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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졸업' 정현, 한국 테니스 부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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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졸업' 정현, 한국 테니스 부활 이끈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5.23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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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마지막 시즌 장호배 정상, 시니어무대 본격 도전

[스포츠Q 박상현 기자] "장호배는 특별한 대회잖아요. 꼭 우승하고 싶었어요."

한국 테니스의 기대주 정현(18·삼일공고, 삼성증권 후원)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주로 시니어 대회를 뛰던 정현은 꼭 갖고 싶었던 22일 장호 홍종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정현의 말대로 장호배는 특별하다.

올해로 58번째를 맞은 이 대회는 국내 주니어선수 가운데 가장 잘한다는 16명만 초대받아 경기를 치른다. 쉽게 말하면 주니어대회 '왕중왕전'이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38)도 장호배를 가져가지 못했다. 이형택이 봉의고 재학 시절 42연승을 달리다가 장호배 결승에서 져 라켓을 부러뜨리며 펑펑 울었던 일화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정현 역시 올해로 5년째 출전했지만 최고 성적은 2년 전인 2012년 대회 준우승이다. 이미 주니어의 실력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가 자신의 마지막 주니어 시즌이기 때문에 장호배 트로피를 '졸업 선물'로 받아가기 위해 대회에 출전했던 것이다.

결국 정현은 결승전에서 정윤성(16·양명고)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와 함께 4년 전 이 대회를 제패했던 3살 터울 형인 정홍(21·건국대)과 함께 형제가 장호배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새로운 기록까지 만들었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현은 자신의 마지막 주니어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해 윔블던 등 모든 국제주니어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장호배에서 우승한 그의 눈은 이미 시니어대회로 향해 있다.

◆ 테니스 가문에서 자란 될성 부른 떡잎

정현은 형 정홍과 함께 일찌감치 테니스계에서 주목받았던 유망주였다. 아버지는 테니스 현역으로도 활동했던 정석진 삼일공고 감독이다. 정 감독 역시 선수로 뛰었던 1984년 이 대회에 출전해 패자에서 우승, 3위에 입상한 경력이 있다.

'테니스 가문'이라는 독특한 집안 내력만 가지고는 정현이 한국 테니스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선수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테니스에 입문하게 된 것은 바로 약시 때문이었다. 이미 형이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정현에게 테니스를 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고쳐지지 않는 약시 때문에 고민하다가 녹색, 초록색을 많이 보면 좋다는 얘기에 테니스에 입문시켰다.

재능도 출중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나이 또래에서 '랭킹 톱'이었다. 빠른 수비전환이 일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일찌감치 될성 부른 떡잎으로 주목을 받았다.

남자 10세부에 이어 12세부 등까지 국내 랭킹 1위를 계속 고수하며 초등부 최강으로 꼽혔던 정현은 2008년 오렌지보울과 함께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관하는 에디허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초등학생 때부터 국내 최정상급이었던 정현은 한국 테니스를 이끌어나갈 유망주로 일찌감치 평가받았다.

크리스 에버트나 지미 코너스, 슈테피 그라프, 로저 페데러 등을 배출한 스타의 산실인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정현 역시 향후 한국 테니스를 이끌어나갈 기대주가 됐다.

정현은 형 정홍과 함께 2009년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사인 IMG 테니스 사업부와 5년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닉 볼리테리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 승승장구, 윔블던 주니어 준우승까지

중학생이 된 정현은 수원북중에 진학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1등만 도맡았던 그가 이끄는 수원북중은 전국대회에서 승승장구했다. 정현이 있었던 시절에 수원북중이 우승한 기록은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사이 정현은 더 성장했다. 2011년 12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오렌지보울 16세부 단식 우승을 차지했고 한 달 뒤에 열렸던 인도 국제주니어 1차 대회 단식 정상에 올랐다.

이제 더이상 그를 '유망주'라고만 부를 수 없게 됐다. 어느새 한국 테니스 미래의 희망이 됐다. 특히 2012년 2월에 열렸던 한국선수권에서는 자신보다 7, 8세 많은 대선배들을 상대로 씩씩하게 경기를 펼쳐 16강까지 올랐다. 8강 진출이 좌절되긴 했지만 이제 막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선수였기에 이 정도로도 훌륭한 성적이었다.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현이 장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강한 서브를 넣고 있다. 정현은 이 대회 우승으로 형 정홍과 함께 형제가 대회 정상에 오르는 새로운 기록을 낳았다.

정현이 승승장구하면서 세계랭킹은 더욱 수직상승했다. 오렌지 보울 당시 주니어 랭킹 422위였던 그는 오렌지보울 우승 때 300위까지 오르더니 2012년 6월에는 52위까지 뛰어올랐다. 불과 6개월 사이에 무려 370계단이나 뛰었다.

