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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6) 배드민턴 에이스 성지현, 시련도 악연도 날릴 리우의 '하이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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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6) 배드민턴 에이스 성지현, 시련도 악연도 날릴 리우의 '하이 클리어'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9.11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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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셔틀콕 2세, 아버지 '운영'+어머니 '심리' 팁 든든...올림픽 단식 20년만의 '포스트 방수현' 도전

[200자 Tip!] 한국 배드민턴에서 단식, 그 중에서도 여자단식은 꽤 오랫동안 ‘비주류’로 치부돼 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방수현이 금메달을 딴 이후 네 차례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던 게 사실. 그간 이 종목에서는 중국 선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판도가 바뀌었다. 인도네시아, 스페인, 대만, 태국 등의 선수들이 최상위권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선수 가운데서는 세계랭킹 8위 성지현(24·MG새마을금고)이 ‘톱10’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한국 여자 셔틀콕 간판 성지현이 320여일 남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겨냥해 힘찬 스매싱을 날리고 있다.

[태릉=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새벽 어스름이 살짝 걷히는 오전 6시가 되면 성지현은 어김없이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트랙을 달린다. 1시간 30분 동안 달리고 난 뒤에는 전술훈련과 기술훈련, 연습경기가 포함된 오전 훈련을 소화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오후 일과를 보낸다.

▲ 성지현이 태릉선수촌 오륜관에서 셔틀콕들을 앞에 둔 채 환하게 웃고 있다.

파트별 훈련으로 야간 훈련까지 뛰는 강행군을 소화하면 밤 10시. 고된 훈련으로 온 몸이 녹초가 되지만 쉼표는 없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자신과 싸움을 이어간다.

올해 성지현은 체력적으로 많은 난관에 부딪쳤다. 내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국제대회를 소화하면서 국내대회까지 병행하다보니 몸에서 탈이 났다. 지난 7월 26일 전국 여름철 종별선수권대회 여자 일반부 단체전 준결승 도중 몸에 이상을 느낀 성지현은 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허벅지 통증 때문이었다.

“많은 대회를 소화하다보니 몸에서 무리가 왔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세계개인선수권대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대회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어요.”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고 지난달 출전한 2015 인도네시아 세계개인선수권대회에서 성지현은 큰 성과를 거뒀다. 생애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권에 진입한 것. 성지현은 동메달을 목에 걸며 내년 올림픽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그동안 규모가 큰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안 좋았는데 처음으로 좋은 성적을 내서 기뻤어요. 이번 세계개인선수권대회 모든 경기가 올림픽이라고 생각하고 집중했던 게 좋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간절함이 더해지니 하나라도 더 받아내게 되고 그만큼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세계개인선수권대회를 통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보완해 나가고자 하는 성지현이다. 아직 11개월이 남아 있지만 성지현의 시선은 이미 리우를 향하고 있다.

◆ '납조끼 훈련'으로 아킬레스건 극복한다

“애 하나 업고 뛰는 것 같아요. 지난주부턴 새벽, 오전, 오후 가리지 않고 차고 뛰는데,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요.(웃음)”

성지현은 약점인 체력과 수비력을 극복하기 위해 ‘납조끼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신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는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체력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다. 그간 중요한 순간에 힘이 떨어져 경기를 내주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훈련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향상되고 있단다. 하체 힘을 기르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차고 걸은 뒤 주머니를 제거했을 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 것과 같은 효과일 것이리라.

▲ 성지현이 라켓을 든 채 네트에 기대 있다. 성지현은 "남은 시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넘어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지현은 “(납조끼가) 굉장히 무거워요. 10㎏은 족히 넘어요”라며 혀를 내두르면서도 “납조끼를 벗었을 때 진짜 효과가 나타나요. 벗고 뛰면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워요”라고 눈을 반짝였다. 납조끼 훈련을 하면 차고 나가는 힘이 길러지고 순발력도 보완된다는 게 성지현의 설명이다.

“훈련이 정말 고되지만 자기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힘들 때 포기하면 거기까지지만 한계를 넘었을 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인내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성지현의 범상치 않은 승부근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셔틀콕 퀸’이 되기 위한 성지현의 메인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 '천적' 마린 넘어야 메달권 진입 가능

올림픽에서 대진은 포인트로 정해진다. 올해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최대한 많은 포인트를 획득해야 톱시드를 배정받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강호들을 최대한 뒤에 만날 수 있는 혜택을 받는다. 이는 체력을 안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치르는 국제대회에서 세계 톱랭커 선수들과 자주 상대하는 성지현은 앞으로 남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올림픽 금메달에 더 가까워 질 수 있다.

이 가운데 올해 국제대회 토너먼트에서 성지현의 발목을 번번이 잡았던 세계랭킹 2위 카롤리나 마린(22)의 벽을 넘어야 하는 것도 올림픽 제패를 위한 큰 숙제다.

마린은 지난해 유럽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스페인의 강자로, 지난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2개월간 세계랭킹 1위를 지키기도 했다.

