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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고아성 "난 길들여진 배우 아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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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고아성 "난 길들여진 배우 아냐!"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2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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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배우 고아성(23)이 스크린을 줄달음질 치고 있다. 지난 20일 개봉한 판타지 로맨스 ‘뷰티 인사이드’에서 날마다 다른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남자 우진으로 등장해 여배우 한효주와 키스신을 연출하는가 하면, 스릴러 ‘오피스’(8월27일 개봉)에선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인턴사원 이미례의 불안한 심리를 그려낸다. 다음달엔 홍상수 감독의 신작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조연으로 관객과 만난다.

여름을 밀어내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25일 오전, 삼청동 언덕배기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이미례는 나이에 맞는 역할이었다”며 “나를 다 바쳐서 하고 싶었을 만큼 빠져들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북한산에 걸린 뿌연 안개가 차세대 충무로 여제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끔직한 일가족 살해사건을 벌인 김병국 과장(배성우)이 사라진 뒤 회사 동료들은 불안에 떤다. 수사에 나선 강력계 형사 종훈(박성웅)의 눈에 김 과장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인턴사원 이미례(고아성)가 들어온다. 올해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은 스릴러 영화 '오피스'에서 차세대 충무로 여제 고아성이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배우 고아성 vs 인턴 이미례: 배우나 인턴이나 끊임없이 비교되고 평가받는 직업이다. 4세부터 ‘괴물’(2006)에 출연했던 13세까지 무명 시절이 길었다. 매번 오디션에서 떨어졌다. 외면과 거절이 익숙했다. 그래서 정직원을 꿈꾸며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려고 아등바등하는 이미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열심히 했는데 성과가 없을 때 자괴감에 빠져들곤 했다. 대부분 내 연기에 만족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미례도 그래서 일부러 당당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설국열차 vs 오피스: ‘오피스’는 내가 출연한 영화들 가운데서 만족도가 큰 작품이다. 역할이 작을수록 연기하기가 어렵다. 약에 취한 소녀 요나로 출연한 ‘설국열차’처럼 분량이 작으면 표현이 제한되니까. ‘오피스’는 분량이 많아서 미례의 성격을 드러내고 전반적으로 흐름을 짚어갈 수 있어서 배우로서 좋은 기회였다.

장그래 vs 이미례: ‘오피스’에 대해 ‘미생’의 호러판이라는 평가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미생’ 전권을 재미있게 읽으며 회사 분위기를 파악했다. ‘미생’에선 인턴사원 장그래가 지옥 같은 회사생활을 인간적이고 끈끈한 유대감으로 버텼는데 ‘오피스’의 미례는 업무는 많은 데다 인간관계는 팍팍했다. 미례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순간이 나타나는데, 그동안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와 정직원이 되지 못한 한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강타하는 충격이 가해지면서 결국 마지막 남은 돌멩이가 빠져버리며 돌탑이 무너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 전후반부 미례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다.

 

인턴: 이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큰 이유는 주변에 레퍼런스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친언니와 친구들 몇몇이 몇 개월째 인턴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들은 인턴의 가장 큰 고충으로 “소속감이 없다는 것”과 “외부인처럼 느껴지는 점”을 가장 힘든 요인으로 꼽았다. 미례의 주된 감정 역시 소외되고 싶지 않은,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지 않나. 너무 안타깝고 슬픈 한편 회사원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그래서 정말 이 영화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확신을 가지고 작품에 임할 수 있었다.

어려운 캐릭터들: 배우 일을 하면서 연기자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기 힘들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감정적으로 힘든, 펑범하지 않은 역할들을 해오고 있더라.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을 품어오지 않았나 싶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분석적이기 보다 감으로 하는데 개봉 직전이 되면 이유가 명확해진다. ‘오피스’에서 가장 끌렸던 건 조직에 스며든 자잘한 폭력들이었다. 그걸 드러내고 싶었다. 촬영현장, 학교, 회사, 인간관계 어디에나 그런 폭력은 존재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번에 역할에 몰입해서 빠져나오기 힘들 수도 있었는데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 동료애를 듬뿍 느꼈다.

