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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신·강일구, 스타 출신 감독이 쓰는 '네버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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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신·강일구, 스타 출신 감독이 쓰는 '네버엔딩 스토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11 1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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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코리아리그 플레이오프서 격돌...화려한 공격의 두산-탄탄한 수비의 인천도시공사 명승부

[300자 Tip!] 사회를 살아가며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친분을 맺지만 학교나 같은 분야에서 오랫동안 선후배 관계를 맺어왔다면 이보다 더 특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매우 특별한 선후배가 지금은 남자 실업 핸드볼팀 사령탑이 됐다. 한국 핸드볼의 대표적인 골게터와 골키퍼로 각각 화려한 명성을 날렸던 윤경신(41) 두산 감독과 강일구(38) 인천도시공사 감독이 그들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남자 핸드볼의 공격과 수비를 도맡은 두 스타는 이제 지도자가 됐다. 형, 동생 사이로 그 누구보다도 절친한 두 선후배 감독은 챔피언결정전 진출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어 '창과 방패'의 명승부를 펼쳤다. 그 승자는 누구였을까.

▲ 한국 핸드볼의 대표적인 골게터와 골키퍼로 각각 화려한 명성을 날렸던 윤경신 두산 감독(왼쪽)과 강일구 인천도시공사 감독이 1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 결전을 앞두고 선의 경쟁을 다짐하며 악수하고 있다.

[인천=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노민규 기자] "아이구, 죄송합니다. 강 감독님." "어휴, 무슨 말씀이세요. 형님. 축하드립니다."

두산과 인천도시공사의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윤경신 감독과 강일구 감독은 라커룸 앞에서 서로 덕담을 주고 받았다.

코트에서는 화끈한 경기가 이어졌지만 두산이 21-19로 이기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것이 확정된 뒤에는 다시 절친한 선후배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두 스타출신 감독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재가 많다. 신체조건부터 지내온 환경, 자신이 지냈던 팀까지 상반된 모습이다.

일단 윤경신 감독은 203cm의 장신. 강 감독은 작은 키는 아니지만 윤 감독보다 20cm나 작다.

▲ 윤경신 두산 감독이 1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인천도시공사와 남자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경신 감독은 현역시절 독일로 진출, VfL 굼머스바흐와 함부르크 SV 등에서 뛴 뒤 2008년 한국으로 돌아와 최강 두산의 공격을 맡았다. 두산은 한국 남자 핸드볼의 절대 강자다.

윤 감독은 현역 시절 공격수 출신답게 화끈한 공격을 자랑한다. 두산 윤시열은 이번 대회에서 모두 85골을 넣어 남자부 득점 1위에 올랐고 이재우 역시 49개의 도움을 기록해 도움 1위를 차지했다.

윤경신 감독은 화끈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감독 데뷔 첫 시즌인 지난해 두산을 단숨에 챔피언 자리에 올려놓으며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명장이 되기 힘들다는 통성을 불식시켰다.

강일구 감독도 한국 핸드볼의 특급 스타다. 1996년 태릉선수촌에 입촌한 뒤 17년 동안 국가대표 골키퍼 자리를 도맡아왔다. 하지만 포지션 때문에 윤경신 감독의 화려함에 다소 묻힌 것이 사실이다. 강 감독이 맡고 있는 인천도시공사도 두산에 비하면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고 특출난 선수도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초보 감독'인 강일구 감독이 선택한 것은 탄탄한 수비였다.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수비를 집중 지도한 강 감독은 데뷔 시즌인 올해 인천도시공사를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다. 2011년부터 시작한 코리아리그에서 인천도시공사가 3위 이상을 차지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강일구 인천도시공사 감독이 11일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두산과 남자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두산 벤치를 응시하고 있다.

◆ "반드시 꺾고 싶은 선배" "배울 점이 많은 동생"

두산과 인천도시공사의 남자부 플레이오프가 열린 1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는 양팀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프로종목에 비해 턱없지 적은 관중들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두산과 인천도시공사로 나뉘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감독 1년차에 인천도시공사를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강 감독은 적지 않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두산을 한 번 제대로 꺾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뜨거웠다.

"우리 팀이 두산보다 약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두산만큼 특출난 선수도 없구요. 하지만 정규리그에서 꼭 한번씩은 두산을 꺾은 적이 있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경신이 형이 이끈 두산을 제대로 이겨보질 못했어요. 정말 반드시 꺾고 싶은 선배입니다."

인천도시공사는 2011년 코리아리그로 재편된 뒤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핸드볼 슈퍼리그로 범위를 넓혀보면 2010년 두산과 챔피언결정전을 치른 경험이 있지만 역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윤경신 감독도 후배 강일구 감독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골키퍼 출신이기 때문에 분석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일구는 대표팀에서도 많이 지냈는데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동생이죠. 골키퍼 출신이라서 수비 잡아주는 것도 남다르죠. 굉장히 꼼꼼하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선수들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됐을 겁니다."

▲ 두산 이재우(가운데)가 11일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남자부 플레이오프에서 인천도시공사 수비진을 뚫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 두산의 창과 인천도시공사의 방패 대결

현역시절 포지션이 서로 다른 두 스타 출신의 감독은 경기 스타일도 판이하게 달랐다. 역시나 두산은 창이었고 인천도시공사는 방패였다.

이날 인천도시공사의 골리 김신학은 풀타임을 뛰면서 35개의 두산의 샷 가운데 14개를 막아냈다. 40%에 달하는 선방률이었다. 특히 7m 샷 3개는 모조리 막아냈다. 역시 명품 골리 출신 강일구 감독의 제자다웠다.

