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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유아인 "사람이 괴물되는 과정, 자연스럽지 않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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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유아인 "사람이 괴물되는 과정, 자연스럽지 않나" [인터뷰]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07.2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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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이상민 기자] '완득이' '깡철이' '성균관 스캔들'…. '삐딱한 청춘'의 대명사와도 같던 배우 유아인(29)이 얼굴빛을 싹 바꿨다. '베테랑'(8월5일 개봉)은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를 쫓는 서도철 형사(황정민)와 베테랑 광역 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범죄 오락 액션영화다. 조태오는 서도철의 추격에도 포위망을 빠져나가지만, 끝내 두 사람은 짜릿한 한판 승부를 벌인다. "작품에서 머리모양을 세팅해본 게 처음이다"는 유아인은 반듯하게 머리를 넘겨 세우고 값비싼 수트를 입고선 광기어린 폭력을 휘두르는 조태오가 됐다.  

◆ 데뷔 첫 악역으로 강렬한 변신, "류승완 감독에게 '촌스럽게 왜 그러시냐'고" 

데뷔 첫 악역 연기 외에도, '베테랑'은 유아인에게 새로운 경험을 여럿 안겼다. "이 정도로 화로 가득찬 캐릭터는 내게 처음이었다"는 유아인은 "처음 해 보는 걸음걸이에, 처음 내 보는 목소리까지 내며 화를 분출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자연스러움'이었다.

 

"태오는 잘못을 해도 혼내는 사람도 없고, 그의 죄를 대신 책임져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환경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괴물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참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는 거고. 물론 힘든 환경에서도 꿋꿋이 올곧게 자라나는 대단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자신이 한번 더 걸러 생각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밟아야 가능한 거니까. 태오처럼 별 생각 없이 흘러간다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거다."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종종 캐릭터에 이야기를 부여한다.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다"와 같은 내용의. 그러나 유아인은 "선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나쁜놈'을 뚜렷하게 그려내겠다는 것은 시나리오를 받은 순간부터였다.

"조태오에 대해 '나쁜놈'이라고 감독님께 말씀은 들었는데, 워낙 겁을 주셨다. 사실 거부감이 들 수 있는 역할이고, 모든 배우가 여성을 폭행하는 등 난폭한 캐릭터를 반기는 건 아닐테니까. 그래서 '회사 통하지 말고 나한테 바로 책 달라'고 했다. '좀 어렵지 않겠느냐' 같은 그런 소리 괜히 나올까봐서.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님께 바로 전화했다. '촌스럽게 왜 이러시냐'고, '하겠다'고 했다.(웃음)

류승완 감독님께 아주 아주 고맙다. 자신의 커리어 안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운명적인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제 30대에 진입하는 애쓰는 배우를 알아봐주셔서 너무 고맙다."

 

◆ 황정민 극찬한 디테일은 리얼리티의 산물

조태오의 광기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신 중 하나가 자신의 사무실 내에서 아역 배우를 상대로 펼쳤던 장면이다. 대사가 많지 않은 장면이라, 유아인은 시나리오의 대사 안에서 조태오가 어떻게 흥미로운 악역으로 표현될 수 있을지 톤을 쟀다. 이 때문에 '베테랑' 촬영에는 테이크가 보통 3번을 넘지 않았지만, 이 시퀀스에는 여러 번의 테이크를 거쳤다는 설명이다.

"'베테랑'의 촬영이 드라마 '밀회'와 겹쳤는데, 일반 미니시리즈 한 편 할 때보다 더 편안하고 여유가 있었다. '베테랑' 촬영은 속도감 있게 진행됐고, '밀회'는 감독님께서 워낙 완벽하게 하시는 스타일이라 B팀도 없는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었다." 

유아인에게 '베테랑' 촬영장은 제목 그대로 연기, 연출의 베테랑들이 모여 행복한 곳이었고, 그 역시도 이런 '베테랑'들이 함께 하고 싶어하는 젊은 배우다. 연기력뿐 아니라 자신의 색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손꼽히고, 김윤석 김희애 송강호 황정민 등 선배들과 빚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황정민은 유아인의 연기가 디테일이 살아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유아인이 평소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얼리티가 영향을 줬다. 

"섬세한 연기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리얼리티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드라마를 보면 어떤 때는 둘이 나란히 가만히 서서 긴 대사를 주고받기만 하는 상황이 있다. 몸을 움직이면 안 되는 상황에서 입만 벙긋하는 건데, 그 모습이 리얼리티는 아니지 않나. 좀더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몸짓이나 표정이 세공돼서, 예전보다는 디테일이 조금은 생긴 것 같다. 사실 처음엔 좀 고생했다. '왜 가만히 안 있냐'는 거지. '세 걸음 앞에 가서 서 있어' 이런 식인데 나는 카메라를 벗어나니까."

 

◆ "어린시절 연기 시작해 환경의 중요성 알아…'연예인병' 염두"

올해 우리 나이로 30세. 유아인은 사회 이슈에 대해 의견을 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때로 직접 기부도 행한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스타다. '베테랑'은 그가 평소 생각하는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은 무섭지만, 그 괴물인 태오도 불쌍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선택한 경우가 아니니까. 이건 '사도'(*유아인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도'의 개봉 또한 앞두고 있다)와도 비슷한데, 정해진 운명 안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유아인은 또한 이를 자신의 직업인 배우와도 비교했다. 유아인은 2003년 청소년 성장드라마 '반올림'으로 만 16세에 데뷔했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경우 어릴 때부터 일을 하며 과한 친절, 배려 속에 있었다. 스무살 때부터 '아인씨' 소리를 들었으니까. 내가 이런 배려 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 될까, '연예인 병'에 걸리게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이 생각을 놓치면 단번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거라고 여기면서. 환경과 그 안에서의 사람의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같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같이, 혹은 짐승같이 살게 될지 생각했다."

이는 익숙함에 젖는 대신 이를 경계해왔다는 말로 들렸다. 데뷔 10년차를 넘긴 유아인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나 연기에 여전히 날을 세우고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럽고 좋지만, 개인적 영역에는 불만 투성이다. 내 모습이 대단히 신선한지도 모르겠고. '베테랑'에서의 내 모습 중 딱 하나 만족하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은 다혜(유인영)를 대하며 했던 대사 하나다. 그 한 마디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취재후기] 평소 생각을 주저없이 표했던 유아인의 SNS 활동이 요즘 뜸하다.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지만 생각을 글로 표현하던 사람이 이를 하지 않을 때의 답답함이 있을 터였다. 관련해 묻자 유아인은 "SNS를 하라고 자꾸 부추기는 거냐"고 웃으면서도 "글은 다른 통로를 통해 항상 쓰고 있다"는 답을 내놨다. 유아인은 마음 맞는 아티스트들과 최근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만들어 활동 중이다. 관련해 잡지 편집장으로서 글을 쓰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계속해서 펼쳐나가고 있다. 유아인이 생각하는 '배우 아닌 삶'은 어떤 모습일까.

"배우를 안 했다면? 개판이었겠지. 이 직업이라도 가졌으니 절제하면서 사는 것 아니겠냐고 친구들과 그런 얘기를 한다. 어디서 객사했을 수도 있겠다 싶고, 그림을 전공했으니 계속 그렸을 수도 있고…. 운명이란 게 있으니 어떤 길을 택해도 결국은 정해진 길로 갈 거라 생각하는데, 지금 배우라는 직업을 택했듯 세상에 내 존재감을 드러내고 '나 좀 예뻐해주세요' 하는 모습으로 살지 않았을까."

사유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하나의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답을 할 줄 아는 유아인과의 인터뷰는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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