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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송강호 "난 사슴 같은 눈망울의 배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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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송강호 "난 사슴 같은 눈망울의 배우"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16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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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2년 만이다. 2013년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3편을 내놓은 송강호(49)가 지난해와 올해 오롯이 영화 ‘사도’(9월16일 개봉)에만 시간을 내줬다. 적어도 1년에 1편 혹은 2년에 3편의 영화에 출연해 왔던 그로선 꽤 긴 휴지기였다.

지난 14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휴지기 탓에 오랜만에 나온 느낌”이라며 “중간에 다른 작품을 할 뻔하기도 했는데 어찌하다보니 2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 이야기를 90% 가까이 사실에 기초해 만든 정통 사극이다. 올해 하반기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며 영조와 사도세자의 애증, 정조까지 3대에 걸친 비극의 가족사에 포커스를 맞춘다.

 

◆ 영조의 외로움, 고된 인생역정 표현 위해 탁성 만들어내

처음으로 사극에서 왕 역을 맡았다. 영조는 52년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 민생정치를 표방하며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끈 성군이지만 천민 소생이자 노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콤플렉스와 완벽주의 성향 탓에 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아버지다.

송강호는 영조의 40대부터 80대까지 40년 세월을 넘나들며 연기한다. 70~80대 노인을 표현하기 위해 한 여름 4시간에 걸친 특수분장은 물론 목소리, 걸음걸이, 표정을 세심하게 연구하며 영조에 젖어 들었다.

“임오화변(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가 8일 만에 숨진 사건) 때의 나이가 만 69세다. 지금 70은 청년이지만 250년 전에는 100세에 가깝지 않겠나. 인생의 마지막에 이른 꼬장꼬장하고 노회한 정치인이자,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군주와 아비로서 살아온 느낌을 표현해내는 게 가장 예민하고 힘든 지점이었다. 흰 가발과 수염 등 외모상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연기를 완성하는 여러 가지 조건, 표정의 변화라든가 걸음걸이, 제스처, 목소리 등 연기를 완성하는 여러 조건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목소리의 느낌이다. 그래서 아주 탁하면서 갈라진 소리를 통해 영조의 인생역정, 고단함과 고통스러움, 외로움을 묻혀내려고 했다. 목을 많이 혹사시켰는데 다행히 피는 토하지 않았다.(웃음)”

천만영화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연기했다. ‘사도’에선 영조다. 두 캐릭터 모두 실존 인물이다. 뭇 사람들이 익숙히 아는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마음의 짐은 없었을까.

 

“아무래도 ‘변호인’ 때는 더 예민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와 같이 호흡했던 분의 연기를 하는 거였고, 실존했으나 250년 세월이 지난 인물을 연기하는 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사도’의 영조가 더 편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실존 인물에 대한 의미는 거의 없었다. 사극은 거의 실존 인물이다. ‘관상’ 경우는 만들어진 인물이나 세종대왕이나 이방원, 숙종 등 다 실존 인물이므로 사극에 출연할 때 실존 인물 연기는 큰 의미가 없지 싶다.”

◆ 이준익 감독 팬심으로 '사도'에 관심...임오화변에 대한 정공법에 매료

‘왕의 남자’를 비롯해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평양성’ 등 사극 연출의 대가로 불리는 이준익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두 고수의 ‘합’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눈길을 뜨거웠다.

“이 감독님에 대한 팬심이 있었다. 몇 년 전 피렌체 영화제서 만나서 2박3일 같이 다녔는데 무척 매력적이시더라.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이라 함께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감독님의 삶의 철학이 ‘사도’라는 작품에 대해 투영되는 거에 호기심이 컸다.”

송강호가 ‘사도’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사극 장르나 왕 역할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준익 감독이 임오화변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정공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통 사극이라는 말은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좀 더 정확한 건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방식의 정공법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정치역학 구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군주인 아비, 세자인 아들의 처절한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게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음. 어떤 포장도, 주관적인 해석도 따르지 않는 객관적인 팩트에 기반한 시선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송강호를 통해 투영된 영조는 의외인 구석이 많다. 위엄 가득한 왕임에도 현대어나 욕설을 구사하는가 하면, 날카롭고 민첩한 구석도 보인다. “1년 중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몇 번이나 드느냐...솔직해서 좋다” “잘 하자”란 대사에선 가벼운 분위기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진지한 순간, 찰나의 호흡과 시선으로 웃음을 유발할 때는 “역시 송강호”란 탄식이 새어 나온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 나는 지금 가장으로서 애비를 죽이려고 한 자식을 처분하는 것이야”란 추상같은 호령에선 섬뜩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현대어 부분은 사료를 찾아보면 실제 영조가 한 말씀이다. 그간 봐오지 못한 부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수 십년간 드라마를 통해 ‘왕은 저래야 해’ ‘어법은 저래야 해’라는 편견 지배하지 않았나 싶다. 왕들도 사적으로 말할 땐 편하게 했을 테고....공식석상에선 욕도 했다고 한다. 근엄하고 멋진 목소리로 대화하는 걸 오랫동안 봐와서 일종의 세뇌를 당한 게 아닐까 싶다. 연기할 때 기분이 좋았고 망가짐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 "유아인 돌직구...정제되지 않더라도 솔직한 감정에 자신 맡기는 배우"

‘사도’에서 물이 오를대로 오른 유아인과 호흡을 맞췄다. 역사 속 대립 관계처럼 영화 속 두 배우의 연기는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다.

