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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했던 슈퍼매치, 간절했던 서울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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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했던 슈퍼매치, 간절했던 서울의 승리
  • 강두원 기자
  • 승인 2014.04.27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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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69번째 K리그 슈퍼매치..서울 에스쿠데로 결승골, 5년 6개월만에 수원 원정 무승 탈출

[수원=스포츠Q 강두원 기자]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27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시즌 첫 K리그 슈퍼매치 현장에 내걸린 세월호 참사 추모 펼침막에 쓰여진 문구다.

FC서울이 그 간절함으로 승리를 거뒀다. 너무도 절박한 상황에서 최용수 감독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믿음 아래 선수들과 의기투합했고 끝내 5년 6개월 만에 수원 원정 무승 징크스를 끊어내며 부진 탈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수원 삼성 서정원 감독은 패인으로 "절실함이 부족했다"고 했다.

최용수 감독이 이끄는 서울은 이날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4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원정경기에서 후반 32분 세르히오 에스쿠데로의 결승골로 수원을 1-0으로 꺾고 2008년 12월부터 이어져 온 수원 원정 8경기 무승(1무7패)의 부진을 씻어냈다.

▲ [스포츠Q 노민규 기자] 서울 에스쿠데로(오른쪽)이 27일 수원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린 뒤 최용수 감독에 안겨 기쁨을 나누고 있다.

서울이 수원 원정에서 마지막으로 이겼던 것이 2008년 10월 29일이었으니 66개월만에 수원에서 맛본 승리다.

역대 69번째 슈퍼매치로 열린 이날 경기에서 서울은 지난 23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6차전에서 베이징 궈안에 승리를 거둬 16강 진출에 성공한 상승세를 K리그로 이어나가가기 위한 발판을 만들고자 했다.

서울은 K리그 클래식에서는 단 1승에 그치며 리그 11위에 처져 있었다. 최근 5경기에서 2무3패인데다가 최근 원정 3경기에서 1무2패를 거두고 있어 이번 수원 원정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서울은 수원을 상대로도 역대 K리그 통산 68전 22승16무30패로 열세에 몰려 있었고 수원 원정에서는 특히나 약했다.

반면 수원은 최근 5경기 3승2무에 홈에서 4경기 연속 무패(3승1무)를 달리고 있었고 염기훈과 산토스, 정대세의 컨디션이 절정에 올라 있었다.

◆ 서울, 꽁꽁 잠그다 아껴 놓은 '에스쿠데로 카드'로 승리

최용수 감독은 경기 전 “수원이 배기종, 로저 등 공격적인 카드를 아껴놓은 것 같다. 우리 역시 하파엘 코스타와 에스쿠데로 등을 교체 멤버에 올려놓았다”며 후반을 대비하는 전략의 일단을 내비쳤다.

서울은 베이징전에서 골을 터뜨린 윤주태와 함께 윤일록과 고요한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들은 전방부터 수원을 압박하며 상대 공격을 1차적으로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 감독은 경기 전 “수원이 최근 베스트 멤버가 부상에서 복귀하며 조화를 갖추면서 경기력이 안정된 것 같다”며 경계했다. 그래서인지 서울은 전반에는 수비적으로 나서며 간간이 긴 패스를 활용한 공격전개를 시도했다.

▲  [수원=스포츠Q 노민규 기자] 서울 에스쿠데로가 27일 수원과 슈퍼매치에서 후반 32분 결승골을 터뜨린 후 환호하고 있다.

전반 수원의 공세를 잘 막아낸 서울은 후반 아껴 놓았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반 45분 내내 머리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붕대를 감고 끊임없이 뛴 윤주태를 빼고 에스쿠데로를 후반 8분 만에 투입, 공격의 변화를 줬다.

윤주태의 체력이 떨어진 것을 간파한 최용수 감독이 몸싸움과 집중력이 좋은 에스쿠데로를 투입해 수원의 수비진을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묻어났다.

이런 최 감독의 선택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후반 32분 수원 진영 왼쪽 측면에서 공을 잡은 고명진이 수비 뒷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김치우에 패스를 내주자 김치우는 땅볼 크로스로 문전에 위치해 있던 에스쿠데로에 연결했다. 이를 받은 에스쿠데로는 지체없이 슛을 때렸고 공은 수비수 다리를 맞고 굴절되며 수원 수문장 정성룡이 손을 지나가는 골이 됐다.

