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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초록마녀' 박혜나의 봄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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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초록마녀' 박혜나의 봄나들이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03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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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뮤지컬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를 통해 최정상의 뮤지컬 디바로 올라선 박혜나가 6일 대학로에서 무료공연 ‘디오르골 미니 콘서트’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최근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OST 한국어 버전 ‘다잊어’의 스튜디오 영상이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돼 화제를 지폈다. 지난해 11월 22일 이후 6개월째 엘파바로 살아온 그는 일부 주역급 캐스팅 교체 와중에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박혜나는 지상 최고의 작품을 끝낸 뒤 새롭고 다양한 ‘미션’ 도전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초록색 봄기운이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2일 오후 ‘위키드’ 공연장인 잠실 샤롯데씨어터 맞은편 호반의 한 레스토랑에서 뮤지컬 배우 박혜나(32)를 만났다. 무대에서 소름끼치는 가창력과 연기를 뿜어내는 것과 달리 고개 숙인 수선화마냥 차분했다.

◆ 6일 대학로 무료공연 ‘디오르골 미니 콘서트’서 뮤지컬 팝 재즈 탱고 열창

오롯이 ‘엘파바의 엘파바에 의한 엘파바를 위한’ 나날을 보내는 그가 잠시 외출을 한다. 오는 6일 오후 5시 대학로 디오르골 커피하우스에서 무료로 열리는 ‘디오르골 미니 콘서트 프롤로그1’의 주인공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 공연은 향우 인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문화를 공유하는 자리로 지속될 예정이다.

“기획하신 대표님과는 2006년 데뷔작 ‘미스터 마우스’부터 인연을 맺어온 사이에요. 이익보다는 공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한다는 좋은 취지에 공감해 나서게 된 거죠. 비용을 지불하고 접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향유하는 문화를 저 역시 관객의 입장에서 꿈꾸니까요. 뮤지컬 배우이지만 개인 박혜나로서 부르고 싶은 노래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엮어서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요.”

50분에 걸친 무대에서 그는 재즈넘버 ‘Fly to The Moon’, ‘위키드’의 대표곡 ‘중력을 넘어서(Defying Gravity)’, 탱고밴드 코아모러스와 함께하는 탱고곡 ‘Yosoy Maria’ 등 8곡을 140여 명의 관객에게 들려준다.

 

◆ 초록마녀 엘파바로 살아온 6개월...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영광

데뷔 후 ‘영웅을 기다리며’ ‘남한산성’ ‘달콤한 나의 도시’ ‘파리의 연인’ ‘싱글즈’ ‘심야식당’ 등 주로 중소극장 뮤지컬에서 착실히 기량을 쌓았다. 연기 타이밍이 좋고, 시원하게 고음을 뽑아내는 배우로 기억됐다. 모든 걸 내려놓고 즐기기 시작했던 시기이자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던 무렵 ‘위키드’의 주역으로 당당히 에머럴드 시티에 입성했다.

“원래는 오디션을 못 볼 뻔했어요. 당시 ‘심야식당’에 더블 캐스팅으로도 출연하던 중이었고 후속작이 결정돼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정상 원 캐스팅으로 변경이 되면서 후속작 출연이 불발됐고, 그래서 ‘위키드’ 오디션을 치르게 된 거죠.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된 셈이죠.”

앙상블 오디션부터 차근차근 참여하면서 5차 오디션까지 끝냈고 엘파바에 낙점됐다. 과연 자신이 엘파바와 닮은 게 있을까 특유의 자신 없음과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오리지널 연출가는 “불완전하고 자신감 없지만 그 안에는 큰 에너지를 품은 사람이 바로 엘파바”라며 엘파바의 내면과 가장 맞닿아 있는 그를 적극 밀었다.

▲ 엘파바 역으로 분장한 박혜나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소설 ‘사악한 서쪽마녀의 삶과 시간’을 토대로 한 이 뮤지컬은 소외되고 불완전한 주인공들의 편견과 좌절을 조명한다.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서쪽의 초록마녀 엘파바는 정말 사악했을까라는 의문을 풀면서 “과연 다르다는 건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전 자기 할 일만 하고 살아가는 소시민이에요. 엘파바처럼 용감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죠.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서 완성해나감으로써 리더가 된다고.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엘파바와 같은 리더가 될 수 있으므로 겁내거나 주저하거나 회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엘파바와 만나면서 그녀의 소신과 용감함, 실천력을 느꼈고 닮고 싶어졌어요. 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든 공연이죠.”