“영화 ‘완득이’를 봤을 때 얼굴의 탈이 좋다고 느꼈다. 배우의 얼굴은 여러 가지 느낌이 담겨야하는데 이 친구는 여러 감정과 인물들이 보였다. 되게 매력적이더라. 이번 작품은 충분히 테크닉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음에도 이를 경계하고 자기의 원초적 감정, 정직한 느낌에 충실해서 연기하더라. 어떤 배우라도 촬영할 때 테크닉에 기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런데 이 친구는 거칠든, 정제되지 않았든 항상 솔직한 감정에 자신을 맡기는 게 참 인상적이었음. 대견스럽고 놀라웠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닌 유아인이 돌직구를 던졌다.”

 

영화 속 “니가 세자가 아니고 내가 왕이 아니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겠느냐”란 대사는 ‘사도’가 자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집착에 빠진 아비와 이에 힘겨워하는 아들의 이야기임을 고스란히 웅변한다. 송강호 역시 청춘의 아들을 둔 아버지다. ‘사도’에 임하며 부자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도 아버지니까 자식에 대한 바람, 사랑은 영조와 똑같다. 단지 이 양반이 군주였다는 거, 노소론의 대립 등 정치역학이 있었다는 점이 특수했을 거다. 현재의 부자 관계보다 더 심오한 철학이 지배하는 환경이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십년 전만해도 아버지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게 지금과 많이 달랐음. 지금은 ‘공부 못해도 된다’고 했으나 전에는 자식들에게 ‘공부’를 입에 달고 지내셨다. 입신양명해서 당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주길 바라셨다. 하물며 250년 전 왕족이니...영조의 모습이 한편으론 이해되기도 했다.”

배우 송강호가 파악한 영조의 핵심은 외로움이었다. 직접적 대사나 표현하는 컷은 별반 없다. 대왕대비인 인원왕후(김해숙)와 설전을 벌일 때 천한 무수리 소생 출신이라는 콤플렉스, 왕위를 지키는 고독함이 약간이나마 설명된다.

“저변에는 어마어마한 외로움이 있지 않았을까. 뒤주 앞에서 세자의 주검을 확인하는 순간, 터뜨리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의 근원은 아비의 외로움이자 군주의 외로움이다. 2시간의 러닝타임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만들어가는 데 있어선 상당히 짧은 시간이다. 영조의 내면을 다 담기 힘들지만 그 속에서 관객들이 많은 걸 느끼도록 해야 하는 점이 어려웠다. 다른 작품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처럼 20시간 정도라면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웃음)...컷을 할 때까지의 0.1초도 아깝다. 영화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간조차 허비하면 안 되니까.”

▲ 영화 '사도'에서 만년의 영조로 분한 송강호

◆ 김지운 감독과 '놈놈놈' 이후 8년 만에 '밀정'으로 의기투합

송강호는 ‘놈놈놈’(2008) 이후 또다시 김지운 감독과 ‘밀정’으로 의기투합한다. 오는 10월20일 촬영에 들어가는 ‘밀정’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항일무장단체 의열단과 밀정을 다룬 이야기다. 중국에서 2개월간 로케이션을 한 뒤 한국에서 2개월에 걸쳐 촬영을 이어간다.

“만주웨스턴 ‘놈놈놈’, ‘암살’과 같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아주 많이 다른 영화다. 공유 한지민 등 신선하고 실력 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놈놈놈’은 100% 창작이라면 이건 시대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오달수만 있었으면 완벽했을 텐데...하하.”

[취재후기] 올해 천만 한국영화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언론시사 이후 '사도'를 향한 천만 예측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중이다. ‘변호인’ ‘괴물’에 이어 세 번째 천만영화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이에 송강호는 “영화 스코어는 하늘도 모른다. 많은 분들이 애정을 가져주고, 봐주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 같다”고 갈음했다. 촬영 현장에서 송강호가 호랑이와 같았다는 이준익 감독의 말에 대해선 “수염을 붙이고 왕관과 용포를 착용해서 무섭게 본 듯하다. 평소엔 얼마나 사슴 같은 눈망울인가?”라는 소름 끼치는(?) 대답으로 인터뷰석을 초토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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