이어 정현은 2012년 6월 ITF 국제주니어 1등급 대회인 오펜바흐 국제주니어대회 단식 우승을 낚아 150점의 랭킹 포인트를 챙기면서 세계 랭킹 21위까지 올랐다. 이후 정현은 US오픈 주니어부 16강 진출 등으로 주니어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2013년은 정현에게 매우 뜻깊은 해로 남는다.

호주 오픈 주니어부 16강 진출로 시동을 건 정현은 7월에 열린 윔블던 대회 주니어에서 승승장구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특히 16강전에서 닉 키르기오스(19·호주)를 2-0(6-2 6-2)으로 완파했다. 키르기오스는 세계 1위로 당시 대회 1번 시드였다.

"세계 1위와 붙어서 너무 쉽게 질까봐 걱정했었는데 이기고 나서 자신감도 얻고 재밌었어요. 8강도 이기고 4강도 이기면서 뉴스도 나오면서 신기했어요. 하지만 1위를 꺾고 나서 8강전에서 지면 안되니까 오히려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비록 윔블던 결승전에서 져 우승컵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테니스 인생에 있어서 분명 전환점이 된 것만큼은 분명했다.

"윔블던 대회는 관중이 많았어요. 그렇게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 없었는데 관중들이 박수 보내주고 격려도 해줘서 너무 재미있게 경기를 치렀어요."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현의 2013년은 특별했다. 시니어 풀 시즌 첫 해였던데다가 윔블던 대회에서 세계 주니어랭킹 1위 선수를 연파하며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 시니어 본격 도전, 모든 대회 우승 목표로

2013년이 정현에게 또 다른 특별한 해가 된 것은 바로 본격적으로 시니어에 도전하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시니어 대회 첫 출전은 2012년 8월에 있었던 미국 F22 퓨처스대회였다. 그러나 풀 시즌으로 치른 것은 역시 2013년이다.

2012년 홍콩 F3 퓨처스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며 시니어 무대에 적응하기 시작한 정현은 2013년 6월에 열렸던 김천 남자퓨처스대회에서 엔리케 로페스 페레스(23·스페인)를 꺾고 국내 최연소 퓨처스 우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당시 정현의 세계랭킹 598위였고 페레스는 294위였다.

어느새 그에게는 '리틀 이형택'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지난 17일에는 남자프로테니스(ATP) 부산오픈 챌린저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올랐다.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국내 선수 최연소 챌린저 4강 진출 기록이었다.

그리고 정현은 지난달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도 출전했다. 주니어에서 줄곧 3세트 경기만 뛰었던 그에게 처음으로 맞이하는 5세트 경기였다. 1단식에서 솜데브 데바르만에게 0-3으로 아깝게 졌지만 세계 랭킹 88위를 상대로 1, 2세트 연속 타이 브레이크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쳤다.

"첫 데이비스컵였던데다가 랭킹이 높은 선수여서 처음부터 배운다고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어요. 어느 대회나 저는 배운다는 자세로 경기에 임해요. 그때 당시 져서 아쉽긴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요.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으니까요."

그가 좋아하는 선수는 노박 조코비치(27·세르비아)다. 세계랭킹 2위인 조코비치는 정현이 초등학생 때부터 존경하고 가장 닮고 싶어하는 스타다.

"파이팅도 멋있고 공도 잘 치잖아요. 저도 조코비치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 [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현이 장호 홍종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강력한 샷을 구사하고 있다. 2년 전 이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는 정현은 출전 5년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의 주니어 마지막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정현은 자신의 마지막 주니어 대회를 장호배 우승컵으로 장식했다. 장호배 우승은 그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주니어 졸업'을 위해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 등 국제적인 대회 주니어 출전도 포기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프로에 도전해야죠. 모두 저보다 나이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만큼 배운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아직 서브나 발리가 부족하긴 하지만 자신있어요. 출전하는 대회 모두 우승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싶어요."

그의 눈은 올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 대회인 US 오픈에 맞춰져 있다. 이형택이 두차례 16강 진출 쾌거를 이뤄낸 그 대회다. US 오픈 예선 토너먼트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 333위인 ATP 랭킹을 200위까지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현은 창원 퓨처스와 대구 퓨처스 등에 꾸준히 출전하며 세계랭킹을 높일 계획이다.

침체된 한국 테니스의 부흥을 위한 정현의 도전은 벌써 시작됐다.

▲ 정현이 22일 끝난 장호 홍종문배 전국주니어테니스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테니스협회 제공]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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