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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 안양스카이어머니배구단, 스파이크 '팡팡' 스트레스 '훌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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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리고 스포츠] (1) 안양스카이어머니배구단, 스파이크 '팡팡' 스트레스 '훌훌'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5.0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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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달라졌어요'...배구에 빠진 엄마 선수들

요즘은 보는 스포츠의 시대에서 즐기는 스포츠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남녀의 구분이 없기도 하다. 우리 주변에는 야구를 하는 여자, 농구를 즐기는 여자 등 과거에만 해도 남자 종목으로 여겨졌던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 종목도 다양하다. 구기 종목을 비롯해 격투기와 익스트림스포츠까지 각양각색이다. 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여풍 현상이 스포츠계라고 예외일 수 없다. 스포츠Q는 시리즈 ‘여자 그리고 스포츠’를 통해 스포츠를 몸소 즐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한국 스포츠의 저변 확대와 균형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므로. [편집자 주]

[300자 Tip!]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안양실내체육관에 정말로 강한 어머니, 아니 활력 넘치는 엄마들이 있다. 그들은 강스파이크를 날리며 스트레스를 털어버린다. 엎어지며 리시브를 해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열혈 엄마들은 1주일에 세 번 있는 신체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소를 찾았다. 몸이 가벼워지자 본업인 주부 역할도 더욱 잘 해내고 있다. 전국 최고를 자부하고 있는 안양스카이어머니배구단을 찾았다.

[안양=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이리와서 좀 도와줘요!”

안양실내체육관 보조경기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선수 3명이 도움을 요청했다. 체육관 구석에 있는 봉을 가져다 달라는 것. 사진기자와 함께 봉을 들고 코트 중앙으로 날랐다. 이들은 움푹 패인 홈에 봉을 꽂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네트를 펼치고 설치하기 시작했다. 코트가 완성됐다.

▲ 채순득 감독의 지도 아래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고 있다.

리더로 보이는 이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발목 운동을 시작으로 워밍업에 들어갔다. 가볍게 몸을 풀고 나니 공을 가져다놓았다. 훈련과정을 가만히 지켜봤다. ‘어머니배구단이 하면 얼마나 할까, 단순히 공으로 즐기는 정도이겠지’라는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그들은 확실한 배구 훈련을 하고 있었다.

스카이어머니배구단 채순득(54) 감독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오늘은 노는 정도다. 센 것도 아니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 스파이크 팡팡! 스트레스 훌훌 날려버려

“우리 갱년기잖아요. 공 때리며 스트레스 다 날려버리죠.”

권연순(50) 회원은 채 감독이 ‘전국 최고의 공격수’라고 평가할 정도의 수준급 선수다. 그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격렬한 운동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코트로 돌아왔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 안양스카이어머니배구단은 부상자가 많아 "올해는 성적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엔돌핀이 돈다. 배구를 접하고 나서 인생이 즐겁다”며 “활력소가 생긴다. 배구를 하며 온갖 스트레스 다 풀고 간다”고 웃어보였다.

채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팀의 최고령자인 수비수 이명숙(56) 회원은 “슬라이딩으로 공을 살려낼 때 쾌감을 느낀다”고 배구의 매력을 설명했다. 같은 포지션의 최영란 회원 역시 “배구공이 어디로 튈지 몰라 그 재미가 쏠쏠하다. 헬스처럼 정적인 운동은 재미가 없다”고 거들었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얻은 건 당연한 결과다.

최영란 회원은 “매일 아팠다. 배구 시작하고 체력이 좋아지니 이제 등산쯤은 거뜬하다”고 전했다. 이해강(48) 회원 또한 “근육이 생겼다. 몸매가 탄탄해졌다”며 “신나게 땀을 흘리고 나면 1주일이 개운하다”고 말했다. 이어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협동심, 사회성까지 배울 수 있다”고 배구에 빠져드는 매력을 설명했다.

◆ 배구하고 살림이 더 잘 되던데요?

배구에 푹 빠진 이들이 혹시나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을까. 하나같이 “그건 모르는 소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재현(46) 총무는 1주일에 세 번 있는 배구 훈련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장 총무는 “내가 유일하게 하는 취미생활이다. 배구하며 내가 밝아지니 집안 분위기도 더 좋다”며 “혹시라도 남편에게 미안해질까 살림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이해강, 최영란, 권연순, 장재현, 이명숙 회원. 다섯은 팀을 이끄는 주축이다.

권연순 회원 또한 “배구하려면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야한다. 그 덕에 아들과 남편에게도 더 부지런해졌다”고 답했다.

‘날쌘돌이’ 이명숙 회원은 “원래도 화목하긴했다”고 전제하며 “내가 배구하고 더 화목해진 것 같은데요?”라고 화들짝 웃어보였다.

