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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이준익 감독 "섬뜩한 송강호, 불안의 미학 유아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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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도' 이준익 감독 "섬뜩한 송강호, 불안의 미학 유아인"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22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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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개봉 1주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사도’의 이준익(56) 감독. 대학에서 영화 대신 동양화를 전공했고, 연출의 길을 좇으며 20~30대를 보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천만 영화 ‘왕의 남자’(2005년)를 내놓으며 ‘감독 이준익’으로 각인을 선연하게 아로새겼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늘 곧추 세워온 그가 10년 만에 다시금 사극으로 돌아왔다. ‘왕의 남자’가 정통과 퓨전의 경계를 줄타기했다면, ‘사도’는 우직한 정통 사극이다.

영화는 조선시대 영조(송강호)와 사도세자(유아인) 이야기를 비극의 가족사로 그려냈다. 임오화변 8일의 기록이자 영조-사도-정조에 이르는 56년에 걸친 방대한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2시간으로 압축한 대서사다. 거장다운 여유와 통찰력이 영화 전편을 관통한다.

▲ 영화 '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스포츠Q와 역사와 현재, 현실과 영화 그리고 영조와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올해 하반기 기대작으로 늘 꼽혀왔고, 개봉 이후 흥행 성적도 기대대로 파죽지세다.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역대 천만 영화들과 비슷한 추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있어 파괴력이 크지 않을까 싶다.

▲ 복은 화랑 같이 온다고 하니까 불안하다. 무사평안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다. ‘명량’ 이후 사극이 흥행 부진을 겪었는데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도 산업 측면에서 중요하다. 관객 사랑을 받는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와주는 게 필요하므로 ‘사도’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 사극에서 흔히 기대하는 스펙터클한 볼거리보다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쭉쭉 밀고 나가는 힘이 두드러진다.

▲ 픽션의 분량이 크다면 기교라든가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필요하겠으나 사도세자 이야기이지 않나.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영화는 인간을 다루는 인문학이다. 태도의 차이가 필요하다. 오락적 요소도 필요하겠으나 그것만이 있다면 온당치 않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운반하는 감독의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근거 없는 신(Scene)을 넣어서 이야기를 날조한다거나 그러진 말자고 다짐했다. 특히 ‘평양성’으로 실패의 아픔을 맛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봤으니 정론으로 영화를 만나보자란 생각이 들었다. 변칙보다는 정석으로! 이제 변칙할 나이도 지났고, 영화에 정중하고 싶었다.

- 전작인 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소원’에 이어 ‘사도’ 역시 아픈 가족사를 담아내고 있다.

▲ ‘소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소원’과 ‘사도’는 닮은 면이 많다.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는, 해결해줄 순 없으나 관심을 갖고 이해해주려는 마음에서 그렇다. 작은 우산 한 개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가 올 때 우산을 같이 쓰는 것도 배려지만 우산을 버리고 같이 비를 맞는 것도 배려다. 두 영화 모두 비를 같이 맞는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상처투성이 감독이 상처를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사도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만이 정화되고 승화되지 않을까 여겼다.

 

- 실례일 수 있으나 ‘사도’를 보고난 느낌은 이준익 감독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속도감이 넘치고 세련됐더라. “이준익 감독이 이랬어?”란 의문 혹은 감탄사가 속속 등장했다.

▲ 자기 복제를 하지 않으려는 감독의 노력이 아닐까. 배우 겸 감독 우디 앨런은 ‘영화를 많이 찍다보면 어쩌다 잘 찍게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웃음) 이야기가 가진 형질에 따라 연출 스타일도 가변적이 된다. 난 스타일을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 편차는 크다. ‘평양성’과 ‘사도’는 극단이다. ‘소원’을 두고선 이준익 감독 작품이 아닐 거란 말도 나왔다. 스타일을 강요받는 시대에 난 스타일이 없는 감독이다. ‘새롭게 늙자!’가 내 모토다.

- '스타일이 없는 감독’이란 고백이 꽤 흥미롭게 들린다. 논쟁 혹은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말로도 여겨진다.

