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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공간 '더 텍사스 프로젝트' 운영하는 사진작가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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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공간 '더 텍사스 프로젝트' 운영하는 사진작가 김규식
  • 박미례 객원기자
  • 승인 2014.05.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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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박미례 객원기자] 1년 여만에 만난 김규식(41) 작가는 언제나 그렇듯 그라인더로 곱게 갈아 느긋하게 내린 원두커피를 내놓았다. 작가와 닮은 은은한 향이 방안에 넘쳐흘렀다. 그간의 근황을 잠깐 나눈 뒤 단도직입적으로 사진작가에 입문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열 세 살 때 펜탁스의 'MX'라는 카메라를 선물받았는데 그때부터 계속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전공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죠. 친구가 대학 사진과를 지망하기에 별 생각 없이 따라서 공부한 거죠. 실기시험도 열 세 살 때 찍었던 필름을 동네 사진관에서 인화해서 치렀어요. 다들 흑백사진을 직접 인화해서 왔더군요. 그때 흑백사진을 처음 본 거예요. 그렇게 우연히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사진만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 김규식 작가

학교 수업 뿐만 아니라 현장 경험은 그의 작품세계를 살찌웠다. 24세부터 잡지 ‘GEO' 디렉터인 다큐멘터리 작가 밑에서 도제식으로 일하게 된 그는 6년 넘게 말 그대로 ’개고생‘을 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 후 한동안 잡지 ’샘이 깊은 물'과 'GEO'에서 작업을 했다.

“안타깝게도 제가 일하는 곳마다 망하더라고요. 심지어 IMF 이후로 다큐멘터리 업계도 무너졌어요. 물론 아직도 열심히 이 분야에서 작업하는 좋은 작가 분들이 있지만요. 그 이후로 엄청 갈등했죠.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제 작업에 영향을 주었어요. 스승을 여러 분 만나면서 작업 방향도 많이 바뀌었고요.”

▲ 'Man goes into the blanket'

 

▲ 'Man in the skirt'

작가의 작품에서는 유년기 시절 혹은 기억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유독 느껴진다. 일상에 내재한 폭력성을 담은 전쟁놀이 장난감 모형의 재현작 ‘Pla-Wars’ 시리즈를 비롯해 어린 시절 엄마의 치마폭에 숨어든 소년의 평화로운 잔상을 보여주는 ‘A-Man‘ 시리즈까지. 상반되는 이미지 같으나 묘하게 연관성이 표현된다.

특히 작가의 예전 작업과 달리 ‘A-Man‘ 연작은 꿈처럼 평화롭다. 짱짱한 햇살 아래 갓 말린 뽀송뽀송한 이불의 감촉과 엄마의 치맛자락 아래로 숨어든 어린 소년의 단잠처럼. 손톱 만큼의 괴로움과 고민 없이 “엄마!” 하고 부르면 언제든 어리광과 투정을 받아줄 듯 그렇게 충만한 어린 시절이 사진 안에서 빛나고 있다. 작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부모님 슬하의 어린 시절이 왜 그토록 좋은 기억이었을까?”라는 물음의 기억을 찾아가다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특별히 유년시절을 작품으로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어릴 적 경험이 제게 영향을 준 건 부정할 수 없죠. ‘Pla-Wars’와 ‘A-Man‘ 도 결국 당시의 경험에서 비롯된 거니까요. 두 작품은 연결고리도 없고 표현방법도 너무 달라서 다른 작업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Pla-Wars’'는 폭력에 대한 익숙함이 깔려 있다면 'A-Man'은 유년기의 성적 체험과 기억을 통해 저의 남성성에 대한 고찰을 시도해본 거예요.”

▲ 'Man in the wet blanket'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고민하다보면 스타일이 자주 변하는데 굳이 하나의 스타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주로 주변이나 자신의 관심사에서 ‘스타일’을 찾는다고 한다.

“제 관심사가 워낙 들쭉날쭉해서 보는 분들이 일관성을 찾기가 어렵다고 해요. 하지만 어떤 맥락으로 제 작품이 읽혀지는 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자연스레‘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진심이 느껴지면 되는 거죠.”

