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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아니스트 김선욱 "5년 전보다 많이 단단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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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아니스트 김선욱 "5년 전보다 많이 단단해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2.0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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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지난해 말 2년에 걸쳐 매진열풍을 일으키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완주를 끝낸 김선욱(26)이 올해 역시 '진격의 피아니스트'로 질주한다. 3월 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런던심포니 내한공연에서 협연하고, 진은숙 피아노협주곡 음반을 초여름 발매한다. 9월에는 국내 리사이틀을 연다. 바흐, 프랑크, 슈만의 곡들로 꾸린다. 영국 런던에 체류 중인 젊은 거장은 30대가 되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스포츠Q 용원중기자]

- 서울신문이 클래식 전문가 10인을 설문조사해 발표한 ‘2014년 가장 기대되는 공연’으로 3월 런던심포니 내한공연(협연 김선욱)이 2위에 뽑혔다. “젊은 거장들의 만남”이라고 기대가 크다. 이번 공연에 대한 느낌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자타공인 영국 최고의 오케스트라이고, 다니엘 하딩은 젊은 지휘자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훌륭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함께 연주할 수 있게 돼 무척 설레고 기쁘다. 런던 심포니와는 존 엘리엇 가디너 경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런던에서 협연한 적이 있다. 런던 심포니의 소리가 무엇인지, 지휘자마다 달라지는 그들의 순발력을 유심히 관찰하려고 한다. 한국에는 런던 심포니가 2012년 게르기예프, 2013년 하이팅크와 내한공연을 했는데 올해는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갈 것으로 기대한다."

- 과거 선욱씨는 “다니엘 하딩을 너무 좋아하고 함께 연주하고 싶은 지휘자”로 지목했다. 그의 어떤 점이 좋은지, 이번 협연에서 어떤 부분이 기대되는지도 들려 달라.

"2006년에 다니엘 하딩과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내한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후반부에 브람스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당시 학교에 다니면서 지휘에 관심이 많았던 때라 오케스트라보다는 지휘자를 더 유심히 봤는데 다니엘 하딩의 지휘는 그때도 무척이나 세련됐으며 수십명의 단원들을 하나로 이끄는 장악력과 모두를 집중하게 만드는 흡입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그 공연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영국에 와서 여러 신문 리뷰를 읽고 있는데 하딩에 관한 반응이 어떤지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다니엘 하딩의 조합이 요즘 좋았다고 생각한다."

- 협연할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강렬하고 폭발적인 에너지, 무겁고 음산한 느낌이 강한 레퍼토리다. 연주하기에 까다로운 곡으로도 유명하다.

"맞다. 기술적으로 제일 어려운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다. 굉장히 사캐스틱(sarcastic 냉소적)하며 여러가지 캐릭터가 유기적으로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부분들이 가볍지 않고 깊다."

- 2번의 경우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선욱씨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연주는 어떤 것이었나. 또 3월 공연에서 어떻게 해석할 생각인가.

"이 곡을 2011년에 처음 연주했다. 그 당시 시중에 나와있던 음반을 닥치는 대로 들었는데 각 연주자의 개성이 뚜렷해서 그런지 내 입맛에 맞는 연주를 찾기 힘들었다. 그만큼 내 자신의 색깔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에는 형식미와 절제미가 제일 중요한 포인트였다면 프로코피에프를 연주할 때는 약간 고삐가 풀린다. 폭발할 때는 폭발하고 절규할 때는 목놓아 절규한다. 2011년 5월 마크 엘더 & 할레 오케스트라, 2011년 6월 정명훈 &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협연을 관심 있게 들었다."

- 9월 12일 국내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를 끝내고 하는 리사이틀이라 기대가 크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어떻게 수직 상승했을까 하는. 이번 리사이틀 레퍼토리에 대한 구상이 궁금하다.

"2012~13년 LG아트센터에서 치른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가 오피셜(official)한 시리즈였다면 작년부터 바하를 프라이비트(private)하게 시리즈로 연주하고 있다. 작년에는 파르티타 1번을 꾸준히 독주회의 첫 곡으로 골랐다면 올해는 파르티타 2번을 독주회의 첫 레퍼토리로 계속 넣고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과는 다른 의미로 내 자신을 위한 연주다. 그리고 고전적이긴 하나 약간은 종교적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중 하나인 프랑크 전주곡, 코랄과 푸가가 있다. 로맨틱(romantic) 작곡가의 곡이라면 쇼팽 에튜드밖에 몰랐던 유년기에 내게 감동을 준 슈만 아베그변주곡, 마지막으로 그의 소나타 1번을 골랐다."

 

 

-2년에 걸친 베토벤 전곡 연주가 끝난지 2개월이 지났다. 여유를 갖고 그 여정을 되돌아볼 수 있을 듯하다.

"2년간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가 음악가로서 많은 경험을 주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베토벤 이외의 많은 곡을 연습하고 연주했다. 연주회마다 연주가 끝나면 그 감회와 기분을 빨리 잊어버리려 노력한다. 계속 그 감정에 휩쓸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부해야 할 곡들이 산더미고, 지금 내게 주어진 능력과 시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더 잘하려 노력해야 한다."

- 또다시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고 싶나. 그리고 그 이유는.

"30대 이후에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싶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배우고 싶어했다. 베토벤의 소나타들은 슈베르트에게 마법의 악보와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피아노 소나타에 많은 애정을 쏟았고 베토벤을 닮으려고, 넘어서려 노력했다."

- 영국 왕립음악원 지휘과를 졸업했기에 ‘지휘자 김선욱’의 커리어가 언제쯤 본격적으로 시작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지휘자로서의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 피아니스트로서 주어진 연주를 지금 아니면 할 수 없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로서 최선을 다해 해 볼 생각이다."

- 요즘 연주자로서 집중적으로 고민하거나 성찰하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에서 런던으로 이주한 2008년은 학교의 굴레에 벗어난 순간이다. 곡을 스스로 해석해야만 했고 많은 연주들을 혼자 준비해야만 했다. 만 5년이 지난 지금, 아직 한참 멀었지만 5년 전보다는 많이 단단해지고 스스로에 확신이 생겼다. 내 직업은 평생 연구하고 성찰해야만 한다. 이제 겨우 5년 지났다."

- 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어떻게 런던 라이프를 즐기고 있나?

"매우 평범하다. 연습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중간중간 차도 마시고 운동도 한다. 아내(2012년 결혼)와 장보는 것도 좋아한다. 올 봄에 첫 아이가 태어나는데 아빠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웃음)"

- 위에 언급한 국내에서의 두 연주일정 외에 올해 역점을 두는 국내외 공연이나 레코딩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진은숙 피아노 협주곡을 지난 1월 서울에서 녹음했고 아마 늦은 봄 아니면 이른 여름에 발매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8월에 웹사이트(www.sunwookkim.com)를 만들었는데 연주 일정이나 뉴스들을 볼 수 있으니 자주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스포츠Q 창간을 축하드린다. 스포츠와 문화에 관한 좋은 뉴스를 기대하겠다."

[취재후기] 3년 8개월 전,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런던 트라팔가 스퀘어 인근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던 당시 그는 눈이 살아 있는 어린 청년이었다. 하지만 내면의 단단한 바위 덩어리가 느껴져 "이건 뭐지?" 그랬다. 이제는 연주자로서, 인간으로서 한없이 커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섭게 성장하는 사람을 보는 일, 행복하면서도 슬프다.  

goolis@sportsq.co.kr

 

▲오는 3월 런던심포니 내한공연에서 국내 청중과 만나는 김선욱 [사진제공=빈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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