여행기간 연장허가신청 불허 처분 취소 소송 선고공판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판결로 피고인 대구경북지방병무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미국에서 상당기간 미국프로골프(PGA) 활동을 하며 체류했더라도 국외 이주 목적을 갖추지 못했다.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고 피고의 처분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병무청은 ‘특혜’는 없다는 입장이고, 배상문 측은 전례와 맞춘 ‘특례’를 호소했다. 미국프로골프(PGA)에서 뛰는 배상문은 2013년부터 미국 영주권을 얻어 병무청에서 국외여행 기간을 연장해 선수생활을 이어왔지만 지난해 12월 병무청이 국외여행 기간 연장을 불허한다고 통보하면서 문제가 됐고 법정 공방까지 이어진 것이다.

병무청은 1년의 기간 내에 통틀어 6개월 이상 국내에 체재하거나 3개월 이상 계속해 국내에 체재하는 경우에는 국내에서 계속 거주하는 것으로 봐서 국외여행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을 적용, 배상문의 국외여행 연장 요청을 불허했다. 또 배상문이 이미 지난 1월말까지 귀국하지 않아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된 상태로 국외여행 기간 연장은 더욱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배상문 측은 국내에 머문 것은 프로골프선수로서 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특수한 사정으로 실질적으로 미국에서 거주한 '국외 거주자'로 인정해 달라고 주장해왔다. 배상문 측은 축구선수 박주영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 병역혜택을 얻은 사례를 들며 다른 특례 선수와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골프가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만큼 배상문에게도 올림픽에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영을 앞둔 젊은이들의 꿈은 누구나 소중한데 배상문의 경우만 입영을 미뤄서 내년 올림픽에 출전시킨다면 형평성의 원칙이 더 훼손될 것”이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3년 전이었다면 배상문은 37세까지 국외여행 허가를 받아 사실상 병역면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12월 ‘박주영 파문’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201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 소속이던 박주영은 전 소속팀 AS모나코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모나코 왕실로부터 10년 체류자격을 얻어내 사실상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병역법 시행령 규정에 따르면 외국 영주권 또는 체류권을 얻을 경우 ‘국외이주사유 국외여행허가’가 나왔다. 그 조건에 맞으면 그 국가에서 1년 이상 거주한 경우 본인의 희망에 따라 37세까지 병역 연기가 가능했다.

당시 불법은 아니었지만 박주영은 병역 회피 의혹으로 국민과 축구팬의 법 정서를 거슬렀기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병역법 시행령도 그런 편법 사례를 막기 위해 개정됐다. 일부에서는 배상문이 ‘박주영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의 시범 케이스로 불운하게 적용됐다는 시각이 있지만 법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보완되는 것이기에 배상문 측은 억울함만을 호소할 수는 없을 터다.

국제대회 성적에 따른 스포츠선수들의 병역특례는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생겼다. '국위 선양'이란 정성적인 개념을 정해진 국제대회 성적으로 정량화해 엄격히 적용해오고 있다. 적용 범위는 예전 세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1990년 올림픽, 아시안게임으로 축소, 정비됐다. 2002 한일월드컵 4강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때는 '국위 선양' 범위를 특별히 넓혀 특별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2010년 원정 월드컵 첫 16강을 이룬 축구대표선수들은 처음엔 그 ‘단발 적용’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병역혜택을 얻지 못한 데 대해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올림픽 종목도, 아시안게임 종목도 아닌 비인기 분야의 아마추어 선수들은 병역특례를 위해 도전할 기회조차 잡을 수 없다. 도전 기회를 잡아도, 병예특례 적용 성적을 거두고도 팀 플레이에 따라 1분 1초를 뛰지 못해 환호 뒤에 입대해야 하는 단체 종목의 불운한 선수들도 있었다.

배상문 측도 어디까지나 합리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법에 호소한 것일 테지만 이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때다. 미국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조만간 귀국해 병역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한다. 특례를 위한 특혜 시비가 없는 공정한 스포츠 문화가 정착되는데 프로골퍼 배상문 사례가 단순한 법정 공방의 승패가 아니라 병역 문제에 있어서 비례와 평등원칙을 어떻게 제대로 적용할 것인지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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