매회 첫 공연 느낌이다. 엘파바가 부르는 노래들의 난이도는 높고 모든 넘버가 절창이다. 쉬어가는 대목이 없어 ‘기가 쪽쪽 빨리는’ 느낌이다. 오케스트라의 엄청난 소리를 뚫어낼 만큼 큰 발성과 가창을 요구한다. 동선 하나, 대사의 토씨 하나만 바뀌어도 음악과 어긋나버리기에 무수히 많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 처음엔 이러한 규칙에 얽매여 살았으나 이젠 익숙해져 자유로워졌다.

“체력관리가 관건이죠. 컨디션이 아무리 나빠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서는 큰 실수 없이 해내도록 하는 힘은 공연 전 2~3개월에 걸쳐 이뤄진 연습이고요. 몸이 기억하도록 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동료들의 힘이 커요. 호흡을 맞추며 서로 기를 주고받으니까요. 엘파바의 친구이자 적수인 글린다 역 김보경은 동갑내기인데 너무 귀엽고 친구라서 편하죠. 정선아는 감정이 풍부하고 에너지 넘치는 배우라 의지하게 되고요. 둘 다 소중한 파트너였어요.”

 

◆ ‘겨울왕국’ OST ‘렛잇고’ 잊을 수 없는 추억

지난 겨울 화제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OST ‘렛 잇 고(Let It Go)’의 한국어 더빙 버전 ‘다 잊어’에서 폭발적인 성량을 과시했다. ‘다 잊어’를 스튜디오에서 열창하는 영상이 디즈니뮤직의 공식 채널인 디즈니뮤직베보를 통해 유튜브 등에 최근 공개돼 화제를 뿌렸다.

“앨범 출시 후 한참 지난 요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있는데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아이들이 ‘다 잊어’를 부르고 즐겨 듣는다 하더라고요. 녹음 당시 일정이 촉박해서 가사를 입에 붙게 하고, 캐릭터의 감정을 내면으로 녹여내기에 충분치 않았는 데도 결과물에 애정을 보내주시니 저로선 운 좋고 기쁜 일이죠. 큰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 '겨울왕국' OST '렛잇고' 스튜디오 녹음영상

박혜나는 ‘위키드’의 엘파바를 연기한 유명 가수 겸 뮤지컬배우 이디나 멘젤이 10년이 흘러 ‘렛잇고’를 불렀는데 자신은 ‘위키드’와 ‘렛잇고’를 동시에 소화했으니 감사할 따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작게는 재능기부가 될 수도 있겠죠. 연기는 ‘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선 제 생각이 올바라야 하니까 무대와 일상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실천하며 살아야겠죠.”

◆ 자신감 없던 소녀 대중 휘어잡는 스타로...안전지향은 No!

레코드 수집광이던 아버지와 나이 터울 많은 언니들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음악을 많이 들었다. 소심하고 자신감 없던 소녀였지만 장기자랑 시간만 되면 늘 앞에 나서 노래를 불렀다. 여고시절 교내 축제에서 박정현의 ‘PS I Love You’를 불렀는데 열광적 반응을 보며 자신의 노래실력을 그제야 깨달았다. 별다른 목표 없이 지내던 그가 연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건 재수시절 우연히 접한 뮤지컬 아카데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구소영 음악감독을 마나 음악과 뮤지컬을 배웠고 이후 노래와 연기를 좀 더 배우고자 국민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공무원인 아버지로부터 ‘직업으로는 공무원이 최고다’란 말을 듣고 자라서였는지 20대 후반까지도 무대에 꼭 서야겠단 절박함이 없었어요. 시간을 허비한 부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있죠.(웃음) ‘무엇을 이뤄야지’보다 ‘내가 위치한 곳에서 즐겁게 최선을 다하자’란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그래서 많은 기회를 준 뮤지컬배우라는 직업에 감사함을 느끼죠.”

 

그간 무수히 많은 오디션에서 탈락하는 와중에도 덤덤했다. 새로운 캐릭터를 알게 되고 노래를 배울 수 있었기에 오히려 좋았다. “내가 그 역에 맞지 않았을 뿐이야”라고 툭툭 털어냈다. 자신의 노래와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그러한 덤덤함을 선사했다. “너무나 완벽한 작품을 하고 있기에 앞으로 어떤 작품이 와도 두렵지 않다”는 박혜나는 “소심하긴 하지만 안전지향은 아니기에 새로운 것,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슬쩍 꺼내보였다.

[취재후기] 인터뷰 내내 조곤조곤한 말투로 막히는 데 없이 술술이었다. 객석을 휘어잡는 무대 위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자신 없는 표현을 반복해서 쏟아냈으나 엘파바 못지않은, 실로 강인함을 지니고 있음을 그녀는 알까 모를까.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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