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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의 싱그러움, 지리산 팔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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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의 싱그러움, 지리산 팔랑치
  • 이두영 편집위원
  • 승인 2014.05.20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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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일대 철쭉과 일출 감상

지리산허브밸리~바래봉~ 팔랑치 5시간 짜릿한 산행

[스포츠Q  이두영 편집위원] 지리산 골짜기들이 어둠을 떨쳐내는 여명의 시간. 하늘과 맞닿은 겹겹 지평선은 천억 번째의 새 날을 맞으며 푸른 영기를 내뿜고, 팔랑치의 철쭉은 수십 년 늙어버린 표정으로 서로를 감싸 안습니다. 간밤 기운이 꽤 차가웠던 모양입니다. 차차 철쭉의 쇠잔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냉해로 윗부분의 꽃잎이 떨어지고 우그러든 꼴은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가 생긴 중년남성의 정수리를 연상시킵니다.

그러나 첫새벽에 세상의 꼭대기에 서서, 산맥에 감도는 무겁고 긴장된 빛을 바라보는 기분은 형용하기 힘든 감동입니다. 철쭉꽃 감상을 빙자해 지리산까지 달려간 것은 밤과 아침이 만나는 시간의 상서로운 공기 속에 나를 풀어놓기 위함이었습니다. 공룡이 활보하던 중생대의 격렬한 지각활동으로 탄생한 골짜기들이 윤곽을 드러낼 즈음, 넘실대는 산군을 멍히 바라보노라면 변비환자의 숙변처럼 뭉치고 꼬인 두뇌의 신경 조직이 초기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영혼이 맑아집니다.

▲ 해가 뜨기 전, 바래봉 삼거리 못미처에서 뒤돌아보면 운해에 잠긴 운봉읍 쪽이 수묵화처럼 멋집니다.

 

▲ 팔랑치 철쭉 앞에서 해돋이를 감상했습니다.
▲ 팔랑치의 철쭉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 팔랑치 철쭉과 일출.
▲ 팔랑치 철쭉 군락.

 

▲ 팔랑치 철쭉 군락.
▲ 팔랑치 철쭉 군락.
▲ 바래봉 철쭉.

그렇지만 맑은 심상을 얻으려면 몸은 상당한 수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오후 늦게 수도권을 출발해 지리산 바래봉 등산로 초입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의 ‘바래봉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인간이 잠을 자고 귀신들은 활동한다는 밤 12시였습니다. 5시간 야간운전을 한 터라 차 안에서 바로 잠을 청했습니다. 눈을 뜬 것은 새벽 3시. 철쭉이 가장 많은 팔랑치까지 2시간 걸리고, 일출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므로 휴대전화 알람을 새벽 3시로 맞춰 놨습니다.

바래봉(1,165m)은 지리산 서쪽에 자리한 봉우리로 스님의 밥그릇인 바리데기를 엎어 놓은 듯한 형상이랍니다. 진짜 닮았냐고요? 별로입니다. 직접 확인하시길! 이곳이 철쭉 명소로 유명해진 것은 1970년대 초 면양 목장이 조성된 이후 양들이 다른 풀들은 뜯어 먹었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철쭉은 바래봉보다 2km 떨어진 팔랑치에 더 많습니다. 팔랑치 넘어 부운치로 이어지는 구간도 제법 화려합니다. 철쭉꽃은 이제 거의 시들었지만 내년에라도 시간을 내보시라고 갔다 온 얘기를 전해 드립니다.

▲ 바래봉 정상에서 팔랑치 쪽을 바라봅니다.

 

▲ 바래봉 아래 고목.

