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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에서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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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땅끝에서 봄을 기다리며
  • 이두영 편집위원
  • 승인 2014.02.05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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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허준' 촬영지 대죽리 해변의 노을
  봄에 국내최대 매화밭 장관

고향은 땅끝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한반도의 최남단 
해남반도, 그 중에서도
맨 꼬리인 화원반도
그 너머는
땅끝이었다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
바다 같고, 하늘 같았지만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후략)

 고 박성룡 시인(1932~2002)은 <고향은 땅끝>이라는 작품에서 생의 절박함을 땅끝을 빌려 노래했습니다. 그분의 시정이 오늘에도 다시 생각나는 것 생의 맹목적성과 불투명성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기계처럼 일하며 청춘을 보내고 나서 신체에 심각한 호르몬 변화가 생길 무렵에 ‘지금까지 뭘 위해 살았지?’ ‘사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어야만 하지?’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일까?’ 라는 의문에 한번쯤은 빠지게 되지요. 사는 것은 으레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괜히 지난 세월이 억울해서 투정 한번 해보는 거지요. 그럴 때 잠시 어디론가 떠나 ‘나아갈 길’을 가늠해 보는 것,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는 아닐까요.

끝은 시작이기도 합니다. 국토의 막내 ‘해남 땅끝’은 절망의 끝에서도 희망을 보는 곳입니다. 바다를 향해 말갈기처럼 뻗은 달마산(489m)의 지세가 땅끝 사자봉(156m)에 이르러 숨을 고르고 다도해를 향해 포효를 합니다. 땅끝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도 동동 떠 있는 섬들과 바다를 향해 환호성을 지릅니다.

 

▲ 대죽리 해변의 노을
▲ 드라마 '허준'이 촬영됐던 대죽리해변.
▲ 대죽리해변은 바지락, 게 같은 해물이 잘 잡혀 여름에 갯벌체험장으로 인기가 많답니다.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향을 찾았던 지난 설 명절에 땅끝으로 향했습니다. 우항리 공룡화석지 근처의 해남군 황산면 사무소 소재지(남리리)에서 땅끝으로 연결되는 77번 국도 주변은 제가 자주 가는 드라이브 코스입니다. 번듯한 공장이나 떼돈 들여 만든 ‘파크’니 ‘랜드’니 하는 위락시설과, 온천 따위가 없는 시골스러운 풍경들이 저는 좋습니다.

만약 잠시 목욕으로 피로를 풀고 싶으면 남리의 5일장터 인근으로 가면 됩니다. 입장료가 4천원인 목욕탕이 있습니다.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주민들에게 물어보는 수고는 해야 합니다.

남리에서 화산면을 거쳐 송지면 땅끝으로 이어지는 도로 주변에는 농사를 짓거나, 혹은 고기를 잡고 전복, 김 따위를 양식해서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20~30년 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중에는 광활한 갈대숲에 수십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이 몰려 장관을 이루는 고천암호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두모패총과 윤두서 고택, 염전체험장(송지면 가차리) 등이 있습니다. 고천암호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배경이 된 유명한 곳이라 큰 이정표가 있지만 다른 곳은 미리 지도를 본 다음에 가야 합니다. 윤두서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으로 세상을 뜨기 2년 전쯤에 해남에 정착했다고 합니다. 그는 자화상이 국보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시서화를 비롯해 음악, 경제, 지리 등에 능했습니다.

저의 이번 목적지는 사실 송지면 대죽리 해변이었습니다. 땅끝마을 부근이지요. 마을 앞에 여러 섬들이 보이는데, 바로 앞으로 보이는 두 개의 섬 중 오른쪽의 섬이 대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죽도’라고 한 데서 마을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마을에서 섬까지는 1km 정도인데 썰물 때면 바닥이 드러나 ‘신비의 바닷길 체험’ 명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닷길이 열리면 낙지, 꽃게, 바지락 등이 푸짐하게 나온다는데 겨울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섬까지 걸으며 갯것들을 캐고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조개잡이 체험이 활발히 벌어진답니다.

대죽리 해변은 2000년 인기 드라마였던 ‘허준’의 촬영지로도 유명하지요. 허준의 제주도 유배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습니다. 밀려드는 병자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치료행위를 말라는 상부의 명을 어기며 생명들을 구하던 허준의 인간적인 모습은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지요. 당시 지어진 허준의 초막은 이제 너무 낡아 철거되고 배를 댈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죽도의 오른쪽 뒤로 보이는 곳이 송지면 어란리인데 이곳에는 ‘어란진 성지’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우수영 울돌목에서 왜적선 133척을 물살을 이용해 물리쳤던 이순신 장군은 격전(명량대첩)이 벌어지기 전에 배 12척을 수습해 어란진에 숨어 있다가 전초전 격으로 왜선 8척을 퇴패시켰습니다. 왜선은 조선 수군 패잔병들만 어란진으로 쫓겨가 숨어 있는 줄로 알고 덤볐다가 이순신의 함포 공격에 기겁을 하며 땅끝마을 앞을 지나 도망치기에 급급했습니다.

