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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여진구, 10대에 작별 고하는 아역스타의 '영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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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여진구, 10대에 작별 고하는 아역스타의 '영광'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22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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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촬영 당시엔 18세 북한군 탱크병 영광이랑 동갑이었어요.”

스무 살 성년을 앞둔 아역배우 여진구가 10대의 끝에서 전쟁영화 ‘서부전선’(감독 천성일)을 선택했다. 영화는 농사를 짓다가 졸지에 끌려온 남한군 40대 졸병 남복(설경구)과 탱크는 책으로만 배운 북한군 10대 탱크병 영광(여진구), 남과 북의 평범한 두 남자가 한국전쟁의 운명이 달린 비밀문서를 두고 불편한 동거와 위험한 대결을 벌이는 내용을 그린 추석 시즌 개봉작이다. 개봉(9월24일) 직전 삼청동 카페 라디오M에서 폭풍 성장 중인 여진구와 함께했다.

▲ 배우 여진구가 휴먼 전쟁드라마 '서부전선'으로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 동갑내기 캐릭터 영광 맡아 ‘계산’ 대신 ‘감정’에 집중

이 작품을 선택할 때 가장 큰 비중은 영광이란 인물이었다. 흔히 전쟁영화라고 하면 대부분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과 같이 어두운 톤에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인데 시나리오 읽으면서 영광으로부터 전쟁 영웅이 아니라 일개 졸병 느낌이 훅 났다.

“전쟁영웅이 아니라 막 전장에 투입돼서 홀로 남겨진 어리바리하고 한없이 무서워하는 한 소년이 보였어요. 순수하고 맑은 면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누군가의 아역이 아니라, 내 나이와 같은 영광을 잘 소화해내고 싶은 욕심, 캐릭터에 대한 책임감이 치솟았어요. 막상 연기할 땐 ‘이 정도로 표현하면 괜찮을까’ 아리송한 점이 많더라고요. 영광 캐릭터는 계산된 감정의 흐름보다는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연기한 게 대부분이에요.”

이제까지는 맡은 인물들이 어둡다보니 사전에 감독, 선배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뒤 극 전체의 감정선을 꼼꼼히 체크하며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잡아갔다.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를 했다면, 이번엔 그런 과정 없이 순간의 감정에 맡기며 연기를 풀어 나갔다. 현장‘감’을 살렸던 작품이다. ‘서부전선’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슬랩스틱, 코미디, 감정연기 등은 그렇게 완성됐다.

“날 것 그대로의 캐릭터이고 영화인 거 같아서, 영광의 감정들 자체가 꼼꼼한 게 아니라서 그런 방식을 선택했어요. 초반엔 낯설고 고민이 많이 됐죠. 그래도 설경구 선배님과 둘이서 신 안에서 놀아봤어요. 초반엔 이렇게 해서 될까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내 연기에 자신감이 붙고, 영광 캐릭터에 더욱 다가갈 수 있었어요. 저 자체를 영광스럽게 느낀 거죠.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설경구와 투톱으로 영화를 이끌어 갔다. 극중 두 배우의 모습은 때로는 큰형과 막내 동생처럼 거침이 없는가하면, 때로는 총구를 겨눈 작품 속 구도처럼 팽팽한 긴장이 조성되기도 한다.

“선배님께서 초반에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형님이라고 불러라’란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남복을 때리기도 하고 욕도 하거든요. 쉽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먼저 편하게 대해주신 거죠. 선배님은 평상시와 촬영 때의 차이점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예 역할에 빠져 있으세요. 일부러 노력하는 것도 보이고,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일상에서조차 역할에 심취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하신 거죠.”

◆ 늘 역할에 심취한 설경구 인상적...최민식 송강호 하정우와 공연 기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김윤석, ‘서부전선’의 설경구. 대단한 배우들과의 공연은 푸른 떡잎 여진구에게 어떤 자양분을 공급해줬을까.

“‘기싸움’ 얘기를 하곤 하시는데 선배님들이 그렇게 기를 막 내보내기보다 예뻐해 주세요.(웃음) 혹여 기를 발산하신다면 전 그분들의 에너지를 받아서 더 감정이 나오게 되고요. 선배님들이 강하게 나오면 오히려 제 감정이 좋아진다고 할까. 여러 면에서 도움이 많아 감사하죠. 기회가 된다면 최민식 송강호 하정우 선배님과 꼭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요.”

설경구와 함께 붙는 신에선 걱정이 크게 들지 않았다. 과거 중요한 장면을 촬영할 때는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곤 했는데 ‘서부전선’에선 그냥 설경구를 따라 절로 몰입해서 부딪혀보면 되겠지 싶었다. 든든한 큰 아빠(?)가 있는 느낌이랄까.

 

현장은 애드리브가 흘러 넘쳤다. 비좁은 탱크 안에서 방귀를 뀌고나서 벌어지는 두 배우의 해프닝은 모두 즉흥연기였다. 탱크의 포신이 구부러진 이후 나오는 반응이나 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경구와의 2인극을 통해 즉흥 대사를 많이 했고,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가장 힘든 코스는 북한 사투리와 술 취한 연기였다. 군기가 바짝 든 카리스마 있는 사투리를 구사하기보다 바보 같을 정도로 순수한 사투리를 구사해서 선생님을 따로 모셔 배웠다. 천성일 감독이 “너무 사투리에 사로잡히지 말아라”는 조언에 힘입어 사투리를 입에 붙여 편히 하게 됐다.

미성년자라 술에 취해본 적이 없어 ‘해운대’ 속 설경구의 술주정 모습을 연구하면서 눈이 풀어지고 발음이 어눌해지는 디테일을 체득했다. 영광처럼 책으로 술을 배운 셈이다. 물을 연거푸 들이키며 촬영하느라 배가 불러 곤혹스러웠다.

여진구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남복과 영광이 헤어지기 전, 담배를 피우는 신이다. 그냥 뭔가 형제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전까진 학생이라 “담배 안 돼요”라고 손사레를 치다가 뻔뻔하게 남복을 향해 “내래 군인이야, 담배 달라우” 하는 심적 변화가 찡하게 여겨졌다.

◆ ‘19금’ 해제되면 ‘화이’ 관람, 드라이브, 치맥 시도

중학생 시절 출연한 드라마 ‘자이언트’ 때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의 안목으로 작품을 선택해 오고 있다.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분명하게 “Yes or No”를 외쳤다. 부모님과 매니저 형은 자신의 선택을 응원해줬다.

 

올해 개봉한 청춘영화 ‘내 심장을 쏴라’는 연기 면에서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애정이 존재할 뿐 후회는 전혀 없다. 드라마 ‘오렌지 마말레이드’ 역시 10대일 때 마지막으로 하이틴 장르를 해보고 싶어서 골랐고, 너무 재밌게 촬영해서 한 톨의 아쉬움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캐릭터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배우이고 싶었어요. 관객이 공감할 지는 제가 노력할 부분인 거 같고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제가 잘 몰랐던, 심지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일지라도 도전하면서 저의 여러 면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란 점에서 설경구 선배님을 좋아해요.”

남들이 잘 모르는 감정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이해하기 위해 좋든 나쁘든 여러 가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독서, 음악, 공연에 탐닉하며 경험의 폭을 넓히려고 애쓰고 있다.

3개월 후엔 성년이 된다. ‘19금’이 해제되면 미성년자 관람불가라 이제까지 못 봤던 자신의 주연작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부터 볼 작정이다. 당당하게 관람하기 위해 DVD를 소장한 채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위시리스트는 운전, 치맥, 곱창에 소주. 비오는 날 빈대떡에 동동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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