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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의 우울과 불안 해소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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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의 우울과 불안 해소하기
  • 하혜평 편집위원
  • 승인 2014.05.09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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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자, 나를 잊을 때까지. 살자, 모든 것을 정확히 기억할 때까지

[스포츠Q 하헤령 편집위원] 지난 3주 동안 참극이 우리 모두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배와 함께 우리의 일상이, 아니 우리의 희망이 수장되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평생 식탐을 잃어본 적 없는 나같은 인간도 ‘식음전폐’라는 옛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실감할 정도로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데 무슨 맛집 생각이 떠오르겠는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주위 모두 불안과 극심한 슬픔을 호소하고 있다.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모두가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정신과의사나 심리상담자들은 혼자 있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 같이 밥먹고, 같이 청소하고, 같이 일상을 공유하라고. 그런데 이럴 때 하루를 오롯이 같이 있을 사람도 많지 않고 특히 프리랜서나 자영업, 직상태의 싱글들은 더더욱 힘들다고 토로한다. 각자 자기의 삶에서 오는 외로움과 우울감이 있었는데 비극을 만나 더더욱 증폭된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잠시 괜찮다가 집에 오면 또 혼자라 다시 슬퍼지고, 사실 누구를 만나도 다들 같은 감정을 토로하니 더 증폭되어 돌아오기 일쑤다.

▲ 봄의 초록이 우거진 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일단 책부터 찾기 시작하는 나는 우울증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책들을 읽었다. 그 책들은 운동을 권하고 있었다. 많은 임상 결과들에서 운동은 중증이든 경증이든 우울증 치료에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가벼운 우울증은 운동만으로도 치료가 되기 때문에 초기 치료에 꼭 권한다고 한다. 또한 불안 증상에도 운동이 효과가 좋으며 만성 불안보다는 급성 불안이 운동에 더 잘 반응한다고 한다.('한없이 외로운 불안-오동재 저' 참조)

하지만 일주일에 4회 이상 2시간씩 유산소와 근육운동을 하며 신체단련과 우울증을 달래던 나조차 격한 운동을 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요즘이었다. 이러다 돌 것 같다, 아니 이미 돌기 시작했나?구분이 안되기 시작하던 때, 그냥 물병 하나 든채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TV뉴스가 쉴 새 없이 나오는 모니터가 즐비하고, 내 심사와 상관 없는 최신 가요가 쿵쾅거리는 헬스클럽말고, 봄의 초록이 우거진 공원과 근처 산으로 나가 천천히 걸었다.

▲ 서대문구의 안산자락 길

무심히 모든 것을 놓고 걸어도 안전한 길들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최근 친구가 알려준 서대문구의 안산자락 길은 그런 조건에 딱 맞는 좋은 길이다. 서대문구를 아우르는 비교적 낮고 넓은 산자락에 ‘순환형 무장애 숲길’이라는 컨셉트로 휠체어나 유모차를 밀면서도 걸을 수 있는 데크를 조성해 놓았다. 편안하게 걸으면서도 인왕산 북한산,서울시내를 곁으로 볼 수 있는 탁트인 전망이 일품인 길이었다.

메타세콰이어, 자작나무, 소나무 등 보기드믈 게 키 큰 나무들도 많아 경이로움과 신선함을 느낄 수 있지만 그 산세의 완만함과 사람을 감싸주는 듯한 작은 나무들로 편안함이 더욱 돋보이는 길이다. 또 살던 동네 뒷산이라 10년간 아침마다 걷던 남산도 이런 걷기에 적합한 오솔길과 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이 많아 좋다. 편안한 둘레길을 찾아 이 감정을 극복해야지 하는 생각도 없이 그냥 무심히 걷는다.

걸음모양과 발바닥의 감각만 느끼면서 그저 내딛는 다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며 걷는 것이다. 가끔 눈을 돌려 봄햇살에 빛나는 초록을 바라보며, 그들이 내뿜는 생명력을 맡으며. 그렇게 3시간쯤 걷고 들어오면 힘겹지만 오늘 하루를 살아낼 기운이 조금 난다. 다음날 또 그런 감정에 빠지면 다시 나가 묵묵히 걷는다. 혼자 버겁다면 마음 맞는 친구와 걷는다. 그 주위 누군가도 힘들어하고 있다고 들으면 그에게도 청해 같이 걷는다. 요란한 사교 없이 그냥 같이 걷기!

그러다 조금 더 기운을 차렸다 싶으면 그전에 참 좋아했던, 서울의 오래된 동네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천천히 걸으며 사람사는 냄새와 역사를 음미하는 골목순례에도 나설 것이다. 그런 동네를 걷다가 시장이나 허름한 음식점을 만나면 잃었던 식욕이 불쑥 솟아나기를 희망한다.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극복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걸으면서 이 슬픔과 분노를 건강하게 기억하기 위해.

amiblu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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