 

▲ 땅끝마을 산책로.
▲ 땅끝마을
▲ 땅끝전망대

 

▲ 땅끝전망대에서 보이는 마을 전경. 갈두리라는 지명이 '땅끝마을'이라는 행정지명으로 바뀌었습니다. 

  

▲ 땅끝마을 선착장. 이곳에서 보길도 등의 섬으로 정기여객선이 떠납니다.

 

해남은 남도 자연문화답사 1번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연을 보면 소맥산맥의 지맥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땅끝까지 뻗치며 서산대사의 유물과 일지암이 있는 두륜산, 봄날에 철쭉꽃이 만발하는 흑석산, 미황사를 품은 달마산 등 산봉우리들을 돌출시켰습니다. 지질학적으로는, 중생대 백악기(약 1억3500만~6500만년 전)에 활발했던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퇴적층이 많습니다.

공룡이 무리지어 서식했던 흔적도 남아 있으며 ‘우항리 공룡화석지’가 대표적입니다. 9,000만년 전 쯤 우항리는 진도와 목포까지 닿는 호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사암,역암,셰일층 등이 쌓여 생긴 해식절벽이 5km 정도 발달해 있습니다. 퇴적층으로 이뤄진 이런 절벽을 육식공룡, 초식공룡, 익룡, 물갈퀴 달린 새 등이 올라타서 밝고 다닌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공룡이 호숫가를 뛰고 날아다녔을 것을 상상하면 재미있지요? 우항리에 있는 <해남 공룡박물관>에 가서 자료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공룡 해골에 기죽지 마시구요.

해남의 인물들로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을 이끌고 구국의 선봉에 섰던 서산대사(휴정)를 비롯해 어부사시사를 지은 고산 윤선도, 대흥사 일지암에서 차 문화의 중흥을 이끈 초의선사, 무소유 정신을 일깨운 법정스님, 17세기 말 조선 풍속화의 거두였던 공재 윤두서 등이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혼탁한 사회상을 ‘미암일기’로 고발한 호남 사림의 거두 미암 유희춘과 율곡 이이의 존경을 받았던 학자인 석천 임억령 등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지요.

해남에는 시인이 많습니다. 설령 시를 쓰지 않아도 해남 사람들은 다들 시인입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며 허무를 노래했던 황지우, 향토색 짙은 서정시를 썼던 노향림, ‘참깨를 털면서’ 등의 작품으로 삶을 애찬한 박준태, 문학상을 거부하면서까지 시인의 자존심을 지킨 윤금초, 50년대의 황폐한 시기를 문학으로 견딘 시인 이동주, 군사정권 시절에 현실참여적인 시를 쓰다가 지리산에서 발을 헛디뎌 생을 마감한 고정희, 유신체제에 거세게 저항했던 김남주 등이 있습니다. 박성룡 시인은 저랑 같은 신문사에 계셨기에 가끔 뵈었는데, 지금은 그분의 시구를 보며 회상할 수밖에 없군요.

 

▲ 대흥사 일주문

 

▲ 대흥사 입구 장춘리 숲길. 숲이 하도 깊어서 봄이 길어서 장춘리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 대흥사
▲ 대흥사

 

▲ 달마산 미황사

 

▲ 우항리 공룡화석지
▲ 우항리 공룡화석지 전시실에 공룡발자국들이 보존돼 있습니다.
▲ 우항리 공룡화석지
▲ 우항리 공룡화석지 퇴적층. 이곳에도 셰일층이 있다니 흥미롭지요? 현재 미국은 풍부한 셰일가스 덕분에 에너지 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우항리 공룡화석지

 

▲ 우항리 공룡화석지 옆의 금호호. 옛날에는 이곳까지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바닷길을 따라 들어왔다고 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제발 인터넷 댓글에서 전라도를 비하하는 홍어나 경상도를 욕하는 개쌍도 따위의 험악한 말로 서로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은,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다 못하고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 고천암호의 갈대숲. 혹시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걱정되지 않냐구요? 사람에게는 감염을 일으키지 않는다니 안심하고 둘러보시길.

