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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경의 애제자' 권한나, MVP보다 더 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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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경의 애제자' 권한나, MVP보다 더 큰 꿈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1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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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챔프결정전 김온아에 도전장…아시안게임 정상 탈환도 목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해요. (김)온아 언니(26·인천시청) 보고 배우는 거죠. 그래도 챔피언결정전에서 맞붙는게 기대됩니다."

좀 당찬 각오를 기대했는데 의외의 답변이었다. 물론 후배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그래도 핸드볼 코리아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권한나(25·서울시청)의 입에서 나온 것 치고는 너무 겸손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각오가 무서울 때가 있다. "선배, 한 수 잘 부탁합니다"라는 말 속에는 열심히 싸워 선배를 넘어서겠다는 숨은 속뜻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15일부터 3전 2선승제로 펼쳐지는 서울시청과 인천시청의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은 새로운 빅매치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 인천시청(예전 인천시체육회)과 원더풀 삼척(삼척시청)이 챔피언을 놓고 양분하는 모양새였지만 서울시청이 올시즌 처음으로 정규리그 정상에 올라서면서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

▲ 권한나가 지난 6일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원더풀 삼척과 2014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점프슛을 날리고 있다. 권한나는 정규리그 MVP에 선정되고 팀을 첫 정규리그 정상에 올려놓는 등 자신만의 2014년을 성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그 중심에는 권한나와 김온아가 있다. 두 선수 모두 팀의 레프트백을 맡고 있다. 그런만큼 공격과 수비에서 계속 맞붙을 가능성이 높다.

김온아는 어린 나이에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등 한국 여자핸드볼의 세대교체 선두주자로 일찌감치 자리잡은 특급 스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국가대표로 나가는 등 벌써 두 차례 올림픽을 경험했다.

이에 비해 권한나는 떠오르는 신예다.

핸드볼 명문 의정부여고 시절부터 에이스로 활약했던 그는 한국체대에서도 주득점원으로 활약했다. 한국체대는 실업팀에 비해 턱없이 약한 전력이었지만 그래도 권한나의 활약으로 '선배 언니'들을 상대로 매운 맛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체대는 실업팀에 비해 전력도 약하고 경기도 많이 뛰지 못했어요. 그래서 실력이 많이 줄어들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오히려 기량이 성장했던 것 같아요."

▲ 권한나가 5일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 경기장에서 열린 2014 SK핸드볼 코리아리그 시상식에서 여자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2년 신인상을 받은 뒤 실업무대 세 시즌만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사진=스포츠Q DB]

한국체대를 졸업한 뒤 임오경 감독이 이끄는 서울시청에 입단한 권한나는 2012 코리아리그 신인상을 받았고 런던 올림픽에도 동행했다.

그리고 스페인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7골을 넣는 등 한국 대표팀은 물론 양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다. 당시 스페인과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해 빛이 바래긴 했지만 권한나는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아쉽지만 분명 좋은 경험이었어요. 사실 선배 언니들을 많이 보고 따라했어요. 결과는 아쉽게 나왔지만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후회는 없고 저로서는 언니들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운 계기가 됐어요."

런던 올림픽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권한나는 2013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서울시청을 4위로 이끌어 포스트시즌까지 진출시켰다. SK 슈가글러이더즈에 29-30으로 아깝게 져 원더풀 삼척과 플레이오프는 치르지 못했지만 서울시청은 희망과 미래를 봤고 결국 이는 올해 코리아리그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어졌다.

"인천시청과 챔피언결정전이 너무 기대됩니다. 사실 부담은 되는데 그건 인천시청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그리고 원래 긴장을 잘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즐기면서 경기를 하려고 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 [스포츠Q 박상현 기자] 권한나가 13일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서울시청 팀 훈련을 마친 뒤 깜찍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한나는 같은 레프트백 포지션에서 김온아와 맞대결을 앞두고 있다.

정규리그 우승은 서울시청이 차지했지만 인천시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히려 선수 구성에서는 인천시청 쪽이 더 좋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인천시청에는 김온아와 함께 대형 공격수이자 장신인 류은희(24)까지 버티고 있다.

"인천시청에 막을 선수가 많긴 하죠. 하지만 이미 올해 두 차례 경기에서 한번도 지지 않았구요. 우리도 나름대로 대비책을 많이 세웠어요. 재미있게 경기가 진행될 것 같아요."

서울 올림픽공원 SK 핸드볼 경기장에서 13일 진행된 서울시청의 훈련에서는 유독 임오경 감독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이 가운데 권한나에 대한 '질타'가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제자라도 리그 MVP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고 농담 비슷하게 물어봤다.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니까 그런거죠. 안될 선수면 그렇게 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한나 자리는 온아와 맞붙어야 하는 자리인데 정신력도 가다듬고 투쟁력도 키워야 해요. 그래서 더 모질게 하는거죠.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야 해요. 제 선수라서 하는 말은 아니라 지금 상승세나 기량만 놓고 본다면 한나가 온아보다 훨씬 낫다고 봐요."

권한나의 눈은 단지 챔피언결정전만 향해있지 않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뛰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4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인천 아시안게임이 더욱 중요하다.

▲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서울시청 권한나(왼쪽)와 임오경 감독이 13일 SK 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팀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오경 감독은 기량에서 권한나가 김온아보다 훨씬 앞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여자핸드볼은 그동안 아시아 최강을 자부해왔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부터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5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밀려 동메달에 그쳐 체면을 구겼다. 그렇기에 인천 아시안게임은 여자 핸드볼의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아시아 정상 탈환이라는 두 가지 과제가 걸려 있다.

"신인상을 타고 런던 올림픽에도 나갔던 2012년이 제게 큰 자신감을 줬다면 MVP에 선정된 올해는 아시안게임까지 있으니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언니들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다시 가져오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임오경 감독은 여자 핸드볼의 세대교체는 성공적으로 되고 있다며 애제자 권한나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 핸드볼 대표팀을 보면 젊은 선수들로 많이 채워졌구요. 레프트백과 센터백, 라이트백 모두 탄탄하기 때문에 아시아 정상 탈환은 당연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나와 온아가 있는 레프트백은 세계 어느 팀과 견줘도 절대로 밀리지 않죠."

아직 권한나는 지난해 다쳤던 왼쪽 발목이 좋지 않다. 지금도 가끔씩 통증이 찾아온다. 여기에 장기 리그로 인해 어깨 쪽도 정상이 아니다.

"리그 끝나고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인천시청과 제대로 한번 경기한 다음에 이제는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을 위해서 뛰어야죠."

권한나는 경기를 앞두고 신발끈을 꼭 조여매는 버릇이 있다. 각오를 다지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그래야만 경기가 잘 풀린단다. 2014년 떠오르는 해를 보며 빌었던 여러 소원 가운데 정규리그 우승과 MVP, 두 가지가 이뤄졌다는 그는 또 다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다시 한번 신발끈을 조여맸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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