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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3) 용인대 농구 '엄친딸들' 공부도 농구도 1등, 비전은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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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3) 용인대 농구 '엄친딸들' 공부도 농구도 1등, 비전은 A+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8.24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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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MBC배 2연패·올해 대학리그 9전 전승…대부분 학업도 우수, 과수석으로 성적장학금까지 수령

[200자 Tip!] 용인대는 한국체육대와 한국 체육을 이끄는 한 축이다. 용인대라고 하면 보통 유도나 태권도, 검도 등만을 생각하지만 축구팀과 여자농구팀까지 다양한 종목이 있다. 이 가운데 용인대의 여자농구팀은 사실상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여자대학농구를 선도하고 있다. 단순히 성적이 좋은 강팀이 아니라 미국, 유럽처럼 공부와 운동을 함께 하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용인=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여자대학농구는 1973년 모스크바 유니버시아드에서 동메달을 딸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어왔던 WKBL의 전신인 실업농구에 의해 고사됐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명지대, 한양대, 경기대, 숙명여대 등이 있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곧바로 실업팀으로 가면서 잇따라 해체의 길을 걸었다.

▲ 이젠 여자 대학농구가 더이상 프로 드래프트에서 떨어지면 가는 곳이 아니다. 지금은 대학 4년을 충실히 보낸 뒤 WKBL에 도전하겠다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 용인대는 여자 대학농구의 최강으로 자리하고 있다.

대학팀이 해체된 것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실업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여고팀들이 크게 줄어들면서 선수층이 얇아져 고교 선수들의 실력이 WKBL의 기대를 쫓아가지 못한다. 드래프트를 통해 프로에 가도 곧바로 주전으로 뛸 수 없게 됐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여자 대학농구의 부활이다. 고졸 선수들이 곧바로 프로에 가더라도 잘해야 2년, 길면 3~4년 동안 주전으로 뛸 수 없으니 차라리 대학 4년 동안 공부하고 기량을 쌓으면서 프로로 가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동안 WKBL 드래프트에서 떨어지면 대학을 간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프로에 도전하겠다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부터 대학리그가 본격적으로 출범, 경기수도 늘어났기 때문에 기량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여자 대학농구가 고교와 프로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고 한다면 용인대는 그 역할에 가장 충실한 팀이다. 대학들이 학생 선수들에 대한 학습권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용인대는 이미 1999년 창단 때부터 공부를 혹독(?)하게 시키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여대농구 부활을 이끄는 선두주자인 셈이다.

▲ 용인대 이종애 코치(왼쪽)가 선수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종애 코치도 현재 용인대 2학년생으로 지난해까지 선수로 뛰었다가 규정이 바뀌면서 지도자로만 활동하고 있다.

◆ 공부를 하니 전술이해도도 '쑥', 생각하는 농구를 하다

용인 삼성에서 뛰다가 은퇴 뒤 공부를 위해 용인대에 입학한 이종애(40) 코치는 지난해까지 플레잉코치였다가 규정이 바뀌면서 지금은 지도자에만 집중하고 있다. 2학년생이기도 한 이종애 코치는 김성은(39) 감독과 함께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종애 코치는 "농구만 하다보니 공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역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김성은 감독의 권유도 있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영양학이나 스포츠 심리학을 배우면서 나름 지도자 수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용인대 동문인 김성은 감독도 "현재 고등학교 팀이 많이 없어지는 추세에서 성적을 내는 것에만 집중을 하다보니 기본기를 쌓는 것이 아니라 경기에 이기는 법만 가르친다. 그래서 여고 졸업 선수들이 WBKL에 적응을 못한다. 고등학교 때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받아도 WKBL에서는 벤치만 지킨다"며 "선수들도 배워야 한다. 용인대가 선수들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성은 감독과 이종애 코치는 선수들이 공부를 하니 전술이해도가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또 선수들이 공부하는데 재미를 들여 스스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김성은 감독과 이종애 코치는 모든 경기를 영상물로 만들어 보관한다. 선수들이 경기 영상을 보면서 분석하고 공부를 하라는 의미다. 선수들이 생각하는 농구를 한다는 것은 전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 용인대 이종애 코치(왼쪽)와 김성은 감독(왼쪽에서 두번째)가 연습경기 직전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 성적 장학금 받는 선수들, 여자 대학농구를 평정하다

전원 스포츠레저학과에 재학중인 선수들도 강의시간에 배웠던 것과 훈련을 접목시키니 그만큼 농구에 대해 눈을 떴다고 입을 모은다. 한 1학년 선수는 "공부를 하니까 그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공부했던 것보다 대학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웃었다.