 

 

올겨울은 지난해와 달리 추위가 심하지 않습니다. 남녘의 대지에는 벌써 파릇한 싹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제가 성급해서일까요? 봄이 기다려집니다. 보리밭, 마늘밭, 유채밭과 동백꽃, 매화꽃 향기가 벌써 코끝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새봄에 해남으로 여행 가시면 꼭 2일 이상 머물 계획을 하십시오. 꼭 가볼 해남의 명소를 짚어 드립니다.

1. 먼저 땅끝마을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구경합니다. 땅끝마을 선창 부근에는 산책로 바로 앞 바다에 바위가 있는데 매미를 닮아서 ‘맴섬’이라고 합니다. 그 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이 장관인데, 1년에 10월과 2월에만 그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현지에 물었더니 다음 주 14~19일이 바로 그 시기랍니다. 사진 애호가라면 날짜를 기억하심이... 땅끝마을에는 숙소와 음식점이 즐비합니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배낭여행족이라면 해남읍에서 군내버스를 타면 땅끝마을과 대죽리까지 40~50분 걸립니다(하루 14회 운행).

2. 그 다음 명소는 달마산입니다. 병풍처럼 늘어선 바위가 멀리서 보면 정말 볼만합니다. 황금법당이란 별칭이 붙은 미황사 법당에서 진도 앞에 떨어지는 노을을 구경하는 것도 가슴 벅찬 기쁨일 것입니다. 달마산은 등산 코스로도 훌륭합니다. 전망이 좋습니다. 미황사에서 차 한 잔 얻어 마시며 남도의 들판에서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을 맡아도 좋겠습니다.

3. 해남 하면 떠오르는 곳이 두륜산과 대흥사이지요. 저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 두륜산 정상 부근의 구름다리를 건너며 다리가 후들거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등산하는 것이 힘들다면 대흥사에서 천천히 30분 정도만 걸어 올라가면 초의선사가 차나무를 가꿨던 일지암이 있습니다. 대흥사 부근에는 케이블카 타는 곳도 있으니 온가족이 함께 타고 올라가 남도의 산세와 수제비 조각처럼 섬들이 늘어선 바다를 감상해도 좋겠지요.

4. 우항리 공룡 화석지는 자녀와의 동행을 적극 추천합니다. 공룡발자국들을 보호하는 전시실이 따로 있고, 호수 주변에 패총과 퇴적암 등이 늘어서 있습니다. 걷기 운동하는 기분으로 산책 데크를 따라 걸으면 좋습니다. 한 나절 정도는 시간 여유를 두고 구경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까지 갔다 오는 데 한참 걸립니다.

5. 국내에서 가장 큰 평지 매화밭(보해매실농원)은 해남군 산이면 예정리에 있습니다. 해마다 4월 중순쯤이면 구경하고 사진 찍는 사람들로 꽃놀이판이 벌어집니다. 운치가 좋아서 영화 ‘너는 내 운명’ ‘연애소설’ 등을 여기서 찍었지요. 초록이 양탄자처럼 깔린 매화밭에서 멋진 추억을 남겨 보시길 바랍니다.

자가용 자동차로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목포IC로 나와 진도 방면으로 가다가 명량대첩 장소 부근인 해남군 문내면 사무소 소재지를 지납니다. 남리리에 이르면 해남읍 방면과 고천암호수, 대죽리, 땅끝 방면으로 갈라집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문내면에서 4차선 도로를 타고 가다가 황산면 남리에 이르러 땅끝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땅끝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가 나옵니다. 쭉 가면 고천암호, 대죽리, 송호리 해수욕장, 땅끝이 나옵니다.

 

▲ 남도의 푸른 보리밭

 

▲ 보해매실농원으로 시간 내서 소풍 한 번 가자구요.  동백꽃도 무리지어 피어 보기 좋습니다.

 

▲ 보해매실농원

 

▲ 보해매실농원의 매화꽃과 동백꽃

 

맛집 하나 소개합니다. 만약 문내면 사무소 소재지(현지인들은 다들 ‘우수영’이라고 부릅니다.)를 지나거든 ‘생태한마리’라는 허름한 음식점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메뉴가 여러 가지 있지만 아귀탕 한번 음미해보면 ‘이래서 여행은 전라도로 가야 한다니까’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가격은 시골 면사무소 9급 공무원급인데 맛은 국무총리급입니다. 우수영 장터 삼거리에서 200~300m 큰길로 내려가면 오른쪽에 있습니다. 푸근한 경상도 말씨를 쓰는 아주머니가 반겨 줄 것입니다.

 

▲ <생태한마리>의 아귀찜.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 있습니다. 찾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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