“살림이요? 오히려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더 확실히 해놓을걸요?”

채 감독 역시 같은 반응이다. 배구를 통해 신바람나는 삶을 살면서 그들은 주부로서의 역할도 더 잘해내고 있었다. 배구는 단순한 공놀이 이상이었다.

◆ 신혜인 단장, “엄마들 설 곳이 없는 존재”

▲ 신혜인 단장은 “엄마들은 사랑받고 싶은 존재”라며 '배구하는 엄마'들을 치켜세웠다.

한창 훈련이 진행되고 있을 때 신혜인 단장이 체육관을 들어섰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1년 대한배구협회가 주최한 배구인의 밤 행사를 꼽았다. 신 단장은 “단체상을 수상하러 호텔 행사장에 갔는데 배구하는 분들이 스카이배구단을 다 알더라”며 당시 를 떠올렸다. 이어 “사실 나는 하는 일이 없다. 우리 감독 선생님과 선수들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선수단에게 공을 돌렸다.

신 단장은 건전한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찾는 엄마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단장직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교육자, 한국멘토링협회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답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되새겼다.

그는 “엄마들은 설 곳이 없다. 긴 세월동안 남편과 자식만을 위해 살아 자기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그는 “엄마들도 여자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존재”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신 단장은 이 세상 엄마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언급하다가 잠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나는 운동을 못하지만 살아가며 느꼈을 많은 아픔들을 신체 활동으로 승화시키는 선수들이 멋져보인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선수들은 유니폼과 공 일부 이외에 어떤 후원도 받지 못하고 운동한다”며 “도움을 줄 분들이나 기업이 어서 빨리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을 희망했다.

◆ “모두 채 감독님 덕분이랍니다”

▲ 현대건설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채순득 감독은 재능 기부 형식으로 어머니배구단을 지도하고 있다.

채순득 감독은 1980년대 여자배구 실업팀 현대건설의 전성기를 이끈 멤버다. 현재 그는 ‘교통비 정도’ 받으며 재능 기부 형식으로 어머니배구단을 지도하고 있다.

채 감독은 안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 7월 제1회 안양시장기 어머니배구대회에 출전한 학부모 회원들을 보고 팀을 꾸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채 감독의 물밑작업으로 2007년 10월 정식으로 창단한 스카이배구단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우승컵을 수집하며 전국 최강팀으로 거듭났다.

채 감독에게 단기간에 좋은 성적이 난 비결을 묻자 “신기하게도 신체 조건들이 참 좋더라. 선수들을 잘 만났다”며 “선수들이 하는 것도 잘 하지만 배구를 보는 눈, 흐름을 읽는 눈도 수준급”이라며 회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장재현 총무는 “회비 걷어 레슨비 조금 드리는 정도다. 역량이 대단하신 분인데 보답을 못해드려 늘 아쉽다”며 감독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이어 “배구의 전문성은 물론이고 자상하고 인정 많은 리더”라고 사령탑을 치켜세웠다.

전국에서 유명한 어머니배구단이 됐지만 정상을 지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채 감독은 “주공격수 권연순을 비롯해 부상자가 너무 많다”며 “올해만큼은 성적을 내기보다는 즐겁게 운동하는데 의의를 두겠다”고 밝혔다.

■ 안양 스카이어머니배구단은

▲ 안양스카이어머니배구단 팀원들이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혜인 단장, 채순득 감독을 필두로 권연순 박민숙 장재현 이명숙 신재원 황정희 송기숙 홍미경 최영란 이해강 신재형 이덕임 이정란 이미희 박수진 등의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2007년 10월 창단했다. 스카이는 ‘가장 높은, 최고’를 의미한다. 2009년 제9회 국민생활체육 경기도 배구연합회장배 대회 우승부터 지난해 제36회 국무총리배 전국 9인제 배구대회 우승까지 크고 작은 대회에서 총 23번의 우승컵을 들었다. 뛰어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대회 참가비를 비롯한 여러 비용을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로 나섰고 자율방범대, 청소년 선도위원, 어머니폴리스, 빵 굽기 봉사활동(양로원·고아원) 등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 9인제 배구는

9인제 배구는 정식 배구인 6인제와 달리 로테이션을 돌지 않는다. 9인제 경기는 6인제가 정식 배구경기로 정착한 이후 주로 취미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이 하는 경기가 됐다.

[취재 후기] 깔깔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신 단장은 “우리 선수들 한 미모 하죠?”라고 자신 있게 물었다. 몸을 날리며 어려운 공들을 끝내 리시브하는 50세의 엄마들은 정말로 강해보였고 아름다웠다. 그렇게 밝았던 엄마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떤 취재보다도 유쾌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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