다급해진 수원은 배기종과 로저, 조지훈을 연달아 투입하며 동점골을 노렸으나 집중력 있는 수비를 보여준 서울의 포백라인을 뚫어내지 못하며 5년 6개월 만에 서울를 상대로 홈경기 패배를 안았다.

▲  [수원=스포츠Q 노민규 기자] 역대 69번째 '슈퍼매치'가 열린 수원 월드컵경기장에는 2만 9318명의 관중이 몰려 세월호 참사를 추도해 응원이 없는 가운데서도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명승부를 즐겼다.

◆ 최용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서정원 '절심한이 부족했다'

지긋지긋한 수원 원정 무승 징크스를 끊어낸 최용수 감독은 경기 후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는 “힘든 승리를 거둬 기쁘다. 양팀 모두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쳤고 나 역시 90분 동안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했다”며 “우리 팀은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놀라운 집중력을 보였다. 수원의 파상공세를 잘 막아냈고 찾아온 찬스를 잘 살린 것이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밝혔다.

또 최 감독은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 선수들에게 미안할 정도지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 수원 원정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선수들의 의지가 반영됐고 끝까지 공과 사람을 놓치지 않는 모습에서 승리를 직감했다”고 말했다.

▲  [수원=스포츠Q 노민규 기자] 서울 에스쿠데로(가운데)가 27일 드리블하는 가운데 수원 정대세(오른쪽 아래)가 서울 김진규 가랑이 사이로 얼굴이 낀채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승골을 넣은 에스쿠데로에 대해서는 “에스쿠데로가 결정력이 높은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고명진과 김치우의 왼쪽 측면 돌파가 주효했고 마지막에 에스쿠데로가 놀라운 집중력을 보인 것이 골을 이끌어낸 계기가 아닌가 싶다”며 집중력에 대한 부분을 칭찬했다.

수원 서정원 감독은 경기에 패했음에도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는 “선수들이 끝까지 잘해줬고 전후반 모두 생각했던대로 측면 돌파는 물론 공격적인 모습 또한 잘 이뤄졌다. 다만 서울에 비해 절실함이 조금 부족했던 것이 패배의 원인인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수원은 이날 총 11개의 슛을 시도하며 경기의 주도권을 잡아나갔지만 4개의 슛에 그친 서울의 역습에 일격을 당하며 패배를 당했다.

이에 대해 서 감독은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 좌우로 흔드는 플레이를 많이 했지만 서울이 한 번의 역습을 통해 골을 넣었다. 이것이 축구라고 생각한다. 큰 경기에서 져서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우리 선수들이 하고자 한 모습을 보여준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수원=스포츠Q 노민규 기자] 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서울의 슈퍼매치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 현수막이 경기장 곳곳에 내걸려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 역대 가장 조용한 ‘슈퍼매치’, 새로운 관중 문화 형성하나

‘슈퍼매치’는 K리그 최고의 빅매치다. K리그 역대 최다 관중인 5만 5397명이 들어찼을 만큼 팬과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갖는 경기다. 그만큼 관중들의 응원과 환호 소리 역시 경기장이 떠나갈 정도다.

하지만 이날은 너무도 조용했다. 수원 구단과 수원 서포터스인 ‘프란테 트리콜로’와 서울의 서포터즈인 ‘수호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응원을 실시하지 않았고 경기장을 메아리치던 북소리와 응원가는 이날 들려오지 않았다.

K리그 관계자를 비롯해 수원과 서울 구단 관계자, 감독과 선수들 모두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뜨거운 함성은 없었지만 관중들은 어느 때보다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동안 응원소리에 묻혀 들을 수 없었던 박수와 환호, 탄식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는 듯 했다.

양팀의 경기력도 프리미어리그 못지 않았다.  수준 높은 패스 플레이와 치열한 공방전, 절묘한 개인기와 돌파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경기를 펼쳐 ‘슈퍼매치’의 품격을 그대로 관중들에 전달했다.

경기 전 비가 내렸음에도 이날 입장한 관중 수는 총 2만 9318명. 이들은 모두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며 경기를 즐겼고 조용한 가운데서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슈퍼매치’의 품격은 응원이 없이도 빛났다.

kdw0926@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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