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 박상현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은 이후 두 번째 중동 원정을 떠났다. 시차와 생소한 기후, 중동 특유의 그라운드 악조건까지 이겨내기 위해서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한국 축구대표팀이 중동 원정 악연을 끊기 위한 대책을 갖고 있다. 바로 세트피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6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베이루트 무니시팔 스타디움에서 가진 이틀째 훈련에서 세트피스 완성도 높이기에 주력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초반 20분을 제외하고 모두 비공개로 훈련을 진행, 세트피스를 정밀하게 가다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 중동 잔디에서는 패스축구 역효과 우려, 프리킥에 승부수
슈틸리케 감독이 세트피스 훈련을 실시한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라운드 상태가 고르지 못해 자칫 연습경기 등 다른 훈련을 하다가 부상을 당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표팀에는 손흥민이 영국으로 건너가 레바논전에 출전하지 못하고 이정협은 소집 직전 K리그 챌린지 경기에서 안면복합골절상을 당해 제외돼 더욱 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는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을수록 세트피스가 더욱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잔디가 고르지 않은 그라운드에서는 패스 축구가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패스의 질이 떨어지고 어디로 굴러갈지 또는 언제 멈추고 어떤 속도로 날아갈지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패스 성공률이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공이 멈춘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물론 잔디가 웃자라 공이 파묻히는 경우라면 프리킥 차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공이 멈춘 상태에서 차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정확도는 늘어난다. 프리킥의 정확도만 높일 수 있다면 레바논 공략의 좋은 무기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레바논 원정에서 프리킥 또는 페널티킥 등으로 골을 넣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레바논 원정 최근 2경기에서 뽑은 골이 모두 페널티킥과 프리킥이었다. 2011년 11월 15일 경기에서는 구자철이 페널티킥으로 동점골을 만들어냈고 2013년 6월 4일 경기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김치우가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뽑아내 팀을 패배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했다.
또 라오스전에서도 봤듯이 약체팀은 언제나 밀집수비로 나오기 마련이다. 라오스는 워낙 전력이 약해 선수들의 개인기만으로 밀집수비를 뚫어낼 수 있었지만 체격조건이 대등하고 기량도 만만치 않은 레바논의 밀집수비는 부담이 된다. 그라운드 사정까지 나쁘다면 자칫 늪으로 빠질 수 있다. 역대 레바논 원정 네 차례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이 모두 한 골밖에 넣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은 이미 라오스전을 준비할 때부터 다양한 세트피스 옵션을 준비해왔다. 손흥민이나 권창훈, 정우영 등이 직접 프리킥으로 골문을 노리기도 하고 수비진 사이에 끼어있다가 프리킥 순간 수비를 따돌리고 빠져나와 페널티지역에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격 루트를 개발했다.
◆ 누가 찰지 모르는 프리킥, 레바논 깨기의 또 다른 무기
고무적인 것은 대표팀에서 누가 프리킥을 찰지 모른다는 것이다. 프리킥 능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으로서는 즐거운 고민이다. 손흥민의 결장으로 프리킥을 찰 선수가 한 명 줄어들긴 했지만 이미 라오스전에서 권창훈과 정우영이 날카로운 프리킥 능력을 선보였다.
권창훈은 이미 소속팀 수원 삼성에서 왼발 프리키커로 정평이 나 있다. 매탄고 시절부터 함께 했던 고종수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왼발 스페셜리스트로 거듭났다. 특히 권창훈의 왼발은 무회전 킥처럼 곧바로 날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막기 어렵다. 정우영의 오른발 역시 날카롭다. 이미 라오스전을 통해 중거리 슛과 프리킥으로 두 차례나 골대를 떄리며 킥 능력을 입증했다.
박주호와 구자철, 장현수, 김영권, 홍정호도 프리킥이라면 자신이 있다. 장현수는 페널티킥 능력도 갖추고 있어 지난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직접 차기도 했다. 김영권과 홍정호도 수비수지만 프리킥 능력이 날카롭다.
여기에 기성용을 빼면 섭하다. 기성용은 이미 남아공 월드컵 때부터 대표팀의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해왔다. 대표팀에 워낙 프리킥 능력이 뛰어난 선수가 많아진데다 프리킥보다는 페널티지역에서 장신 플레이로 이어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돼 차지 않을 뿐이다.
이에 대해 손흥민은 지난 라오스전이 끝난 뒤 믹스드존 인터뷰에서 "프리킥을 찰 수 있는 선수가 많아진 것은 좋은 상황이다. 선수들끼리 욕심도 내고 나도 그렇다"며 "좋은 키커들이 많기 때문에 프리킥을 얻은 위치에서 자신있게 찰 수 있는 선수가 해결한다면 좋은 공격 옵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축구는 지난 1993년 5월 레바논 원정에서 하석주(현 아주대 감독)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이후 2무 1패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2년 만의 레바논 원정 승리를 위해 정밀한 세트피스는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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