풍문으로 들었소 & 시: ‘풍문으로 들었소’는 경험해보지 못한 출산과 모성애 코드 때문에 선택했던 드라마다. 서봄이 용감해질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왜 이 어려운 캐릭터를 기꺼이 했을까?’를 자문한다면, 모성을 지닌 아줌마에 대한 무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영화도 ‘시’ ‘마더’ ‘마미’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이창동 감독의 ‘시’는 신 바이 신(Scene by Scene)으로 분석을 처음으로 해봤던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나, 출연배우들 인터뷰를 읽으니 너무 힘들었다고 해서 몇 십 년 후쯤 참여해보고 싶다.

 

스릴러: 다양한 영화를 해보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내 영화 취향을 버리고 음악영화(식스틴, 듀엣), 스릴러(괴물, 오피스), 드라마(여행자, 우아한 거짓말), SF액션(설국열차) 등 여러 장르를 택해 왔다. 스릴러는 관객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장르다. 연기하기 까다롭지만 그래서 오히려 선택했다.

감독들: 봉준호 이준익 홍상수 감독님과 같은 대가와도 작업했지만, 신인감독들과도 다섯 번 작업했다. 난 길들여진 배우가 아니다. 그런데 ‘오피스’의 홍원찬 감독님께서 “너무 명장들과 많이 작업해서 부담스럽다”는 말을 하셨을 때 당혹스러웠다. 하긴 나도 이한 감독님과 ‘우아한 거짓말’을 할 때 정말 대단한 여배우들과 작업을 많이 하셔도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무튼 감독님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웃음)

할리우드 활동: 지난해 10월 미국 언타이틀 엔터테인먼트와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했는데 한국 스케줄 때문에 현지 활동이 계속 미뤄져 미안했다. 촬영 중인 영화 ‘오빠생각’이 마무리되는 대로 미국으로 미팅을 하러 갈 예정이다. 중간에 영화 한 편 얘기가 오갔는데 국내 촬영 일정 탓에 엎어져서 너무 아까웠다. 앞으로 국내 작품과 해외 프로젝트를 반반씩 해나가고 싶다.

언어 미아: 2009년 한국계 프랑스인 우리 르콩트 감독의 ‘여행자’를 찍을 때 감독님이 영어로 디렉션을 하면 스크립터가 통역을 해주곤 했다. 감독님과 직접 소통을 못하니 너무 답답했다. 그때부터 영어를 열심히 하겠다 다짐했다. 이후 외국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각오를 다졌다. 영어 연마의 가장 좋은 방법은 릴레이션십이다. 친구를 만들어서 정규적으로 소통하는 방식! 그런데 한국에 사는 이상 영어는 영원한 숙제다. ‘설국열차’ 초반엔 “Give My 총”이라고 대사를 치기도 했다.(웃음) 지금도 미국에 가면 첫 날은 초혼돈 상태에 빠져들며 한국어와 영어 모두가 안되는 ‘언어 미아’의 순간을 경험한다.

 

아역배우에서 성인 연기자로: 최초의 기억이 카메라 앞에 서있던 것일 만큼 너무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시작했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의 터닝이 중요하다고 자각하진 않는다. 성장이 억지로 이뤄지는 게 아니지 않나.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게 옳다고 본다. 그런데 주변에서 “멜로 해야한다” “키스신 찍어야 한다”고 말씀들을 하시니까 의식이 자꾸 됐다. 그래서 더 파격적으로 ‘풍문으로 들었소’를 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내 이미지 구축이 우선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 최우선이다.

10년: ‘괴물’로 데뷔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정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 맘때 첫 촬영을 했던 ‘괴물’의 배경이었던 한강변 매점이 없어진 건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다. 그 영화가 너무 빨리 찾아온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한다. 좀 더 다양한 영화를 경험한 뒤 대단한 감독님과 배우들, 스태프를 만났다면 더욱 감사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배우는 서른부터라고 생각한다. 그 전까지 다양한 작품을 시도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싶다. 앞으로 6년 남았다. 후후.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일상이 탄탄해야 자신감이 생긴다. 나의 일상을 잘 만들어가려고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으려고. 책만 읽어도 그 시간이 풍요로워진다. 요즘 소설가 한강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를 읽고 있다. 소설보다는 수필을 즐겨 본다. 내 감성이나 취향에 더 잘 맞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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