성지현과 악연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세계개인선수권대회 16강에서 성지현은 마린에게 져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도 여러 차례 맞붙었지만 3월 독일오픈 결승에서 2-1로 물리친 것을 제외하고 모두 고배를 들었다. 성지현은 3월 전영오픈 8강전, 5월 호주오픈 준결승전, 8월 세계개인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모두 졌다. 마린과 역대 전적은 1승 4패다.

성지현은 마린의 장점으로 스피드와 파워를 꼽았다. 172㎝로 크지만 민첩성이 좋고 셔틀콕을 때리는 힘도 대단하단다. 성지현이 수비에서 안정감을 유지한다면 승산이 있지만 흔들린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 성지현의 승리 세리머니. 승부욕만큼 신앙심도 남다른 그는 독실한 기독교신자다.

전적만 보면 천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공략 포인트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성지현은 유럽 선수들 특유의 ‘욱하는’ 성격을 이용해보겠다는 심산이다.

“모든 선수들이 매 경기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하기는 어렵습니다. 마린도 마찬가지이지요. 이 선수는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다혈질적인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과도한 관심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담감 이겨내야

이제 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아직 올림픽의 해가 밝진 않았지만 2016년이 되면 ‘올림픽의 해’라는 타이틀을 걸고 많은 언론이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조명할 것이다.

성지현도 한국 배드민턴 여자 단식의 간판으로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 자명하다. ‘20년 만의 금메달 도전’, ‘포스트 방수현’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주위의 기대감이 크기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성지현은 괜찮다며 웃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방수현이 직접 찾아와 자신감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전 준결승에서 탈락한 성지현은 단체전 결승 1경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당시 성지현은 경기 후 속상한 마음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때 성지현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방수현이 깜짝 방문해 많은 조언을 해줬다.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성지현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대표팀 코칭스태프가 방수현에게 멘토 역할을 해줄 것을 정중히 요청한 것.

성지현은 “방수현 선배님과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면서 저절로 ‘힐링’이 됐다. 현역 때 경험을 토대로 많은 조언과 위로를 해주셨는데, 그것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성지현에게 부모님은 멘토 그 이상의 존재다. 실시간으로 조언과 격려를 해줌과 동시에 딸에게 필요한 부분을 그때그때 채워주고 있다.

성지현에게 힘을 주는 응원군은 또 있다. 바로 성지현과 같은 길을 걸은 부모님이다. 아버지 성한국(50) 전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단식 동메달리스트다. 성지현의 소속팀인 MG새마을금고 배드민턴단의 총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어머니 김연자(50) 한국체대 교수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복식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성지현은 배드민턴 선수 2세로서 장점으로 ‘실시간 팁’을 꼽았다. 부모님이 거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기 때문에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메신저로 보완할 점이나 응원 메시지가 온다는 것. 성지현은 “아버지께서는 주로 경기 운영방식에 대해 조언하시고 어머니는 심리적인 부분을 알려주신다. 바로 옆에서 응원해주시니 든든하다”고 웃었다.

“모든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꿈의 무대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가장 욕심이 나는 대회가 올림픽입니다. 방수현 선배님 이후로 여자 단식이 침체를 겪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번엔 기필코 방수현 선배님의 뒤를 잇고 싶습니다. 시상대 가장 위에 서며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기억될만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예선 탈락의 쓴맛을 봤던 성지현. 당시에는 과도한 긴장 때문에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많은 국제대회에 나가면서 올림픽 예행연습을 했기에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한국 여자 셔틀콕 간판으로서, 20년의 한을 풀 수 있는 적임자로서 어깨가 무겁지만 여러 경로로 응원해주는 이들이 많기에 성지현은 외롭지 않다.

성지현 프로필

△ 생년월일 = 1991년 7월 29일
△ 출생지 = 서울
△ 체격 = 175㎝ 56㎏
△ 소속팀 = MG새마을금고 여자 배드민턴단
△ 출신교 = 언주중-창덕여고-한국체대
△ 주요 경력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2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
- 2013년 카잔 하계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 수상 경력
- 2007년 제50회 전국 여름철종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우승
- 2010년 빅터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여자단식 준우승
- 2010년 제23회 세계여자단체배드민턴 선수권대회 우승
- 2010년 제16회 광저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 단체전 동메달
- 2011년 대만오픈 그랑프리골드 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
- 2011년 화순 빅터코리아 그랑프리골드 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
- 2013년 빅터 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슈퍼시리즈 프리미어 여자단식 우승
- 2013년 카잔 하계유니버시아드 배드민턴 혼합단체전 금메달
- 2013년 카잔 하계유니버시아드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
- 2013년 대만오픈 그랑프리골드 여자단식 금메달
- 2013년 전주 빅터코리아 그랑프리골드 국제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은메달
- 2014년 김천 아시아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단식 우승
-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여자단체전 은메달
-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배드민턴 단체전 금메달
-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

[취재후기]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지만 성지현은 부담스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에는 부담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이젠 인터뷰와 경기를 떼어 놓고 생각한다는 성지현이다. 인터뷰를 할 때는 최대한 마음을 놓고 끝나면 잊어버린단다. 그래야만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 선수로서 프로다운 면모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 성지현은 "리우 올림픽을 통해 침체된 한국 배드민턴 여자 단식을 일으키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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