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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연극 최전선에 선 그녀, 이희진 독립PD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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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연극 최전선에 선 그녀, 이희진 독립PD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25 0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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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국내에선 ‘음지’ ‘찬밥’ 소리를 듣지만 해외 무대에서 한국 연극은 뜨거운 시선의 중심에 서곤 한다. 유럽, 남미, 러시아, 중국, 일본 유수의 극장과 공연 페스티벌에 잇따라 초청받으며 한류 연극 붐을 지피는 최전선에는 그녀가 있다. 공연계 독립 프로듀서 이희진(35).

오는 9월4일 개막하는 한중일 공연예술 축제인 ‘베세토 페스티벌’ 국제위원을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희진 프로듀서를 주 활동무대인 대학로에서 24일 만났다.

 

◆ 기획부터 통역까지 전과정 책임...‘한여름밤의 꿈’ '하륵이야기‘ ‘보이첵’ 등 해외 소개

그녀가 소속된 회사는 ‘프로듀서 그룹 도트’다. 한국-해외 연극 공동 제작 및 아티스트들의 공동 작업, 국내 공연단체의 해외 프로모션, 국제 레지던시와 워크숍을 통한 창작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동체 커뮤니티다. 지난해 7월 설립돼 현재 5명의 독립 프로듀서들이 모여 있다.

이 가운데 이희진 프로듀서는 경력 10년의 베테랑 ‘해외통’이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 ‘햄릿’ ‘페르귄트’,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 ‘하녀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하륵 이야기’ ‘노래하듯이 햄릿’ 등이 그녀의 손길을 거쳐 스페인 그렉 페스티벌, 오스트리아 찰츠부르크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 호주 멜번아츠센터, 대만 국립극장 등 해외 무대에 선보여 관객을 매혹했다. 그리고 한국 연극의 우수성을 입증했다.

“외국 평론가들과 공연 관계자, 관객들은 한국 연출가들의 작품 자체에 주목해요. 양정웅 연출의 경우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해석, 빼어난 미장센과 속도감으로 인해 차기작에 관심을 보여요. 사라디움직임연구소의 작품들은 아시아 신체극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죠. 임도완 연출은 ‘보이첵’을 통해 독창성 있는 재해석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요. 모두 미장센이라든가 연극적 장치로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한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공정이 뒤따른다. 먼저 현지 극장과 페스티벌이 어떤 색깔이며 어떤 작품을 원하는 지를 면밀히 파악한다. 1회성 공연이 아니라 타 단체와 작품이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기에 아시아·미주·유럽·남미 권역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희진 프로듀서의 손을 거쳐 해외 무대에서 소개된 '한여름 밤의 꿈' '하륵 이야기' '보이첵'(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후 기획, 펀딩, 기술(조명·무대·장비 등) 협의 및 계약, 스케줄 조정, 홍보 전략 등을 현지 주관단체와 끊임없이 e-메일 혹은 전화통화로 진행한다. 이를 위해선 작품에 대한 파악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공연 팀과 함께 현지로 날아가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하는 날까지 동행하며 사전 협의사항 점검, 돌발 상황 대처, 통역, 홍보업무를 벌여나간다.

“2009년 ‘보이첵’ 그루지아 공연 때는 운송 담당자가 잠수를 타고, 공연 준비조차 돼있지를 않더라고요. 리허설도 못한 채 암전 체크만 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그런데 배우들이 긴장해서인지 오히려 평상시보다 합을 더 잘 맞춰 관객의 기립박수가 터졌죠. 2011년 이란 테헤란 공연 때는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의미하는 아랍어) 문화 탓에 공연 직전 당국에서 사전 검열을 하는 통에 남녀 애정신과 같은 장면들이 다 교체됐어요. 30분 늦게 개막하고 배우들은 히잡(얼굴만 남기고 머리카락을 감싸는 스카프)을 쓴 채 연기해야 했죠.”

해외 투어마다 사건사고가 빠짐없이 일어난다. 중국의 지방 도시, 중동, 남미는 요주의 지역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포기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상황에 따라 회유, 협박, 타협, 강행 전술을 구사하는 요령도 익혔다.

◆ 열악한 국내 연극제작 현실 우울...해외 관객 환호 쏟아질 때 짜릿

해외 프로모션 담당자에게 있어 기본 자질은 언어다. 이희진 프로듀서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고교시절 교환학생으로 1년6개월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연마하기 시작한 영어실력은 네이티브 스피커 급이다. 대학 중문과에 입학한 뒤 베이징 외국어대학으로 유학, 3년간 중문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학사를 취득한 뒤 대학원에서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공연 관련 일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중국 희곡 텍스트 분석에 빠져있던 2006년 베세토 연극제 국제위원이었던 교수님을 도와 연극 ‘하륵 이야기’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하게 됐는데 ‘이렇게 재미나는 일이 있구나’ 싶더라고요. 커뮤니케이션을 도우면서 과제를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데서 짜릿함을 느꼈죠. 결과물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접하며 희열을 맛봤고요.”

2007년 극단 미추의 한중합작 공연 ‘삼국지·오’(연출 손진책, 안무 국수호)가 중국에서 상연될 때는 전공인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연출부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9년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집단 아시아나우에 입사한 뒤부터 한국 연극의 해외투어를 도맡아서 진행하게 됐다.

‘프로듀서 그룹 도트’의 역점 사업 중 하나는 국내외 공동 작업이다. 지난해 한국-인도 합작 연극 ‘바후차라마타’(연출 배요섭)가 남산예술센터와 인도 3개 도시 투어를 성공리에 진행했다. 내년에는 초연작들이 쏟아진다. 국내 단체 뛰다와 일본 극단 도리노 게키초의 공동 연극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두 아이에 대한 보고서’(가제)가 한일 공동 연출, 양국 배우 출연으로 선보인다. 국내 크리에이티브 집단 바키와 호주 멜버른의 랜터스 시어터의 공간에 대한 재해석 작품인 ‘쇼트 필름’이 내년 하반기에 현지 초연된다.

오는 10월 창작 개발 프로그램 두 번째 워크숍을 통해 가다듬어질 한국 연출가 4명, 독일 연출가 1명의 합작 연극 ‘이피게니아×5’는 내년 한국 초연을 거쳐 2017년 베를린 도이체스 시어터 시즌 공연으로 자리매김한다. 괴테의 희곡 ‘이피게니아’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빠른 속도로 활기차게 말을 이어가던 이희진 프로듀서가 잠시 쉼표를 찍었다. 국내 연극계 현실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다.

“뮤지컬, 클래식, 무용과 비교해서 연극은 제작비 마련이 너무 힘들어요. 기업 펀드레이징은 전무하다시피 하고요. 젊은 창작자들에 대한 지원 역시 제한적이라 해외 시장에 적합한 작품을 발견하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연극 시장이 성장해서 자체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문화의 기초인 순수예술이 잘 다져져야 시너지 효과로 인해 타 예술도 융성할 텐데 여러모로 아쉽죠.”

기초 생계비마저 충당하기 힘들다는 연극판에서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 강행군을 벌이며 10년 가까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동력은 무얼까.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열악한 현실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해외에 가서 관객들에게 환호를 얻을 때의 짜릿함을 제일 먼저 꼽는다.

“그래서 벗어나질 못하는가 봐요. 더불어 새로운 배우, 제작자, 프로듀서, 아티스트들 그리고 새로운 작업과의 만남에서 기쁨과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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