 

*지리산 바래봉 철쭉 정보

철쭉개화는 ‘지리산허브밸리 주차장’ 바로 위쪽 기슭에서 5월초부터 시작합니다. 정상 쪽은 올해 경우 5월 10일쯤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철쭉꽃은 꽤 오래가는 편이지만 밤에 냉해를 입으면 빠르게 시들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산행 코스는 매년 축제가 열리는 허브밸리주차장(용산 주차장)에서 팔랑치까지 갔다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주차장→바래봉삼거리(4.2km, 1시간 30분)→팔랑치(1.5km, 20분). 바래봉삼거리에서 바래봉 정상까지는 500m, 10분 소요. 바래봉삼거리는 주능선에 있는 갈림길이며 왼쪽이 바래봉, 오른쪽 방면이 팔랑치입니다. 인터넷에는 보통 주차장에서 팔랑치까지 1시간 30분이면 간다고 표기돼 있으나 그것은 잘 걷는 사람이 물통 하나만 들고 걸을 때의 얘기입니다. 행여 카메라가방 등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다면 가파른 임도를 오르는 일은 고역일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둠 속에서 배낭 챙기느라 30분 이상을 늦게 출발해서 꽤 힘들었습니다. 일출의 감동을 떠올리며, 체력단련과 복부지방을 날려버린다고 생각하고 올랐습니다.

▲전북학생교육원(남원시 운봉읍 공안리)에서 1.8km를 걸어 세동치에 오른 다음, 주능선을 따라 부운치를 거쳐 팔랑치까지 4.2km를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팔랑마을(남원시 산내면 내령리)에서도 팔랑치까지 1시간 1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습니다.

 

천왕봉이 보이는 치유의 쉼터 ‘실상사’

▲ 남원 실상사 목탑지와 법당.

 

▲ 실상사 입구의 해탈교를 건너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보입니다.
▲ 실상사 앞 연못의 올챙이들. 개구리들이 고생을 많이 했군요.
▲ 실상사를 수호하는 석장승이 다리 근처 여염집 앞에 서 있습니다.
▲ 관광객들이 연못가의 그늘길을 따라 실상사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허브밸리 주차장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인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에 천년고찰 실상사가 있습니다. 이 땅의 여느 절처럼 실상사도 불교의 흥성기인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했습니다. 이 절의 가장 큰 특징은 청도 운문사와 마찬가지로 평지에 있다는 점입니다. 입구도 얼마나 소박한지 그저 마음이 편안해지는 절입니다. 절로 들어가려면 도로변 작은 풀밭 주차장에 차를 두고 입장료 1500원을 내고 강에 걸친 오래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 근처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큰 석장승 3기가 서 있어 웃음이 배시시 나옵니다. 이 조각품들은 실상사를 수호하는 상징물입니다. 다리를 지나면 올챙이알들이 들어 있는 연못 가장자리를 따라 그늘길이 나 있습니다. 절은 소박한 여염집 같이 아늑합니다. 보물로 지정된 ‘남원 실상사 석등’을 비롯해 소원을 비는 ‘옛 기와탑’, 거대한 목탑이 있는 사실을 알려주는 ‘실상사 목탑지’, 생태뒷간 등의 볼 것이 있습니다. 극락전 뜰에 가면 다람쥐와 심심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사천왕문 뒤편으로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보입니다.

 

 * 깔끔하고 맛 좋은 돼지고기 식당

남원의 음식 하면 추어탕이 먼저 떠오르지요. 남원 광한루원 옆에 늘어선 추어탕집들의 맛과 품질은 명성만큼이나 제값을 합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어느 지역 비빔밥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오늘은 훌륭한 돼지고기 음식점 하나를 소개합니다.

▲ 돼지고기 맛집 <지리산 고원흑돈> 식당의 김치찌개.

 

실상사에서 지리산IC에 이르기 100m 전쯤 오른쪽에 <지리산 고원 흑돈>이라는 커다란 식당이 있습니다. 품질좋은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와 청국장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메뉴부터 온갖 부위가 비싸지 않게 제공되고 고기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7,000원짜리 김치찌개를 시켜봤는데 돼지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반찬도 깔끔합니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비롯한 대사성질환의 주범인 소금도 적게 들어가서 간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돼지고기는 혈관을 망가뜨리는 포화지방뿐 아니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불포화지방도 많이 들어 있고, 특히 필수지방산의 일종인 리놀산이 상당히 함유돼 있습니다. 그밖에도 단백질과 비타민A, 비타민 B3(니아신)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 생리활성에 좋은 역할을 합니다. 제가 음식점을 평가할 때는 ‘다시 오고 싶은가’입니다. 물론 이 식당에 대한 평가는 ‘오고 싶다’입니다. 전화 (063)635-7070.

travel220@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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