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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대의 40대 반란 '공연가수 도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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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대의 40대 반란 '공연가수 도현아'
  • 박영웅기자
  • 승인 2014.05.0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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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강원도 강릉에서 국악을 전공하던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는 평생 국악인의 길을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집안의 사정은 그녀의 꿈을 붙잡았다. 시련에 빠진 그녀는 22세가 되던 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도현아라는 이름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재즈 가수가 되고 싶어서였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주변 환경은 성인가요를 요구했다. 어린 마음에 성인가요가 싫다는 스트레스로 목소리를 잃기도 했다. 하지만 도현아는 스승 심수봉을 만나 목소리를 되찾고 지금은 홍대의 40대 문화를 전파하는 전도사로 다시 태어났다.

▲ 가수 도현아

[스포츠Q 박영웅기자] 젊음의 거리 홍대. 홍대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음악과 문화를 대변하는 곳이다. 이런 젊은 문화의 중심지에 도전장을 내민 40대 한 여가수가 있다. 바로 도현아다. 그는 성인가요와 스탠딩 팝, 재즈를 무기로 이곳 홍대의 중심에서 오늘도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새로운 틈새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뜨거운 반응 홍대의 40대 반란

지난해 7월 정규 3집 앨범 '호접몽'을 발표한 도현아는 올해 2월부터 본격적인 홍대 공연에 나섰다. 처음에는 작은 클럽을 빌려 40~50대만을 위한 공연을 진행하겠다는 작은 취지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커졌다.

"호접몽 음반을 내고 기획사를 만났죠. 기획사에다가 방송도 중요하지만 난 공연을 하고 싶다. 팝과 재즈 음악을 하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이후 기획사에서 그럼 홍대에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겁도 났지만 전 과감하게 시도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어요."

입소문을 탄 도현아의 공연은 삽시간에 홍대를 넘어 서울 전역과 지방까지 알려지며 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히 1시간 20분간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그의 스탠팅 팝 공연은 젊은이들에게 가려져 있던 40~50대 팬들의 마음을 충분히 빼앗아 가는데 성공했다. 공연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공연은 점점 관객으로 채워져 나갔다. 40~50대 팬카페까지 만들어진 도현아는 이미 그들의 스타였다.

▲ 가수 도현아

◆지금과는 다른 힘들었던 음악사 '구세주' 심수봉

도현아의 인생사는 지금과는 다른 굴곡의 연속이었다. 대학 시절까지 국악을 전공했던 도현아는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서 어쩔 수 없이 국악을 포기해야 했다. 이후부터는 생존을 위한 삶뿐이었다. 결국 22세 때 생계를 위해 서울로 상경한 도현아는 국악이 아닌 가수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순탄치 않았다. 바로 음악적 색깔을 놓고 소속사와 대립하면서 시작된 갈등 때문이었다.

"전 재즈나 팝 쪽의 음악을 하려고 무척 애를 썼어요. 이런 이유로 음악적 장르 때문에 한 때 방황을 많이 했죠. 사실 지금이야 성인가요를 사랑하지만, 당시는 어린 마음에 더욱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음악적 방황을 해오던 도현아. 결국 일이 터졌다. 2002년도 모 소속사에서 성인가요를 준비하던 그녀는 색이 맞지 않는 음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공황장애를 겪었다. 이 여파로 도현아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음악을 포기하려고 했죠. 그냥 연기자로 전향하자는 제의도 왔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저를 잡아 주신 것이 심수봉 선생님이셨죠."

목소리가 나오지 않던 도현아를 잡아준 것은 심수봉이었다. 심수봉은 도현아와 짧은 인연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사를 듣고 난 후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목소리를 되찾게 해주기 위해 무려 4년간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발성부터 가요, 재즈, 팝을 부르는 노하우까지 '인간 도현아'를 '가수 도현아'로 다시 태어나게 해줬다.

"심수봉 선생님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다고 봐요. 저를 친 동생처럼 아끼고 모든 음악적 부분 하나하나를 전수해 주셨기 때문이죠."

▲ 가수 도현아

◆음악적 색깔을 넘은 홍대의 40대 문화기수가 되고 싶어요

심수봉에게 음악적 부분을 전수받은 도현아는 목소리를 되찾았고 음악적 역량 또한 이전보다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예전 성인가요가 아닌 무작정 재즈나 팝만을 하겠다던 좁았던 생각도 변했다. 그녀는 이제 진정한 뮤지션으로서의 '필'을 느끼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나하나 배우고 나니 음악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예전에 성인가요를 배제하고 팝이나 재즈만을 고집하던 제가 얼마나 작았는지도 알게 됐고요. 진정한 음악가라면 음악 그 자체를 사랑해야 하는데 말이죠. 조용필 선배님을 봐도 알 수 있듯이요."

앞으로 도현아의 꿈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그녀는 공연을 통해 40~50대를 대변하는 문화의 기수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꿈이다. 이 꿈을 위해 도현아는 개인을 버렸고 현재도 노력하고 있다.

"홍대 공연을 하고 큰 반응을 얻으면서 꿈이 생기더라고요. 바로 공연을 통한 40~50대 문화를 이끄는 기수 같은 역할을 하는 도현아가 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죠. 제가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는데 전 이 시간을 빼면 모두 연습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어요. 팬들을 위해서죠. 결혼도 전혀 계획이 없습니다. 음악에만 올인 하겠습니다."

▲ 가수 도현아

마지막으로 도현아는 꿈을 위해 뛰는 자신의 처지를 간단한 문구로 대신하면 인터뷰를 마쳤다.

"지금 저는 가수로서는 유치원을 졸업한 초등학교 1학년이라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배우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대학에 가겠죠(웃음)."

[취재후기] 인디문화의 중심지 홍대에서 공연으로 경쟁하는 40대 여가수 도현아는 나이를 넘은 말 그대로 뮤지션이었다. 그녀의 성공은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그녀의 열정만큼은 이미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dxhero@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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