광주 유니버시아드 여자대표팀에서도 활약한 졸업반 조은정(23)은 "드래프트에서 떨어졌을 때만 해도 앞이 캄캄했었는데 용인대에 들어온 후 4년 동안 기량을 갈고 닦아서 다시 프로에 도전해보자는 의지가 생겼다"며 "전에는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공부를 하니 농구에 눈이 뜨인 것 같다. 감독님이나 코치님이 얘기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듣게 됐다"고 말했다.

또 박현영(22·3학년)은 '장학소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대학 입학 후 단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 적이 없다. 보통 학교 운동부 학생이라면 전액 장학금을 받고 뛰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용인대 여자농구팀은 지원이 약해 4명만 장학금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용인대의 12명 모든 선수들이 성적 장학금을 받는다. 이 가운데 박현영은 이번 학기에도 올 A+를 받아 과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박현영은 "대학에 오니 그동안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느낀다. 차라리 대학에 와서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며 "농구도 공부도 이제 막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하지 않겠나. 프로에 가고 싶지만 드래프트에 뽑히지 않아도 공부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 용인대 선수들이 대학리그 재개를 앞두고 가진 연습경기 직전 러닝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용인대는 여자 대학농구 최강으로 군림하면서도 과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에도 열심이다.

◆ 초··고 12년보다 더 값진 대학 4년, 다양한 진로를 위하여

김성은 감독은 "어차피 모든 선수들이 프로에서 뛸 수 없고 또 프로에서 은퇴한 모든 농구인들이 계속 농구계에 종사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그러나 공부를 하게 되면 그만큼 진로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래서 여자 대학농구팀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일부러 점수를 더 주는 등의 특혜가 있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성적 장학금이 걸려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는 훈련을 하루 한 시간으로 줄여 선수들이 도서관에서 책만 파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용인대 선수들의 목표는 프로 드래프트에만 있지 않다. 학교에서 올 A+를 받고 과 수석을 하는 우수한 학생들이라 굳이 프로 진출에 목을 매진 않는다. 대학원에 갈 수도 있고 교사 자격증이 나오기 때문에 임용고시를 볼 수도 있다. 프로팀들의 프런트나 스포츠 마케팅에도 진출할 수 있다.

이렇게 공부와 훈련을 동시에 하면서도 용인대 경기력은 전국 최강이다. 지난달 MBC배 전국대학대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대학리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대학리그는 시범경기로 치러졌기 때문에 사실상 첫 대회인 올해 챔피언에 오르겠다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학리그 전반기까지 9전 전승을 거두며 2위 광주대에 3경기나 앞서 있다.

용인대의 최대 라이벌은 수원대다. 경기도 라이벌이어서 맞대결이 벌어질 때면 고려대-연세대의 경기보다 더한 팽팽한 기운이 감돈다. 지난해 전국체전 지역 대표 선발전에서는 이겼지만 올해는 지는 바람에 선수들은 저마다 설욕의지가 크다. 이 때문에 대학리그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크다.

▲ 용인대 선수들은 4년 동안 기량을 발전시키겠다는 동기 부여, 확실하게 공부를 해서 자신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겠다는 각오로 똘똘 뭉쳐있다. 이들은 WKBL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지 못해 용인대에서 패자부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개척자다.

◆ 용인대의 성공, 여자 대학농구의 선입견을 바꾼다

WKBL도 대학 4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이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위성우 춘천 우리은행 감독은 "고교를 막 졸업한 어린 선수들이 묵묵히 훈련하면서 기량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이를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학 졸업 선수들은 성숙한 마인드를 갖고 있어 정신력이 뛰어나다. 앞으로는 이런 선수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대졸 선수 선호론자다.

대졸 선수가 WKBL 드래프트에 뽑히는 경우가 많아지니 대학 진학을 보는 눈도 달라졌다. 김성은 감독은 "요즘에는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프로 드래프트를 내는 대신 진학에 대한 문의를 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며 "여대농구가 활성화되면 서울 지역 대학에도 팀이 생길 것으로 본다. 서울에 대학팀이 생기면 당장 용인대나 수원대 등 지방 소재 대학에는 타격이 되겠지만 여자농구 발전에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얼른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이제 캠퍼스도 2학기 개강을 맞았다. 대학농구리그 후반기 일정이 시작되고 다음달에는 선수 드래프트도 열린다. 용인대는 나머지 후반기 경기에서도 모두 이겨 전승 우승을 꿈꾼다. 여기에 드래프트 등 취업에서도 성공을 기다리고 있다.

[취재후기] 그동안 여자 대학농구를 두고 프로에 진출하지 못한 선수들의 차선책 정도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그 생각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이젠 프로팀 사이에서도 대학 출신 선수들을 선호하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여고 농구부를 방문하면 WKBL 드래프트 대신 용인대, 수원대, 광주대 등 대학 입학을 고려하고 있다는 선수들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이 프로 진출에 실패했거나 프로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가는 곳이 아니라 고등학교와 프로를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다면 조금 더 한국 여자농구의 뼈대가 튼튼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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