▲ 사극은 상업적으로 검증된 양식을 장르화 하는데 전반적으로 내 영화 장르가 뭔가? 코미디인가 하면 비극이고, 액션인가 하면 드라마다. 일관된 하나의 스타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영화를 ‘세상을 담는 도구’ ‘인간을 그려내는 도화지’라고 여기면서 스타일을 추구한다거나, 영화 속 진화를 추구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난 영화학도 출신도 아니고, 연출부 생활을 경험하지도 않았으며 시나리오 한 번 써본 적 없는 속칭 ‘날탕구리’다. 지금까지 감독을 해오는 게 기적이다. 하하.“

- '사도’를 완성시킨 주연배우 송강호와 첫 작업이라 의아했다. 20년이 넘게 충무로에서 한솥밥을 먹었는데 처음이라니.

▲ 그간 시기적으로 맞질 않았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이번에야 만나졌다. 송강호가 해주면 고맙지만 가능할까 회의에 빠졌는데 그가 나와 ‘사도’ 그리고 영조를 선택했다. 촬영 현장에선 디렉션과 관련해 말하는 게 서로 민망했다. 만나면 웃고 떠들고, 카메라가 돌아갈 때만 진지했다. 4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변화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노역 연기를 할 때 전날 밤 성대를 갈아버린 뒤 쇳소리로 대사를 치는데 섬뜩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난 날로 먹었다.

 

- 사도세자를 연기한 유아인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 보여주는 듯 싶었다.

▲ 이미 ‘완득이’에서 사도의 심장을 봤다. 불만과 불안을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덩이로 담아놓은 배우다. 20대의 불안은 청춘의 밑천이기에 아름답다. 허공으로 떠난 화살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도’에서 보여준 유아인의 불안정성은 정점에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자기 안의 본성을 지퍼를 확 열어서 다 드러내는 배우다. 흠뻑 젖어서 가슴으로 연기한다. 20대의 전부를 보여줬다.

- 곰곰이 생각해보니 영조와 사도세자, 특히 사도세자를 제대로 다룬 영화, 드라마가 많지 않더라. 드라마틱한 소재이자 셰익스피어 비극 못지않은 이야기임에도. 또한 영화를 통해 그간 몰랐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수확이었다.

▲ 알고 있단 거에 대한 확신이 진짜일까? 난 인생 전반에 걸쳐서 확신보다 의심이 큰 사람이다.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OK를 외친다. 평생 같이 지내온 사람에게조차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그를 알고 있는 걸까?’란 회의를 하는데 하물며 250년 전 사건을 알고 있다는 건 넌센스일 수 있다. 처음 작가들이 사도세자를 거론했을 때 “다 아는 얘기를 뭐하러 해!”라고 말했다. 아는 줄 착각한 거다. 그동안 사도세자는 정조를 이야기하는 수단으로만 소비됐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새록새록 모르는 걸 발견했을 때의 쾌감이 ‘사도’를 찍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 '사도’ 속 영조와 사도세자의 서로에 대한 욕망과 좌절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부자관계와도 포개지는 면이 많더라. 단순히 박제화된 이야기로 치환되지 않도록 한 시나리오와 연출력도 인상적이었다.

▲ 20세기가 공동체의 집단주의와 개인주의가 충돌하던 시기라 인물을 집단의 피사체로 대상화시켜서 묘사했다면 21세기는 집단 속 개인을 주체화하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서사는 사라지고 관계 속 심리와 감정이 관객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이 됐다. ‘사도’ 역시 방대한 역사소설을 내밀한 개인소설로 바꿔나간 작업이었다. 개개인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니 관점이 영조에서 사도로, 세손으로 3차례 이동한다. 마지막엔 세손의 관점으로 영조와 사도를 모두 대상화한다. 상황과 사건 위주의 작품이 아니라 인물의 관계에서 심리를 끌고 가는 드라마다. 그래서 관객이 그들의 감정에 더 몰입하지 싶다.

- '사도’에 이은 차기작은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린 ‘동주’다. 요절한 시대의 청춘들을 연이어 건져 올리고 있어 이채롭다.

▲ 사도 세자는 28세에, 시인 윤동주는 27세에 요절했다. 인생의 정점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그 죽음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로 남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세자 사도와 시인 윤동주라는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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