작가는 늘 영화와 음악 이야기를 곁들인다. 작업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영감을 주는, 삶의 자양분과 같은 대상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정글의 괴물(Macunaima)'과 '새들의 노래(Bird song)'이다.

“'정글의 괴물‘은 조아퀸 페드로 드 안드레이드 감독의 작품인데 군사독재 시절인 1960년대에 검열을 피하려고 작품 전반이 알레고리로 이뤄진 영화예요. 웃기고 비꼬고 엉뚱한데 아주 특별하죠. 너무 재밌어요. '새들의 노래’는 알버트 세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는데 동방박사와 아기 예수를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감독은 영화의 내러티브와 관계가 없다고 하는데 아기 예수를 찾아가는 배우의 대사는 피곤에 지쳐 실제 말인지 영화 속 대사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성경에 나오는 경건함은 전혀 없고 인간이 보여주는 우유부단함과 욕심, 무모함이 잘 묘사되어 있죠.”

◆ 젊은 예술가들 위한 전시 실험공간 '더 텍사스 프로젝트' 운영

현재 김 작가는‘더 텍사스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몇 년째 빈 건물로 남아 있던 일명 '텍사스'(집창촌 미아리 25번지)를 건물주의 허락을 받아 지난해 8월부터 예술가들이 스스로 기획한 전시와 공연을 여는 실험공간이다.

“더 텍사스 프로젝트'는 전시 공간 이름입니다. 미아리 집창촌에 위치한 이 전시장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죠. 소개로 알게 된 건물주를 설득해서 만들었는데 공간뿐만 아니라 시설 투자도 해주셔서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어요. 3년 후 재개발이 이뤄질 동네라 한시적으로 운영하는데 문턱 높은 대안공간이나 상업성을 추구하는 갤러리에 맞지 않는 작가들을 위한 일종의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합니다”

3년 동안 지역에 밀착해 들어감으로써 어느새 동네 주민들과 친분이 쌓이고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오는 5월 30일부터는‘더 텍사스 프로젝트’의 새 전시가 열린다. 특별한 장소가 아닌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를 원하며 운영자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현장에서 사진 촬영 중인 김작가의 모습

“딱히 이루고 싶은 건 없어요. 성을 천천히 쌓고 있는 과정인데 쌓았다가 부순 뒤 처음부터 다시 쌓는 거 같아요. 끝이 언제인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쌓는 거죠. 이런 이유로 한번 했던 작업은 다시 이어서 하진 않아요. 새로운 작업은 아마 11월에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까지 기다리는 즐거움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미리 어떤 작업인지 말하지 않을래요. 하하.”

작가와 얼마 전 관람했던 다양성영화 ‘인사이드 르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196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무일푼의 포크 뮤지션 르윈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예술가로 버티며 살아내는 것 그리고 유명과 무명의 간극이 보여주는 처연한 인생사를 두고 누군가는 말한다. ‘과연 예술만을 팔아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고.

“예술가의 삶이란 영화 속 르윈처럼 답이 안 나오기도 하겠죠. 하지만 예술은 작품을 팔기 위한 노동이 아니잖아요. 자신의 의지로 해내는 신성한 행위인 거죠.”

인터뷰 내내 그리고 마지막 말을 하는 동안 작가의 눈은 한 마리 야수의 눈빛처럼 빛났다.

◆ 김규식 작가는?

홍익대 사진대학원 수료. 2009년 ‘Pla-Wars‘ 트렁크갤러리 개인전 등 국내외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현재 5월에 열릴 ‘더 미아리 텍사스 프로젝트’ 전시를 준비 중이며 11월 사진공간 배다리에서 열릴 개인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본주의와 동시대가 원하는 것들에 길들여질까봐 끝임 없이 고민하며 작업한다. 최근 다시 둥지를 튼 경기도 파주의 작업실에 암실을 꾸며 흑백사진 작업도 느리게 진행하고 있다.

redfootba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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