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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폭탄 든 남자' 김정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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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폭탄 든 남자' 김정훈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12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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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들개'로 단박에 주목받은 차세대 대표 감독

[300자 Tip!] 젊은 감독 김정훈은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 중 영화동아리 얄라셩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연출전공으로 행보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꽂혔던 폭탄을 소재로 한 독립영화 ‘들개’는 그의 분신이자 자화상이다. ‘무력감’이라는 시대정서를 가슴에 품은 그는 앞으로 사회에 잘 섞여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 계획이다. 자신의 세계관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기에 그는 감독이라는 직업을 열렬히 사랑한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올 상반기 독립영화 강풍의 한복판에 선 김정훈(33) 감독은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봉준호·최동훈·장준환을 이을 차세대 대표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 아시아의 미래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지난달 열린 ‘KAFA FILMS 2014’의 상영작 ‘들개’에서 만만치 않은 연출력을 과시한 그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검은색 헌팅캡과 후드 집업 점퍼, 편안한 반바지에 로퍼를 신은 패셔너블한 젊은 남자가 등장했다.

- 영화 속 두 캐릭터 정구와 효민은 묘하게 닮았으면서 아주 다른 인물이다.

"대학원 연구소에서 조교로 일하며 이 사회에 편입하고자 끊임없이 취업 도전하는 정구는 뭔가를 감추는 인물이다. 현실적이다. 반면 가출해 홀로 사는 부잣집 아들인 대학생 효민은 뭔가를 자꾸 드러낸다. 이상적이다. 둘의 공통점은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지기 힘든 외로운 존재들이다. 이해 불가능한 욕망을 지녔기에 만났을 때 서로 각별한 느낌이었을 거다. 둘 다 나의 모습이다. 정구에게 조금 더 애착이 가지만. 하하."

- 사제폭탄의 등장이 충격적이다. 그것도 독립영화에.

"폭탄에 대한 매혹이 있었다. 억눌린 파괴욕구일 거다. 사람과 싸우지 못하는 성격이라 사물에 화풀이를 했다. 물건이 파괴되는 걸 보며 쾌감을 느꼈다. 중3때 늘 생각했던 게 돈 많이 벌어서 핵폭탄을 만들어 온 세상을 쓸어버리고 싶었다."

▲ '들개'의 장면 모음. 아래 사진은 정구(변요한 왼쪽)와 효민(박정민)

- 사춘기 시절, 성격 이상 증후가 있었나.

"유년기엔 착하고 순진했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교복, 두발단속, 체벌, 언어폭력 등 남들이 나한테 가하는 폭력에 화가 났다. 가족이나 선생님과 얘기해도 논리 없이 권위로만 찍어 누르는 듯했다. 그래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대통령을 꿈꾸기도 했다."

- 좌절을 일삼는 청춘이 억압과 분노를 터뜨리기 위해 사제폭탄을 제조하고, 이를 터뜨리는 내용은 비현실성에 갇힐 위험이 크지 않나. 영화는 대중과 공감해야 하는데.

"내 분노의 원인을 탐구하면서 사람들도 억눌린 분노가 많은데 어디로 표출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이걸 이야기로 만들어보자 했다. 현실적으로 공감가도록 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지적한 것처럼 위험하고도 생뚱맞을 수 있는 소재라 더욱 그랬다."

- 변요한과 박정민을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배우로서 그들의 가치를 말한다면.

"캐스팅에 있어서 연기력을 가장 중요시 여겼다. 특히 이 작품은 연기를 못하면 현실에서 붕 떠있을 것 같아 더욱 그랬다. 변요한은 얼굴이 좋다. 평범해 보여서 감정이입이 잘 되는 친구다. 눈의 불안한 정서는 정구의 이중적 모습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효민 역의 박정민은 아웃사이더 느낌이 있다. 똑똑하고 지적인, 센스 있는 배우다. 세련된 표현을 할줄 알아서 영화 속 몇 장면(비디오테이프, 공중전화 신)은 그가 시도한 애드리브를 그대로 살렸다."

 

- 독립영화임에도 상업영화 필이 물씬 난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상업영화 같단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장르적 틀 때문인 것 같다. 영화에 스릴러 요소를 많이 끌어들였다. 또 폭파장면, 무술 액션, 조명, CG작업 등에서 좋은 스태프들이 많이 도와줬다. 저비용 고효율 구조였다.(웃음) 공간의 효과도 컸다. 모교인 서울대 안에 버려진 건물을 영화 속 폭탄제조 아지트로 사용했는데 따로 미술작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 이 영화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싶었던 요소는 무언가.

"무력감이라는 정서가 중요했다. 어렸을 때부터 분노를 지녔음에도 발버둥쳐봤자 바뀌는 건 별반 없었다. ‘나만 잘 살면 되지’란 의식으로 연결됐다. 그런 무력감이 지금도 많은 이들의 시대정서라고 여긴다. ‘들개’를 통해서 폭탄으로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음을 말하고 싶었다."

- 한국 독립영화가 '제2의 르네상스'를 맞았다고들 한다. 많은 작품이 개봉되고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립 장편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다. 충무로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일 수도 있고, 아무튼 하나의 시장이 형성됐다. 일반 상업영화에서 보지 못하는 소재와 주제, 상업영화에서는 뻔한 게 많으니까 간객에게 색다른 느낌을 제공해서 그런 게 아닐까. 한국영화계를 위해서도, 관객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았나 싶다."

 

- 회사원 생활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사회 경험과 돈벌이가 필요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1년6개월 동안 경영업무를 수행했다. 잃은 것도 많지만 엄청나게 얻은 것도 많다. 처음으로 사회 속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는 거.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었고, 사람들과 타협하는 방법도 알게 됐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미래가 보이질 않아 때려치웠다. 퇴사 후 감독의 길을 모색하며 과외 등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들 한다. 감독의 매력은 무엇인가.

"얼마 전 영화 ‘노예12년’을 봤다. 170여 년 전의 먼 나라 이야기임에도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어마어마한 연출력에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다른데서는 말하기 힘든 자신의 세계관을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또 하나는 너무 재밌다. 원래 갖고 있는 (이야기의) 매혹을 만들어나가는데서 큰 재미를 느낀다."

-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앞으로도 나의 세계관은 비슷할 것 같다. 사회에 잘 섞여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장르적으로 풀다보면 ‘범죄’가 들어갈 것 같고. 차기작은 상업영화를 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취재후기]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주 들어가고 인터넷 검색, 페북 활동에 열심이다. 영화를 많이 본다. 해외 프로야구와 농구를 즐겨 찾아본다. 여느 서른 세 살의 젊은이랑 다를 바 없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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