"아무래도 제가 골키퍼 출신이다보니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것이 많죠. 선수들 개개인의 성향을 모두 분석하면서 어떻게 공을 던질 것인지에 대한 지도와 어떻게 막아낼 것인지에 대해 집중 지도합니다."

경기는 시종일관 팽팽했다. 어느 쪽으로도 일방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오히려 전반을 앞선 쪽은 인천도시공사였다. 전반 종료 19초를 남기고 김동명의 골이 나오면서 인천도시공사가 11-10으로 앞섰다.

후반 들어 창끝이 날카로워진 두산이 역전에 성공하긴 했지만 2골차로 앞섰을 뿐이었다. 그리고 인천도시공사가 15-17로 뒤진 상황에서 하민호와 백성한의 연속골로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놓고 17-17 동점을 만들어 경기 향방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 강일구(왼쪽) 인천도시공사 감독이 11일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두산과 플레이오프에서 골키퍼 김신학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결국 승패를 가른 것은 두산의 날카로운 창이었다.

홍진기와 박찬용이 모두 2분 퇴장을 당하면서 정한 한명만 2분 퇴장을 당한 인천도시공사보다 한 명이 더 적은 상황에서 이재우가 오른쪽에서 골을 성공시키며 18-17로 앞서갔다.

이어 골리 박찬영이 하민호의 샷을 막아내 공격권을 가져온 상황에서 이재우가 다시 한번 9m 거리에서 골을 성공시켜 종료 2분 50초를 남겨놓고 19-17로 달아났다.

두산 응원단에서 "이쯤 되면 거의 끝난거네"라는 말이 흘러나올 때쯤 인천도시공사가 엄효원의 골로 1점차로 따라붙었지만 종료 2분전 이재우가 다시 한번 골을 성공시켜 20-18로 재차 점수차를 벌렸다.

두산은 20-19로 쫓기던 마지막 공격기회에서 윤시열의 골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윤시열의 골이 터지는 순간 윤경신 감독은 두 팔을 번쩍 들어 승리를 자축했다.

▲ 윤경신 두산 감독이 11일 핸드볼 코리아리그 인천도시공사와 플레이오프에서 박빙의 승부가 막바지에 이르자 긴장한 듯 무릎을 꿇고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 서로 너무 잘 아는 사이라 더욱 팽팽

"대표팀까지 포함해서 같이 지낸 세월만 얼마입니까. 그만큼 서로를 너무 잘 알죠. 일구도 저를 잘 알 것이고 저 역시 일구를 잘 알죠. 그런만큼 경기가 더욱 팽팽했던 것 같습니다. 어제도 지도자 회의 때 만나서 선의의 경쟁을 벌이자고 했죠. 좋은 경기였습니다."

윤경신 감독은 경기를 마친 뒤 인천도시공사와 경기가 쉽지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후반 중반에 점수차를 벌릴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어려운 경기를 펼쳤다"고 얘기했지만 그 역시 인천도시공사가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두산으로서는 힘든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일구가 1년차 감독으로서 꽤 많이 힘들겁니다. 저도 지난해 겪어봐서 잘 알구요. 시행착오도 가장 많이 겪는 시기이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 경기를 보니까 선수들의 조직력도 좋고 팀을 잘 만든 것 같아요. 인천도시공사가 포기를 모르는 팀이라 늘 경기가 힘든데 다시 한번 힘든 경기를 했습니다."

강일구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에 비록 나가지 못했지만 나름 의미있는 경기라고 평가했다.

"정말 이번 시즌 초반이 힘들었어요. 선수들도 많이 바뀌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죠. 하지만 선수들이 잘 따라와주면서 경기가 풀리기 시작했어요. 사실 아시아선수권 일정 때문에 2주 정도밖에 손발을 맞추지 못했는데 경기가 잘 풀렸어요."

▲ 윤경신 두산 감독이 11일 인천도시공사와 플레이오프에서 승리가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선후배 감독의 지략 대결은 일단 선배 감독의 승리로 끝났지만 인천도시공사가 아직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팀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형님 팀'을 넘어서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리그에서는 몇번 이겨봤지만 단판으로 치러지는 경기를 제대로 이겨보지 못했죠. 그래도 선수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두산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오늘 경기도 아쉬웠지만 선수들이 잘해준 경기였고요. 이제 다음을 또 기대해봐야죠."

선의의 경쟁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렇기에 두산과 인천도시공사의 승부도 아름답게 끝났다. 그리고 아름다운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 윤경신 감독과 강일구 감독은 앞으로도 아름다운 경기를 계속 치르며 '네버엔딩 스토리'를 써나가게 될 것이다.

[취재후기] 언제나 핸드볼 경기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많지 않은 관중들과 기자들이다. 아무래도 올림픽 때만 관심을 갖고 평소에는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숙명과 같다. 이날 경기에도 대략 200명 정도의 관중만 찾았고 기자 역시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 프로종목이 수많은 이야기를 양산하며 점차 팬을 늘려가듯 핸드볼 역시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면 점점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지 않을까. 여자 핸드볼의 '우생순' 스토리가 지금까지도 회자되듯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윤경신 감독과 강일구 감독, 두 젊은 지도자가 만들어나갈 스토리리는 한국 남자 핸드볼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에 재미와 감동을 입혀 팬들의 관심을 끌게하는 것은 물론 협회의 몫이다.

▲ 두산 선수들이 11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인천도시공사와 남자부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뒤 기쁨을 나누고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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